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제도적 시스템과 상품 서비스 사이에 있다. 제도는 국가, 정치, 민주주의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 제도의 원리가 상품 서비스로 가면 하나도 작동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민주 시민도 상품 서비스라는 면에서는 완전 노예가 되어 있고, 노예가 되는 걸 받아들인다. 왜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나? 자신의 삶이 고귀해지기 위해서이다. 그건 권력이 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거다. 거기에는 자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쾌락에 중독되어 있다. 지금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는 건 우리의 제어되지 않은 욕망이 원인이다. 쾌락이 그렇게 만드는 거다. 쾌락에 중독되고 마비되는 것에는 무방비 상태이다.
이렇게 상품에 노예가 되어 있고, 쾌락에 중독이 되어 있으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만나는 사람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소유하려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태도, 생로병사, 노후 이런 모든 문제도 이런 식으로 소유가 작동한다. 소유는 지배와 서열을 만들어 낸다. 소유욕이 없다면 쾌락이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소유는 궁극적으로 폭력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겠다는 것은 그것이 갖고 있는 생명력을 완전히 말살하거나 제압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향한 욕망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하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우리가 누리는 많은 문화가 다 소유와 폭력 안에 있다.
어쨌든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에 중독이 되고, 제도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신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 일상의 현장이 뚫고 나가야 되는 늪이다. 일자리 문제도 사람들이 자기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 빈부 격차의 불평등 문제도, 돈이나 경제적인 부의 증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고미숙에 의하면,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돈이 뭘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생겼다'는 뜻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하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대한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는 방법과 부자로 사는 방법은 다르다. 왜 우리는 돈을 버는가? 인간이 본성을 잘 발현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만을 위해 축적하지 않고, 그걸 나누는 데 있다. 이 우주와 자연 속에서 어떤 것도 자신만을 위해 축적함으로써 생명을 낳는 것은 없다. 자연의 순환이 영성이라는 지혜로 인류에게 본성으로 전승되었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영성의 지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연지'를 터득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물질을 욕망하고, 그것에 집착할까? 물질에 예속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다. 게다가 물질로부터 누리는 쾌락을 놓기 싫은 거다. 상품이 주는 재미에 빠진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본성이 억압당하게 되고, 우울해 진다. 본성이 억압당하는 상태에서 생리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물질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쾌락 물질로 도파민, 아드레날린 같은 게 나오지만, 그런 물질은 짧은 쾌감 뒤에 금방 싫증이 안다. 고미숙은 이게 "생물의 자기 보호 장치'라 보았다.
그럼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근원적으로 '활동'과 '네트워크'를 좋아한다. '관계'와 '활동'이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성공, 곧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만 매달리면 꼭 막히게 되고, 끝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살맛이 나려면, 어떤 활동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계속 어딘가로, 누군가 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길 위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 때 그걸 연결해 주는 건 지성밖에 없다. 사업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교환관계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지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공간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다. 사람, 즉 존재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이 접속을 한다. 이런 접속을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지,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건 순식간에 다 거덜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나와야 가치가 되는 거다. 원래 보이지 않는 지혜에서 물질이 나온다. 예를 들면 디지털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온갖 것을 다 한다. 이 무형의 자산 없이는 물질만 갖고 돌려 막기를 할 수 없다. 정신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설령 망해도 그 다음에 이 실패에서 뭔가 배우고 도약할 수 있는 베이스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걸어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루쉰의 말을 소환한다. 사실 우리는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것이 곧 길이다. 인간은 늘 길 위에서 살아간다. 여기서 저기로, 태어남에서 죽음으로, 천지만물이 생성소멸을 멈추지 않는 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끊임없이 돌아오는 한, 인간은 늘 길 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어떤 과정 속에 있어야 하는 거다. 그게 살맛 나는 삶이다.
그 맛은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것이 활동을 해야 한다. 고미숙은 "각자의 네트워크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그 기운으로 가족을 베이스캠프로 삼아서 이합집산 하라고' 말한다. 가족 간에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에 대화가 잘 안되는 실정이다. 예전처럼 가족이 모두 농사일을 할 때는 가능했다. 또 말하지만, 중요한 것이 관계와 활동이다. 그런 것들이 없으면 생명 활동이 멈추는 거다. 순환되어야 한다.
우선 중요한 것이 움직이는 것이고, 관계를 능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가 하는 활동이 자기 삶이다. 어디에 가서 거기서 주는 혜택을 받을 생각하지 말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와 활동이 무엇인지 살펴 보아야 한다. 청년이든 노인 문제이든 제도가 개입을 하면 무력해지고, 반대로 아무 장치가 없으면 활동 자체가 매우 좁아 진다. 어쨌든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특히 내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관계와 활동을 구성하여야 한다.
어쨌든 길을 떠나려면 지도를 그려야 한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고전 읽기이다. 여기서 고전이란 인생과 우주의 지혜를 담은 책을 말한다. 왜 고전인가? 고전 자체가 길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우주 만물과 소통하는 것이다. 이건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다. 지평선은 달려가서 도달할 수 없다. 달려감, 그 자체일 뿐이다. 그 지평선을 우리는 비전, 또는 삶의 방향이라고 부른다. 살맛 나는 삶은 이 비전을 향해 한 걸음 씩 걸어 나가는 일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을 고미숙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큐라스(Quras), 다른 하나는 퀘스트(Quest)이다. 큐라스는 영아 케어(care)의 어원으로 라틴어이다. 배려, 보살핌 등의 뜻이다. 자기 배려, 즉 자기를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다. 통제, 즉 컨트롤하는 목표는 두려움과 쾌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기 위로는 아니다. 우리가 쾌락의 길에 들어서면 통제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생리적 충동은 절대 우리 자신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욕망, 이 두가지로부터의 자유를 자기 배려 혹은 큐라스라고 한다. 고미숙은 이걸 '양생(養生)'이라고 한다. 이 자기 배려와 양생을 위한 좋은 길은 자신의 몸을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지평선을 향해 갈 것인가의 문제가 퀘스트, 비전 탐구이다. 고미숙은 이걸 '길 위에서 묻는다'. '걸으면서 질문하기'라 부른다. 사실 질문을 놓치면 생명 활동은 끝나는 거다. 왜냐하면 질문하지 않으면 생명은 창조도, 순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을 끊임없이 생성해 내려면 길 위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 길 위에서 비전을 탐구하여야 하나? 소유의 잉여를 접속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순환해야 한다. 돈도, 능력도 그리고 인간의 목숨도 순환시켜야 한다.
제도 앞에서 무력해지고, 상품의 쾌락 앞에서 쩔쩔매는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핵심은 이런 것들이다. 고미숙 유튜브 강의, "길 위의 공부"를 듣고 요약해 보았다.
- 길 위에 있다.
- 온전히 나의 힘으로 살아낸다.
- 오늘 일어나서 걸을 곳이 있고, 누군가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다.
- 인생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몇일 동안 공유했던 고미숙의 유튜브 강의들이 <<인생 특강>>이라는 작은 책으로 만들어 지었다. 무더위가 한창인 요즈음 잘 읽고 많은 통찰을 얻었다. 고미숙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강조하였다.
-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하라!
- 존재와 세계를 탐구하라! 소유와 증식으로부터 존재와 생명으로 건너가라고 했다.
- 욕망의 현장과 대면하라!
- 지혜의 길로 방향을 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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