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5일)

사소한 일에 분노하기보다 내 삶을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비난 받는 상황에서 작은 문제에 매달리면 일상이 소모된다. 그것보다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 유시민의 주장이다. 나도 그런 경우가 많다. 특히 SNS의 댓글에서 그렇다. 나는 댓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댓글은 자기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수준에서의 감각적인 반응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댓글로 논쟁하지 않는다. 비난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그러나 네 반응은 기대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 페북 계정에서 내 심정을 쓰는 거니까 눈치 볼 거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글 쓰는 이유는 이 세상과 시대에 대해, 내가 훈련 받은 생각하는 능력으로 갖게 된 어떤 시각으로, 내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충만하게 즐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지성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기쁨을 위해 공부하며 즐긴다. 그 방법이 나에게는 '읽고, 쓰기'이다. 그리고 익혀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변화하며, 나 자신을 향한 '나 되기'로 건너 가기를 시도하면서 얻는 기쁨을 즐기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고 동시에 내 삶의 목적이다. 이런 식으로 열 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이다. 소모적인 일에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왜냐하면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족해서 아는 게 아니라, 과해서 아프다." 이 말은 문숙 배우가 한 말이다. 풍요가 고통이 된다. 올 초에 내가 만든 나의 기도문이다.
주님 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는 말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 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리고 적게 먹어야 한다. 이게 이번 7월부터 지키고 싶은 나와의 약속이다. 과식하면 불편하다. 좀 부족한 듯 먹어야 한다. 포만감이 식사를 할 때는 좋지만, 후에는 속이 불편하다. 평소보다 과한 식사량을 내 몸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날, 너무 많이 말한 날에는 어김없이 마음이 더부룩하다. 소화가 덜 된 말들 때문에 속이 아프다. '틈'을 키워야 한다. 이제부터 음식, 사람 그리고 말도 해독해야 한다.
인색(吝嗇)이란 한자가 어렵다. 인색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재물을 아끼는 태도가 몹시 지나침", "어떤 일을 하는 데 대하여 지나치게 박함"이다. 시인 김민정은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라 말했다. 지나치게 감정 표현을 안 하는 사람, 주머니를 너무 안 여는 사람, 입과 주머니를 꾹 잠근 사람에게 다가 가기는 영 마뜩잖다. 때때로 누군가 인색하게 굴면 '내가 이 사람에겐 이 정도구나' 생각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기 전에는 결코 '먼저'가 없는 사람과는 오랜 인연을 이어 가기 어렵다. "나는 언제나 받아야 하는 위치"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태도의 말들> 저자 엄지혜의 말이다. 나도 그러게 생각한다. 엄지혜의 책을 읽는 재미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내 마음 속의 생각들을 이렇게 말할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을 가르쳐 주고, 좋은 책을 소개 시켜 준다. 평소에 즐겨 있는 강남순 교수를 비롯한 8분이 쓴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즉석에서 e-book으로 구입했다. 그 이야기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이어가고, 그것들은 불로그로 옮긴다. 오늘 아침 사진의 가치도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사는 이유/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 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 해진다.
치열하게
비어 가며
투명 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의 서문을 펼치면, 바로 "벙어리는 어떻게 우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안 했다. 울음 하면 소리라는 편견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돌이켜 반성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방도라 한다. 반성한다고 지난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기에, 반성과 성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비록 과거일지라도 행위 자체는 미래지향적이다. 그래 나는 아침 마다 <인문 일기>를 쓰며 질문을 해 보는 거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인간과 인간 다움이란 무엇인가? 하잔한 오전에 좀 길게 사유해볼 생각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 8명의 질문이다.
1. 천주희는 묻는다.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특히 장애인과 말이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고, 특별한 날, 특별한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들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존재들이다. 세상에 같은 존재란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고, 다르게 살아간다. 서로 다른 모두를 있는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
2. 정지우는 노동 재해에 대해 말한다. 수 많은 산업 재해의 원인은 '인간'을 인간으로 사고하지 않았던 결과이다. 이윤 창출과 효율적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인간'은 얼마든지 갈아 넣어도 되는 존재였다. 타자에 대한 실감을 포기한 결과, 우리는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열망,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열망과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바람이다.
3. 김민섭: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타인에 대한 동정(同情)과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동정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초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불우한 처지에 놓인 타인을 보며 흘리는 눈물은 단순한 애련과 측은의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 또는 사랑하는 이들도 언제든 그러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의 작용이다. 그는 자라날 아이가 '공감'을 바탕으로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인간이 되어 주기를 바랬다.
4. 류은숙은 MB의 밥상을 세 번이나 차리게 된 이색적인 경험담을 소개하며, MB와 바보 이반을 대비한다. 그러면서 '존재'가 아닌 '열심'을 섬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해야 인간으로 살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 사회가 추구했던, 추구하고 있는 '열심의 세계'는 결국 구조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짓밟은 결과이며, 결국 우리들 자신도 배제될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잠깐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 이야기를 공유한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면 어떤 가?
내가 바보가 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지보다 못한 놈이라고 뽐내면서 말이다.
내가 바보가 되면 마음씨 착한 친구가 모인다. 불쌍한 친구를 돕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바보가 되면 약삭빠른 친구는 떠난다. 도움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바보가 되면 정말 바보는 다 떠나고 진정한 친구만 남는다.
내가 바보가 되면 세상이 천국으로 보인다. 그냥 이대로 다 좋으니까 말이다.
5. 전성원은 태초의 '인류'가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그는 660만 년 전 태초의 인류가 아무런 보호 도 받을 수 없는 평원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너와 나의 아이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보호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힘은 '죽음'을 자각한 뒤 공동체가 이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추상적 사유에 도달함으로써 만들어졌다. 종교와 문화, 예술이 바로 그런 결과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죽음을 일상에서 밀어냈고, 내일을 상상하는 힘도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6. 하승우는 1980년 광주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은 자유와 평등,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민의 정치가 무기력해진 세상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각자도생, 즉 각자 재주껏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고유한 활동'이라 정의한다. 모든 것을 뜻대로 실현하는 신이나,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는 동물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게 별거 없듯이 정치도 별게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야말로 일상 정치의 시작이다.
7. 강남순은 "인간이란 누구이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즉 '인간 다움'의 요소들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고정된 해답은 없다고 말한다. 결국 이 물음이 야말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 정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찰해야 할 '과제'이며 동시에 '여정'이라는 것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지니고 자기 삶의 의미 물음을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차별과 배제 그리고 소외가 부재한 탈영토적 의미의 '고향'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갈망과 열정을 지니면서 '진정한 나'가 체화 되는 삶을 이루어 내고자 씨름하는 것, 이러한 과정이 바로 한 인간의 '인간 됨'을 구성하는 결이다. 이렇게 '인간 됨'의 의미를 확장하고, 가꾸고자 하는 여정 자체에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희망의 근거가 있다.
8. 홍세화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 하지만, 우리가 정말 실제로도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지 반문한다. 생각이란 처음부터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하는'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는 거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멈추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훈육된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삼아 의심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회의하고, 또 회의하는 과정을 멈춘다면 결국 우리는 존재를 배신하는 생각에 지배당하게 된다. 가해자들은 괴물이 아니라 단지 생각하기를 멈춘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으로 살기 위해선 회의하고 또 끊임없이 회의하는 길 밖에 없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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