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비가 온종일 내린다. 사람을 잘 못 믿으니 그 폐해가 심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문일기를 쓴다. 헬렌 켈러의 말을 믿는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립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패러디해서 '신은 한 쪽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 주신다'고 말하곤 한다. 분명하다. 앞문이 닫히면, 뒷문이 열린다. 이 참에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 마음을 비우면 그 빈 자리에 뭔가 다시 차게 된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고미숙의 강연과 책 이야기를 계속한다. 오늘의 주제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항상성을 위해 지속하고, 타자와 접속하라. 이게 영성의 지혜, 즉 자연지를 알고 사는 길이다. 이게 삶의 성장의 길이다. 그 길은 흡수하고 발산하는 일이다. 오늘 아침도 조용하다. 월요일인데, 다들 휴가철이고,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며, 당국은 거리두기를 매일 강조하고 있다. 이젠 사람 안 만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요즈음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말이 순환(循環)이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병들었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 욕망의 재배치 등이 답이 아닐까? 왜냐하면 존재는 소유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지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욕망을 어떤 특수한 영역에 몰아넣고, 욕망을 우리 삶과 분리시킨다. 우리는 욕망과 삶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장자는 자유를 위해 이분법을 초월하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크게 작동한다. 고미숙은 말한다. 이 이분법을 타파해야, 우리가 욕망과 함께 욕망을 데리고 살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고미숙은 욕망을 에로스로 표현하며, 욕망의 현장이 곧 생명과 삶의 현장, 일상의 토대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인간은 에로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다 에로스의 총화이다. 그 에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힘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것을 동시에 해석하려고 한다. 즉 그 에너지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을 크게 로고스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생명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로스와 로고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욕망도 에로스를 통해 계속 무언가 접속하려는 것, 확장하려는 것, 그것과 함께 그것을 설명하고 싶은, 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늘 어렵게 이해했던, 고미숙은 <동의보감>의 정(精), 기(氣), 신(神) 개념으로 욕망의 문제를 접근한다. 내가 알고 있는 정, 기, 신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정, 기,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세 가지가 비슷비슷한 말로, 정신(精神), 정기(精氣)라는 말처럼 서로 어울려 인간의 정신 작용을 뜻한다. 그러나 약간의 뉘앙스(미묘한 차이)는 있다.
▫ 정(精)이 '정력(精力)'이라고 할 때처럼 성인(成人)의 활동력을 지탱해 주는 기본적인 요인이고,
▫ 기(氣)가 '기운(氣運)'이나 '원기(元氣)'라고 할 때처럼 사람을 건강하고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힘, 에너지라면,
▫ 신(神)은 '신난다'고 할 때처럼 사람에게 활기와 흥을 돋워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가 '기'이고, 그 에너지의 활동은 '정'이고, 그 결과로써 '신'을 얻든 데, 그 때 우리는 '신바람이 난다'고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신'이란 '하늘(天), 그리스어의 '프시케(psyche)'나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다이몬(daemon)'이나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말하는 '엘랑 비탈(elan vital)'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분명하지가 않아 늘 께름칙했는데, 이번 기회에 잘 정리가 되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정은 질료(質料)라 한다. 질료가 있어야 우리가 그걸 가지고 변형을 한다. 그게 신장에서 만들어진다 한다. '정'은 우리 안에 액체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말한다. 사람을 만들고, 문명을 건설하고,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정이라는 질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다음 이 질료를 움직이는 엔진이 '기'이다. 그걸 주관하는 장기가 폐라 한다.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신장에서는 남성의 정액이나 여성의 생리 혈 같은 원초적 질료가 구성이 되고, 폐에서는 호흡을 통해서 이걸 계속 순환을 시켜야만 우리는 살아 있는 거다. 순환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만 해서는 살 수 없다. 이 질료와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가 중요하다. 그 방향이 없이 살면, 정과 기를 그냥 지기도 모르는 방식으로 막 쓴다. 우린 이걸 맹목(盲目, 이성을 잃어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못하는 일)이라 한다. 맹목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이 아니고, 다 파괴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방향을 설정한다, 이게 '신'이다. 그건 심장이 주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 기, 신은 기본적으로 생명, 욕망, 신체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우리가 살아간다고 하는 거다. 문제는 정과 기는 이해하는데, '신', 즉 삶의 방향을 소홀히 한다. 이미 행복, 성공, 이런 것들의 방향이 정해져서 정과 기를 그쪽으로 쓰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신'이다. 신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이다. 사람이 방향이 없이 살 수 없는데, 이 부분은 보이지도 않고 티도 안 나고, 내가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모른 체, 우리가 캄캄한 암흑 상태에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 욕망의 다른 측면이 로고스로 질문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먹나 라는 질문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쾌락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무 가치 판단 없는 상황에서 질문을 해 보는 거다. 질문 대신 욕망을 갑자기 멈추어 버리면 오히려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원래 하던 걸 계속하면서 그걸 관찰하는, 일종의 텍스트로 삼는 거다. 쾌락과 쾌락 사이에 괴로움이 있다. 쾌락은 정, 기, 신을 굉장히 많이 쓰게 한다. 그 대가로 기진맥진하거나 너무 공허해 진다. '태과불급'인데, 좀 지나치게 쓰고 있는 거다. 그때 필요한 것이 욕망의 현장과 대면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삶에게 길을 묻는다."
삶에게 길을 묻다/천양희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우리는 노동, 화폐, 소비의 사이클 안에서 비전 탐구를 하지 않고 있다. 앞에서 말한 정, 기, 신에서 신을 쓰지 않는 거다. '그냥 좋은 일자리를 얻어서 돈 벌어서 소비하는 것이 내 인생의 방향이다.'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삶이다. 이젠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욕망은 에너지와 질량처럼, 거기에는 가치가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중요한 점은 내가 수렴과 발산,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조율하는 것이다. 조율이 힘들더라도, 내가 이걸 조율하겠다고 방향을 틀어야 한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잡히면, 그걸 보고 있으면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욕망의 힘을 버리면 안 된다. 다만 방향만 잘 잡으면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에로스와 로고스의 결합이다.
지금까지의 방향은 소유를 향한 것인데, 소유의 증식이 아니라 내 존재의 끊임없는 생성을 향해야 한다. 소유와 증식을 하면 친구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욕망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소유와 증식보다는 '존재'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게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며,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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