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28일)

노자의 <<도덕경>>을 읽을수록 노자가 비유의 달인이고, 수사학의 천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사물의 정곡을 찌르는 그 비유의 수사학이 절묘하다. 노자는 상도(常道) 대 비상도(非常道), 무욕(無欲) 대 유욕(有欲), 무명(無名) 대 유명(有名), 무위(無爲) 대 유위(有爲) 등 서로 상반되는 것, 대상의 다름과 차이를 하나로 아우르면서 양가적인 것의 동시성을 밝혀내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지난 주 금요일 함께 읽은 제27장을 시작하는 문장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 길을 잘 가면 자취가 남지 않는다)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여기서 "철적"은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을 가리킨다. 길을 잘 가면 그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장,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가 소환된다.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앞 모습보다 뒷 모습이 아름다워야 하고, 머문 자리가 깨끗해야 하며, 지나간 자리는 가지런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도 내가 머문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내가 맡은 일을 후임자에게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물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오는 이나 함께 머문 이가 불편하지 않고 서로의 믿음이 싹틀 것이다. 또 우리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물려주는 일이나 재정적자로 인한 빗더미를 자손에게 안겨주지 않는 일도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가 머문 자리에 아름다운 향기와 고운 흔적이 남는 의미 있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살면서 자기가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한 경지에 닿은 것이므로 흠이 없다. 원래 노자가 한 말은 병법(兵法)에서 원용된다. 군사가 이동한 자취는 적에게 제 위치를 들킬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뛰어난 전략가는 군사를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자취를 남기지 않고 이동한다. 그런 용의주도(用意周到, 어떤 일을 할 마음이 두루 미친다는 뜻으로 이미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 빈틈이 없는 상태)함 말 잘하는 사람에게 흠잡을 게 없고, 셈 잘하는 사람이 수리에 통달하여 산가지(주판이나 계산기)를 쓰지 않고 셈하는 것과 같다.
노자의 생각에 따르면, 길을 가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흔적을 남기는 일이나, 빗장이나 자물쇠를 써서 문을 잠그고, 새끼나 밧줄로 사람을 묶는 것은 도를 따르지 않고 억지로 하는 것이다. 억지로 함에는 인위적인 자취가 남는다. 자취가 필요 없는데 자취를 만기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는 거다. 흠 없고 깔끔한 일 처리는 곧 자연의 도를 따른 결과이다. 노자는 이것을 "요묘(要妙)"라 했다. 이는 '오묘한 요약'의 줄인 말이다. 이는 자연의 도를 따르는 사람의 슬기, 도에 이르는 심오한 이치를 말하는 거다.
오늘 아침은 제31장을 정밀 독해한다. 그 내용은 블로그로 옮긴다. 제30장과 제31장은 <<도덕경>> 가운데서 노자의 평화주의 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이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이긴 후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향해 꽃가루를 뿌리면서 이름을 연호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관습에는 변함이 없다.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을 위해 화려한 퍼레이드를 열었고, 파리의 개선문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한 것이다. 국가에서는 훈장을 수여해서 승전자의 이름을 드높인다. 그러나 노자가 볼 때 이러한 행사는 도에 합당하지 않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추켜세우는 것은 결국 살인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이다.여기서 노자는 살상용 무기를 손에서 내려놓고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예를 갖추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정중하게 장례를 치르고 마음속으로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라고 말한다.
도올 김용옥은 이 장을 강의하며, 병법(兵法) 이야기를 길게 하고, 마지막에서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이상례처지, 전쟁의 승리를 엄숙한 장례의식으로 치러야 한다)", 이 문장을 "서구적 가치관에 젖은 사람들이 진실로 결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인생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패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는"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자에게 예의를 갖추라. 우리 사회에 결핍된 철학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친 승자독식사회이다.
부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 자유시장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대이니 협력이니 찾아 볼 수 없고,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 존재한다. 이건 정글이다. 우리 사회는 양육 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 대안으로 나는 막연하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았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여기에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는 엘리트들과 전쟁을 덧붙인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도 가장 핫(hot)한 이유이다. 엘리트들이 구축한 기득권 세력들이 이젠 적폐이다.
