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을 장마로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한다. 오늘부터는 13호 태풍 '링링'의 영향권으로 강한 비바람을 예상하고 있다. 한참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야 할 시기인데, 많은 이들의 시름이 가득하다. 나라가 돌아가는 꼴도 정상이 아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데, 뒷목을 잡는 '몽니'들이 너무 많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토마스 프랭크가 2016년 낸 저서 <Listen, Liberal>에 대해 소개한 경향신문 김민아 논설위원의 칼럼은 오늘의 한국 문제의 답을 엿보게 해주었다. 그녀가 소개한 문장을 읽어 본다. "불평등이란, 당신이 아등바등 살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진보주의자들을 자처하는 현 정부는 만연해 있는 불평등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필요한 일을 벌일 만큼 확신이나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때'가 왔다. 현 정부는 시민의 힘을 믿어야 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에 나희덕 시인은 자신의 우산이 튼튼하다고 약한 비닐 우산을 찌른다면, 차라리 그냥 우산 없이 비를 맞겠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自招)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의 모든 과정은 사실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편하고 자극적인 기능에 갇히지 않고, '불편'의 상태를 자초하면서 성숙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더 불편한 하루를 살고 싶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덜면 꽉 찬다.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도덕경』 제22장) 그리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이 앞서게 된다. 자신을 소홀히 하지만, 오히려 보존된다."(『도덕경』제7장) 노자는 앞서고 보존되기 위해서, 내세우지 않고, 소홀히 할 뿐이라고 했다. 나를 구부리고, 덜어내고 비우면서, 나를 내세우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다.
또한 이 시 속에서, 나는 다음의 세 단어를 떠올렸다. 자유, 우정 그리고 평화(Freedom, Freindship, Peace). 자유(freedom)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가치이다. 내가 자신의 힘으로 행복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인간이 지닌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자유가 나만 자유롭게 만들고 타인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자유를 만끽하는 만큼, 나의 친구도, 심지어는 내가 모르는 이름 모를 친구를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 그것이 우정(freindship)이다. 친구의 범위를 동료 인간으로 확장하여, 낯선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래야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온다. 그 행복이 바로 평화(peace)이다. 평온함이다.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는 마음이다. 타인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하다. 그것이 평화이다.
비 오는 날에/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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