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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개의 정치적 입장/배한봉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5일)

소설가 백영옥에 의하면, 강연장에서 많이 나오는 질문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과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라 했다.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은 아마도 우리들 인생의 많은 일이 기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내 부모가 겪었고, 내 자녀들도 비슷한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직장에 나가는 외벌이 남자들은 스스로 돈 버는 기계인가 한탄하고, 육아에 지친 전업주부들은 나 자신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역할에 대한 강박이 클수록 책임감이 강한데, 역할에 충실 하려하다 보니 너무 지쳐 도망가고 싶어 지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가 백영옥의 주장이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남편, 며느리, 딸, 부모로 그리고 사회가 부여하는 역할로 사느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었다 말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건 ‘우리’라는 주어를 ‘우리’만큼 많이 쓰는 민족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 우리 남편, 우리나라, 우리 때는... 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문장은 이런 한국적 심리가 반영된 언어 습관이다. 1인칭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역할이 바뀌는 과정에 놓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할은 시간에 따라서 바뀐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자식 역할이 끝나고, 젊은 부모였던 자신이 노부모가 되는 것처럼 계속 순환된다. 아역으로 시작한 배우가 청춘의 역할을 거쳐, 중년의 어머니에서 노년의 할머니 역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매 순간 역할이 바뀔 뿐,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다. 중요한 점은 바뀐 역할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바뀐 상황과 역할에 적응하지 못해 자기 연민에 빠지고 원망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 탓’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낫게 만들지만, 더 크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건 퇴직이나 자녀의 독립으로 역할을 잃어버리면 오롯이 나만 남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길을 잃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이를 '빈 둥지 증후군'이나 '은퇴 후 우울'이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조화다. 가끔 풍경을 반영하는 창을 통해서 타인을 보고, 때때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 인생의 균형감을 키워준다. 균형감, 이게 오늘 아침의 화두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결합하면서 이젠 초연결시대 그리고 초지능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다. 그래 지금 이 시대에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기계와 다른 인간의 자질을 즉흥성, 창의성 그리고 우아함으로 본다. 그런데 이젠 기계도 이를 따라온다. 위 세 가지를 흔히 영혼이란 한다. 기계도 그 혼을 갖게 될까? 미래사회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하고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보완하여 집단지성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알파고와 바둑 커뮤니티 사이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보면.

알파고는 바둑에서 우리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나이트클럽에 가거나 선거 출마에 관심을 가지려면 여전히 수많은 기술적 약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알파고와 비슷한 것이 가석방을 결정하고, 보석금을 정하고, 비행기를 운행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날은 그리 멀지 않다. 우리가 집단 지성의 일부인 것처럼, 기계들이 우리 네트워크와 사회의 일부로 계속 통합된다면, 우리 지성의 연장선상이 되어 지성을 확대시켜 줄 것이다.

일부는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너무 훌륭해 져 많은 사람들이 실업 상태에 놓일 거라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생산성의 증가로 보편적인 기초 수입이 생겨서, 기계 때문에 해고된 사람들을 지원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본수당이라는 개념이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일자리가 우리에게 존엄성과 사회적 지위와 체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단순히 소득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학문적 혹은 창의적 활동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즐기고 무엇을 만들지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함께 일할지에 대해서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우리와 함께 사는 인공지능이 심지어 진화를 하면서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고 우리의 윤리를 반영한다고 느낄 수 있을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 점점 낯선 것이 '새로운 기본(new normal)'이 될 것이다. 예컨대, 초지능 기계와 공학적으로 설계된 신체, 소름 끼칠 정도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알고리즘, 10년 마다 직업을 바꿔야 할 필요성 등이다. 게다가 막대한 양의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드는데, 도무지 그것들을 흡수하고 분석할 방법이 부족하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의 균형감이다. 이런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등 명상을 하며 나를 잘 관찰하는 명상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유발 하라리는 우리에게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민적  갈등을 자신의 이익의 동력으로 삼는 우리 정치인들은 "사람 안에 개가 들어 있어" "개소리"를 하느라 바쁘다. 답답하다.

개의 정치적 입장/배한봉

개들이 짖는 소리를
개소리라 한다.
그것은 개들의 대화이기도 하고
개들이 달을 보고 하는 뻘짓이기도 하다.​

​사람끼리 가끔
개소리한다고 할 때가 있다.
사람 안에 개가 들었다는 말이다.

개들도 그럴 때가 있을까.
개 안에 사람이 들어
울부짖으면
사람소리 한다고 개들끼리 수군거릴까.

​그러면 그것은,
욕설일까,
정치일까,
철학의 한 유파를 형성할 수 있을까.

​벽에는 커다랗게 얼굴 사진을 새긴 포스터가
일렬횡대로 붙어 웃고 있다.

​벽보 앞을 지나가다 나는
개 짖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정치적 혐오일까, 무관심일까, 참여일까.
골목 앞, 신들린 무당집 개가
아무나 지나갈 때마다
컹컹컹, 컹컹 자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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