펜싱에서 쓰이는 용어로 "Touche(뚜쉐)"가 있다. 한국 말로 하면 과거분사로 수동적인 의미를 띤, '다았다, 맞았다, 찔렀다'쯤 된다. 펜싱은 찌른 사람이 아니라 찔린 사람이 '뚜쉐'라며 손을 들어 점수를 주는 시합이었다. 우리 사회는 '멋있게 지는 법'을 잃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그 승리를 독점하고(승자독식사회), 게다가 그 승리를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경향이 짙다. 글이 길어진다. 병법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내가 잘 아는 시인의 것이다. 우리 동네 시인이다.
뒤에 서는 아이/이태진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왜 그리도 익숙해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에 선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침묵으로 대변하고 있다
다음은 노자 <<도덕경>> 제31장의 정밀 독해이다.
- 夫佳兵者(부가병자) 不祥之器(불상지기) 物或惡之(물혹오지) 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 성능이 좋은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으로 모두가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곳에 처한다"는 말은 집착한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집착을 끊으려면, 늘 '건너가기'를 준비해야 한다. '건너 가기'를 통해 결국 삶의 영토를 확장하는 거다. 문제는 생각이 들쑥날쑥하고 들락날락하는 것이다. 그래 생각의 높이와 초점을 맞춘 생각을 시선이라 한다. 왜 시선이 중요한가? 사람은 자신이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시선은 삶과 사회의 전체 수준을 결정한다.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이다. 여기 있던 시선이 한 단계 더 높이 저 시선으로 상승하여 이루는 구체적 결과가 바로 발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발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를 지배하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도전이 감행되어야 한다. 익숙함과의 결별이다. 말이 샛다. 여기서 "처한다"는 것은 '무기를 가지지 않는다'로 단순하게 읽어야 한다.
"혹(或)"을 '혹(惑)'으로 보고, '어두워서 모두 싫어한다'로 풀면 좀 이해가 간다. 좋은 무기는 살상을 잘 할 수 있는 무기이다. 그러므로 상서롭지 않은 도구이다. 살상을 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좋은 무기는 잘 죽일 수 있는 무기이므로 마음을 미혹하게 한다. 그러므로 도를 아는 사람은 살생하는 무기가 있는 곳에 처하지 않는다는 거다.
- 君子居則貴左(군자거즉귀좌) 用兵則貴右(용병즉귀우):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지만, 전쟁시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좌(左, 왼쪽)"는 음양에서의 양, 방위에서 동쪽이다. 군자가 자연에 따라 일할 때는 왼쪽을 귀히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어진 이는 평소에 왼쪽 자리를 귀하게 대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군사를 지휘할 때는 오른똑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도 모르겠다. 오강남 교수의 해석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 중국에서는 왼쪽을 양(양)적인 것, 곧 남성적인 것으로서 하늘, 동쪽, 생명 등을 관장하는 자리로 생각하고, 오른쪽을 음(음)적인 것, 곧 여성적인 것으로서 땅, 서쪽, 죽음 등을 관장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였다 한다. 따라서 보통 때에는 생명을 관장하는 자리인 왼쪽이 귀하게 여겨지지만, 전시에는 죽음이 판을 치므로 죽음을 관장하는 자리인 오른쪽이 귀하게 여겨진다는 뜻이라 한다. 전쟁터에서도 이 원리에 입각해서 죽음과 관계되는 오른쪽 자리에 가장 높은 장군이 위치하고, 왼쪽 자리에는 그 다음가는 장군이 위치한다는 거다.
- 兵者不祥之器(병자불상지기) 非君子之器(비군자지기) 不得已而用之(부득이이용지) 恬淡爲上(염담위상) 勝而不美(승이불미) 而美之者(이미지자) 是樂殺人(시락살인) 夫樂殺人者(부락살인자) 則不可得而志於天下矣(즉불가이득지어천하의):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므로 군자가 쓸 것이 못 된다. 부득이하게 써야 할 경우 담담함을 그 으뜸으로 여기고, 승리하더라도 이를 미화 하지 않는다. 이를 미화 한다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에서 큰 뜻을 펼 수 없다.
