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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토요일에 만나는 인문학자의 와인 이야기-BDM(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1593.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4월 10일)

 

모처럼 토요일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 아침에 일찍 주말 농장에 나갔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밭 두렁에 '불임'이라고 낙인 찍힌 튤립을 심었더니 싹이 나 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이 올라 왔다. 옆 밭은 아예 꽃이 활짝 피었다.

 

밭 둑에 완두콩을 심지 않고 왠 꽃이냐고 흉 보겠지만, 언젠가 배연국 <세계일보> 논설위원의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대충 이런 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어느 날, 끔찍했던 한 수용소에 거대한 화물이 도착했다. 그 속에는 수용소의 모든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립스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함을 질렀다. “누가 이따위 쓸데없는 걸 보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옷이나 치약 등 더 필요한 물품이 많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립스틱 공급이 천재적 발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자들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입술을 칠하기 시작했다. 죽은 여성의 손에도 립스틱이 쥐어 져 있었다. 여성들은 입술을 화장하면서 행복했던 옛 기억을 떠올렸고, 곧 그런 시절로 되돌아갈 것을 희망했다. 립스틱은 여성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었다. 팔에 새겨진 숫자로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외모에도 관심을 가질 줄 아는 인간임을 각인 시켰다. 수용소 여성들에게 립스틱은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었다. 희망 그 자체였다. 희망은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영혼의 에너지'였다. 그래 포로 수용소의 여성들은 립스틱으로 희망을 색칠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이다. 전쟁이 끝난 후 잿더미로 변한 독일에선 꽃이 립스틱 역할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역시 배연국 논설위원의 글이다. "한 사회학자가 조수와 함께 지하실에 사는 어느 독일 가정을 찾았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수가 조수에게 물었다. “저들이 재건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조수는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교수는 반드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조수가 까닭을 묻자 교수가 말했다. “어두운 지하실 탁자 위에 꽃이 꽂힌 병이 있는 것을 보고 알았네. 국가적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꽃 한 송이를 피우는 민족이라면 틀림없이 나라를 일으켜 세울 것이네. 아직도 희망을 믿고 있다는 뜻이거든!” 오늘날 독일이 유럽 최강국으로 우뚝 설 수 것은 이런 희망 에너지로 무장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립스틱과 꽃의 공통점은 희망이다. 희망은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영혼의 에너지'이다. 끝없는 코로나의 터널 속에서 지금 우리가 가슴에 되새길 것 역시 희망일 것이다. 희망을 같자. 'Dum vita est, spes est(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라는 라틴어 문장을 나는 좋아한다. 이 말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건배사로 내가 자주 쓰는 것이 "스페로(spero), 스페라(spera)"이다. 이 말은 "나는 희망한다. 그러니 너도 희망하라"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나는 숨쉬는 동안 희망한다'는 라틴어 'Dum spiro, spero(둠 스피로, 스페라)'에서 나온 말이다. "불행과 고난을 버티게 하는 힘은 실낱 같은 희망이다. 지금은 돈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해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지금보다 나아지리란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은 초인적인 성실성과 인내심을 발휘한다.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에는 정원 문화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라에는 텃밭 문화 밖에 없다. 정원은 쓸모 있는 땅에 쓸모 없는 것을 심는 것이고, 텃밭은 쓸모 있는 땅에 쓸모 있는 것을 심는 거다. 그래 내 밭은 정원 같은 텃밭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설치 미술' 장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시는 이 때쯤 되면, 꼭 다시 공유하고 싶은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봄길/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매주 토요일은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그런 서론이 너무 길었다. 봄 날에 영혼도 살찌고 싶어 긴 글을 인용했다.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 이탈리아 와인 이야기 세 번째이다. 오늘도 코스카나 지방 와인을 여행한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끼안띠 이외 우리에게 알려진 지역으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Brunello란 산지오베제와 같은 뜻의 토종 포도 품종+Montalcino는 지역 명)>,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등이 있다. 다음 지도를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 지방 와인을 이해하는 데 잘 만들어 지도이다.

오늘은 개별 와인으로 다음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읽기를 한다.

(1) la Poderina(라 포데리나): 와인 양조장 이름이다. 라 포데리나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를 생산하는 소규모 부띠크 와인너리로 몬탈치노 밭 중에서도 해발 고도가 높아 우아한 스타일의 부루넬로가 생산되는 까스텔누오보 델아바떼에 유ㅣ치하고 있다. 또 이탈리아 천재 와인메이커로 유명한 리까르도 또따렐라의 주도하에 몬탈치노 지역의 전통 방식에 현대적인 방식과 기술을 접목하여 이곳의 떼루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라 포데리나는 자신만들의 더욱 엄격한 기준을 갖고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DOCG 규정인 권장 면적 당 수확량의 75%만 생산해 농축된 포도를 수확,=하여 양조하고 있으며, 최소 2년의 오크 숙성보다 긴 숙성으로 복합미가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면세 와인으로 선택하여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와인이다.

 

(2) 2012: 빈티지가 2012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2012년에 포도를 수확해 양조했다는 것이니 와인의 나이가 10살이라는 말이다.

 

(2) 라벨의 그림은 포도밭과 양조장의 전경이다. 이 양조장의 모습이 화려하면 고급 와인이다.

 

(3) BRUELLO DI MONTALCINO(부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상표이며, 와인 산지 이름이다. 몬딸치노 지역에서는 산지오베제를 특별히 브루넬로라고 부른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와인 업계에서는 너무 길어 약자로 BDM이라 부른다)는 매년 세계 와인 랭킹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명성이 높다. 이 지역은 피렌체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시에나(Siena) 지방의 몬탈치노(Montacino) 마을 주변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DOCG급 레드 와인이 나오는 곳이다. 이 지방 와인은 강렬한 향과 드라이하고 묵직한 맛이 나며 알코올과 탄닌이 짙게 느껴지는 파워풀한 캐릭터를 지닌다. 와인 매장에 가면, Rosso di Montacino(로쏘 디 몬탈치노)를 만나는데, 이것은 포도 나무의 수령이 BDM보다 어린 나무의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숙성을 짧게 한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4) Denomi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a(데노민아지오네 디 오리진느 콘트롤라타 에 가란티아): 1 등급 와인이라는 말이다.

 

그 외 토스카나 지역에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는 17세기에 이미 ‘토스카나 와인의 왕’으로 군림했었다. 귀족(nobile)과 군주들이 즐겨 마시던 와인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쁘루뇰로 젠띨레(Prugnolo gentile, 산지오베제의 변종)라는 품종으로 양조하는데 이것 역시 산지오베제의 지역 이름이다. 비노 노빌레는 최소 2년의 숙성을 거치며 리제르바의 경우 6개월의 병입 숙성을 포함, 적어도 3년의 숙성을 필요로 한다. 부르넬로 디 몬딸치노를 근육질의 와인이라 표현한다면, 비노 노빌레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와인이라 말할 수 있다. 한국에 알려진 와이너리로 살게또(Salchto)가 있다. 이 와이너리는 최고의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로 <살꼬(Salco)>를 만들어 내고 있다.

 

끼안띠의 경우 토마토 소스의 파스타와 같은 대중적인 식탁에 잘 어울리고, 부르넬로 디 몬딸치노는 또스까나식 티본 비스떼카 피오렌띠나(Bistecca Fiorentina)나 오래 숙성된 치즈에 어울리지만, 비노 노빌레는 조금은 공들인 식탁에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이 지역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명가는 안티노리(Antinori)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