1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입니다.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6일)

이 가을은 '느림"으로 살고 싶다. 몇 일전부터 도올 김용옥이 쓴 <<동경대전>> 1('나는 코리안이다)와 2(우리가 하느님이다)를 읽기 시작했다. 1권이 559페이지고, 2권이 571페이지이다. 그 안에는 4개의 귀중한 판본 사본이 포함되어 있다. 산책길에서는 유튜브로 도올 선생님의 값진 강의를 듣는다. 훨씬 이해가 잘 된다. 좋은 방식이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는 15분, 걸어서는 약 30-40분 걸리는 곳에 수운교(水雲敎) 천단(天檀) 도솔천이 있다. 이곳에 가면, "사인여천(事人如天)"이 크게 회향나무로 장식되어 있다. '사인여천'이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이 강조한 인본주의 사상이다.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던 시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며 모든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는 창시자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니 신분이나 성별 등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모든 사람을 하느님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삶이라고 보았다. 이 사상은 구체적으로 '양천주(養天主)', '대인접물(待人接物)' 등의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곧 하늘이다. 하늘이 결코 나와 따른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시고 있고(侍天主),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인내천)이라는 것이 수운 최제우의 중심 사상이다. 그이 제자 최시형은 ‘인간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단순히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인식을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하느님을 각자가 길러 나가는 '양천주(養天主)'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양천주를 통해 실천적으로 하느님을 자각할 수 있게 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접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 바로 '대인접물' 사상이다. 양천주가 '사인여천'의 근거가 되는 이념이라면, '대인접물' 사상은 '사인여천'의 실천적 적용을 위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대인(待人)과 접물(接物)이다. 내 이웃과 내 옆의 물건을 어떻게 대할까 의 문제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는 주장이자. 사람이 집에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내려오셨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늘을 때리는 것이라 본다. 거기에다, 접물, 내 주변에 있는 물건을 대하는 마음도 하늘을 섬기는 것처럼 하라는 말이다. 그냥 3인창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2인칭으로 대하는 일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다’(人乃天)를 기치로 내건 동학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천도교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崔時亨)은의 원래 이름은 경상(慶翔)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시형(時亨)으로 바꾼다. 최시형은 최제우의 수제자이다. '시형'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이유는 “대저 도(道)는 때를 쓰고 활용하는 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나아가지 못하면 이는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다”며 용시용활(用時用活) 철학 때문이라 한다. 그러면서 ‘우묵눌’(愚默訥: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의 자세로 삶을 살았다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감인대’(堪忍待: 참고, 견디며, 기다려라)와 같은 말이다.
오늘부터 ‘우묵눌’(愚默訥: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의 자세로 유라시아예술문화원에 참여한다. 그래 오늘 오전에는 계룡산 갑사로 간다. 이 가을부터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곳은 게룡산 갑사가는 길에 만나는 은행나무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느림은/정현종
이 느림은,
'진짜'에 이르기 어려워
그건 정말 어려워
미루고 망설이는 모습인데
앎과 느낌과 표정이
얼마나 진짜인지에 민감할수록
더더욱 느려지는 이 느낌은....
[먼. 산. 바. 라. 기.]님의 덧붙임도 공유한다. "그러고 보니 '느림'과 '느낌'이라는 두 단어는 많이 닮아 있다. 진짜 느낌은 느리게 찾아온다는 뜻인지 모른다. 알게 될수록 주저하고 망설이게 되고, 진짜 앎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도덕경> 15장에 옛 성인을 묘사한 이런 말이 나온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儼兮 其若客"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미묘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수 없으니 드러난 모습으로 억지로 형용을 하자면,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어려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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