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6일)

고 이어령 교수는 숙명적으로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고 했다. 그래 그는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이 꼬투리를 잡기 때문이라 했다. 나도 그런 부분이 있다. 너무 따진다. 그래 나는 늘 '나의 신념 체계가 우연히 알게 된 것들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주 잊는다. 자기가 믿는 신념 체계가 유일하고 정당하고 옳은 체계라고 착각하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가 다소 그러한 점이 있다.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신념을 고치려고 충고하고 질책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말하는 좌와 우의 문제도 그렇다.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과 그 신념이 형성될 뿐이다. 예컨대, 1에서 10까지의 눈금이 있어, 내가 2에 있다면 1은 좌이고, 나머지 3-10은 우이다. 내가 9에 있다면, 1-8은 좌이고, 10은 우이다.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과 그 신념이 형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나 배움은 자신의 눈금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이 형성된 눈금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에게도 그의 눈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눈금을 깊이 파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 눈금이 구속시키는 프레임이라면, 그것을 벗어 버리고 상대방 눈금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역지사지하는 공감을 지닌 사람이다.
나는 '선량하게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한번쯤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혹은 ‘내가 모르는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의 정의가 앞서면 그만큼 깊은 확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내가 옳고, 이 일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선량하게 무례한'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의 태도는 무엇이든 너무 쉽게 단순화하고, 내가 생각한 ‘옳음’'만을 앞세워 판단하고, 비판한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순간 그 사람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 이다. 성장 한계를 결정하는 게 학습능력인 만큼 이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해 기존 지식의 유통기한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젠 불과 1년 전 기술을 지금은 거의 안 쓰기도 한다. 새로운 걸 빠르게 받아들이고 익히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학습 능력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다음과 같이 4 가지이다.
(1) 적극적 수용: 다른 말로 하면 경청이다. 경청을 단순히 열심히 듣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경청은 ‘적극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건 상대방 말에서 중요한 부분과 특이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건 그걸 자기 통찰로 녹여내는 과정을 뜻한다. 경청이 어려운 것은 상대의 말을 내 뇌에서 너무 빨리 인지하는 거다. 끝까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일이 적극적 수용이다.
(2) 유연한 소통: 답을 다 정해 놓으면 발전할 여지가 없다. 새로운 지식이 들어갈 수 있게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한다. 자기 전문 분야라 할지라도 늘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건 협업 능력에서도 중요하다. 고지식하면 교류하기 어렵고 그만큼 좋은 정보를 얻을 기회도 없다.
(3) 자기 객관화: 학습능력이 좋아지려면 자기 객관화가 돼야 한다. 전문 용어로 이걸 ‘메타인지'라 하는데 메타인지는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다. 내가 뭐가 부족하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통해 어떤 게 더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다.
(4) 지적 겸손함: 이 모든 태도의 시작은 겸손함이다.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해지는데 이건 오만함으로 연결되기 쉽다. 오만함은 학습능력에 가장 방해되는 요소 중 하나다. 배움에 있어 겸손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면 발전할 수 없다. “겸손을 배우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메레디스 윌슨이 말했다.
고 이어령 교수는 "고분고분 살면 평생 진실을 모르게 된다"고 했다. 그는 평생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살며 지적 환희와 동시에 외로움이 많았다고 했다. 질문 없는 사회에서 묻고 따지며 생각하며 살면 존경은 받으나, 사랑은 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하고, 창조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질문 없는 사회에서 질문자로 사는 것은 형벌이다. 알아도 모르는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된 사회에서, 나같은 인문 운동가, 한 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겪는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생각이 자랄 틈을 안 주는 사회가 되었다. 인터넷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바로 네이버에게 묻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다행스럽게 슈퍼 태풍 '힌남노"가 눈물만 한 바가지 쏟고 지나갔다. 피해를 입은 다른 지역분들에게 회복력을 보태 드리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 다양성 해체, 기후 재앙의 폭증,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게 현재 팬데믹이 미치는 불평등한 약영향은 고삐 풀린 소비의 탐욕에 대해 울리는 경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을 요구하고,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반복함에 따라 환경을 녹초로 만들었다. 따라서 숲이 사라지고, 땅이 침식되어 가며, 밭이 사라지고, 사막이 넓어지며, 바다는 산성화되어 가면서 태풍 등 이상 기후가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러니 생태계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도 모든 사람이 충분히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대지가 누려야 할 휴식을 돌려주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그럼 오늘 아침 사진 같은 귀신을 알까? 그러나 나는 안다. 희망은 언제나 날이 새는 거다. 어젯밤 그렇게 내리던 비가 날이 새니 멈췄다.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아/김형영
밤이면 돋아나는
별들은 알지
별이 하나 둘 돋아나는 걸
별들은 알지,
밤은 무섭고
희망은 내일,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밤은 알지만
내일은 언제나 날이 새고,
반짝이는 별들은
저희끼리 반짝이며
날은 날이고
새는 새라고,
희망은 언제나
날이 새는 거라고
별은 별들끼리
알지, 밤마다
낄낄거리며
내가 모르는 사실을
내가 모르는 사실을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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