무기라는 것은 상서로운 것이 아니니, 군자가 지닐 것은 아니다. 부득이하게 되었을 때 사용한다. 무기를 사용할 때는 편안하고 담담함(恬淡, 염담)을 위로 삼는다. 담담함은 욕심이 없음이다. 편안하고 담담하게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일이 없다. 사용하더라도 잔인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만일 무기를 사용해 승리, 아니 이겼을 때에는 이기고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 살인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의지로 천하를 얻을 수 없다. 사람 죽이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지 못하다는 거다. 살인을 즐기는 자는 곧 천하의 민심을 얻을 수 업다는 것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다 비슷한 말이다.
- 吉事尙左(길사상좌) 凶事尙右(흉사상우) 偏將軍居左(편장군거좌) 上將軍居右(상장군거우) 言以喪禮處之(언이상례처지) 殺人之衆(살인지중) 以哀悲泣之(이애비읍지)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이상례처지): 길한 일이 있을 때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이 있을 때는 오른쪽을 높인다. 둘째로 높은 장군은 왼쪽에 위치하고 제일 높은 장군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이는 상례로 처리하는 까닭이다.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장례는 반드시 이렇게 치뤄야 한다.
길한 일에는 왼쪽에서 주관하고 흉한 일에는 오른 쪽에서 주관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왼쪽을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곳으로 여기고 오른쪽은 죽음의 기운이 넘치는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평상시 관직의 서열을 정할 때에는 왼쪽을 더 높였다. 이러한 관습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조선시대의 경우도 비록 그 품계는 같지만 좌의정을 우의정보다 더 높였다. 좌우로 정렬은 있어도 우좌로 정렬은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지만 전쟁 시에는 죽음의 기운이 넘친다고 보고 오른쪽을 왼쪽보다 더 높였다. 그래서 전투에 참가하는 장군도 서열 1위인 상장군은 오른쪽에 배치하고 서열 2위인 편장군은 왼쪽에 배치했다. 장례를 거행할 때도 이러한 방식을 따랐다. 편장군(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말하자면 장례의 예에 처한 것이다. 이는 장례의 예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장례로써, 장례식에 임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처하라는 말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었으므로 슬프고 애도하여 울어준다. 그래서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장례의 예를 갖추는 것이다. 전쟁 중에는 부사령관을 왼쪽에 앉게 하고, 총사령관을 오른쪽에 앉게 하는 것은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을 치른다는 의미가 있다는 거다.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에게 슬프게 눈물로써 애도를 표함으로써 전쟁의 승리를 엄숙한 장례의식으로 치러야 한다는 거다.
다음은 <<도덕경>> 제31장의 원문과 번역이다.
- 夫佳兵者(부가병자) 不祥之器(불상지기) 物或惡之(물혹오지) 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 성능이 좋은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으로 모두가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 君子居則貴左(군자거즉귀좌) 用兵則貴右(용병즉귀우): 군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지만 용병 때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 兵者不祥之器(병자불상지기) 非君子之器(비군자지기) 不得已而用之(부득이이용지) 恬淡爲上(염담위상) 勝而不美(승이불미) 而美之者(이미지자) 是樂殺人(시락살인) 夫樂殺人者(부락살인자) 則不可得志於天下矣(즉불가득지어천하의):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므로 군자가 쓸 것이 못 된다. 부득이하게 써야 할 경우 담담함을 그 으뜸으로 여기고 승리하더라도 이를 미화하지 않는다. 이를 미화한다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에서 큰 뜻을 펼 수 없다.
- 吉事尙左(길사상좌) 凶事尙右(흉사상우) 偏將軍居左(편장군거좌) 上將軍居右(상장군거우) 言以喪禮處之(언이상례처지): 길한 일이 있을 때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이 있을 때는 오른쪽을 높인다. 둘째로 높은 장군은 왼쪽에 위치하고 제일 높은 장군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이는 상례로 처리하는 까닭이다.
- 殺人之衆(살인지중) 以哀悲泣之(이애비읍지)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이상례처지):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장례는 반드시 이렇게 치뤄야 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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