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감정이 사랑인가' 질문하기도 한다.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황금률처럼 진정한 겸손, 용기, 믿음 그리고 훈련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보물이다. 사랑은 한순간에 빠지는 동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낄 수 있도록 수련으로 도달하는 마음의 상태, 즉 형용사이다. 배철현 교수의 멋진 정의이다.
'개운 찮은 뒷맛'을 나는 싫어한다. 검찰은 고위공직자 후보의 '도덕'과 '염치'에 대한 '국민적 판단'을 구할 사안을 '불법'과 ;탈법'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들이대겠다고 나섰다. 또 다른 '태풍의 눈'이다. 페북에서 읽었다. "소문이란 목소리만 있을 뿐 형태는 없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 실로 무(무)가 생(생)이 되어 사람을 미혹한다." 조선 말 연암 박지원이 한 말이란다. 실체 없는 소문을 쉽게 믿고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소문을 이길 수 있고, 평판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이젠 그건만 남았다.
"자신의 이해와 충돌하는 경우 선을 악이라고 평가하거나 비록 올바른 일임에도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공격한다면 악행이 된다."(전병덕) 국민을 대표하는 일부 의원들의 모습도 개운하지 않다.
그러나 긴 방학을 마치고, 어제 '새통사'가 개학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즐거웠다. 강의도 의미가 있었다. 서울대 홍성욱 교수님이 "과학기술은 인간 삶의 표현이다"라는 제목으로 "과학자는 자연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법칙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고 하시며, "과학이란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활동과 그 결과로 얻어진 지식 체계"라 하셨다. 인상적인 강의였다. 많은 통찰력을 얻었다.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이 있네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나희덕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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