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눈부신 빛 뒤편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찬란한 빛은 그만큼 짙고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다.
어제는 류영모 선생님에 대해 좀 알게 되었다. 나는 늘 왜 그의 호가 '많은 저녁, 다석(多夕)'일까 궁금했다. 하필이면 왜 저녁? 류 선생님에 의하면, 저녁에 어머니가 "애들아, 집에 오렴, 저녁 먹을 시간이야" 라고 부르는 이 소리는 신이 인간을 부르는 '저녁 콜'이라는 것이다. 이 '콜'은 신의 아이들인 인간을 부르는 따뜻한 소리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에게 저녁은 마음의 허기 뿐만 아니라, 몸의 피곤을 달래며 고요히 어둠으로 드는 시간이다. 따뜻하고 편안한 신이 호명하는 목소리의 시간이다. 그런 저녁이 많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녁을 찬양하는 그의 어둠론은, 이 세상 밝음이 본질이 아니라, 어둠 이야말로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품이라는 인식의 산물이다. 그래 그는 "세종석신(世終夕信)"이란 말을 했다. 목숨이 끝나면 저녁을 믿는 법, 저녁은 거룩의 냄새를 맡고 거룩과 가까이 하며 거룩을 닮아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다석요식 영석불식, 多夕要息, 永夕不息)"이란 말을 했다. 생애의 많은 저녁엔 쉼(휴식)이 필요하지만, 영원한 저녁에는 숨(호흡)을 쉬지 않는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면, 살아있을 때의 저녁은 휴식을 주지만, 영원한 저녁은 숨쉬기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여기서 '다석(多夕)'이란 말이 나온다. 저녁은 어둠이 찾아오는 문턱이다.
언젠가 '저녁이 있는 삶'이 우리들의 화두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저녁만은 딸과 꼭 먹으려고 노력한다. 저녁에 가족끼리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신이 부르는 따뜻한 소리를 듣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류선생님은 이런 말들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밝은 것이 있는 뒤에는 크게 잊어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어야 한다. 은연중에 통신으로 밤중에 희미한 빛으로 태양광선을 거치지 않고 나타나는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혼과의 통신이다. (…) 묵시록에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 햇빛이 쓸데 없다' 하였으니 처음도 저녁이요 나중도 저녁이다. 처음과 나중이 한 가지로 저녁이 로다. 저녁은 영원하다. 낮이란 만년을 깜박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이다."
"낮은 밝아 세상이 눈에 보여 우리의 생각이 낮아지기 때문에 낮이라고 한다. 밤은 어두워 세상이 물러가고 먼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밤(바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정신의 근육이 퇴화된 것도 저녁이 있는 삶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도 장마는 있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를 읽으면, 일정한 세대 분들은 "그랬지" 할 것이다.
장마가 길어진다. 끝났나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장맛비로 마음까지 눅눅해 지는 날들이다. 개인적으로 촉촉한 것을 메마른 것보다 더 좋아하는 데, 장마가 길어지니 세상이 다 눅눅하다. 물론 덥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리 길어지니 한편 지루하기도 하다. 뜨거운 태양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아침 사진은 지난 주에 다녀온 곳인데, 이번 주에 여기서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냥 들은 거라,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추정해 본 것이다.
장마의 추억/강정식
어릴 적 장마는 긴 기다림이다
물 새는 지붕과 벽면 곰팡이가
전장의 기념비 같은 커다란 지도를
상처처럼 남겨
고단하게 살아가던 궤적으로 쌓였다
우묵 배미 안마당
정강이 넘게 흙탕물이
문지방에 찰랑거릴 때쯤
붉은 기와 용마루에도 틈이 자라서
하늘이 보이고
천장을 적시며 영토를 넓혀가
물받이 그릇이
방 안 가득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강가로 물 구경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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