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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하늘과 땅'의 뜻을 잘 받드는 거다.

사랑은 우리 인간이 자기 수련을 통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경지이다. 그것이 우주, 아니 자연을 닮는 것이며, '하늘과 땅'의 뜻을 잘 받드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하나? <성학십도>의 "서명"에서 퇴계 이황은 이렇게 말한다.

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지화즉선술기사, 궁신즉선계기지): 변화의 과정(化)을 이해(知)하면 즉(則). 아버지의(其) 사업(事)을 잘(善) 기록(述)할 수 있고, 자연의 신비(神)를 통찰(窮)하면 즉(則), 그(其) 뜻(志)을 잘(善) 완성(繼)할 수 있다.

참고: 지을 술, 이을 계이다.

자연의 신비를 한자 '신(神)'으로 보는 한형조 교수의 해석에 동의한다. 신은 인격적인 실체 라기보다, 우주의 원리이며 자연의 신비인, 비인격적 실체라고 본다. 제1도 "태극"에서 이황은 자연이 신이며, 거기 모든 길이 예비되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지화(知化)는 '변화를 이해한다'이고, 궁신(窮神)은 '신비를 통찰한다"이다. 선술기사(善述其事)는 '그 일을 잘 기록한다'이고, 선계기지(善繼其志)는 '그 뜻을 잘 이어 나간다'이다.

우리가 우주, 하늘과 땅,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을 잘 받드는 방법은 "아버지(하늘)의 사업은 우주의 과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변화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통찰하며, 삶을 완성시켜 나가라. 그것이 네게 주어진 책무'라는 것을 알고 매일 매일 수양(자기 수련) 하는 것이다.

이런 동아시아적 자연관이 서양의 근대 문명과 함께 자연을 도구로 인식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비대칭이 시작되었다. 자연을 신으로 경외하는 사고 사이에 깊은 심연이 파였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이고, 그 역사의 협력자라는 것이 동아시아의 철학이다. 인간은 매크로한 우주의 일원으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통해 전체적 조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존재리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를 분절된 개인으로 의식하거나, 사적 관심을 자유롭게 추구하려는 시도는 전체 시스템의 조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이 그 한 예일 수 있다. 그 대안은 자신의 본성(性, 才)를 잃지 않고, 그 의무와 책임을 꾸준하게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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