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아침에 몇 분이 보내주시는 글을 잘 읽는다. 윤일원 박사님이 보내준 글이다. 그의 글에서, 나는 왜 봄꽃은 작고, 무리를 지고, 잎 보다 먼저 피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꽃이 피려면 오랜 기간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만 한다. 밤이 낮보다 길어야 하고, 추위가 물러가야 한다. 겨울이 춥다고, 어둠이 싫다고 방안에 들여놓은 꽃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봄꽃은 작고 연약하며 향기가 강하고 무리 지어 피지만 잎이 없다. 이른 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꽃 망우리를 먼저 터트려야 하고, 잎이 나중에 나와야 한다. 하나를 얻으려고 하나를 버렸다. 봄꽃은 추위와 어둠의 결핍으로 작지만 강한 향기와 무리를 얻었다."
그리고 꽃들은 피었다가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난다. 슬프게도 어제 내린 봄비가 그 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이 제 각각이다.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볼 수 있다. 꽃은 피었으면 진다. 순리이다. 낙화가 없으면 녹음도 없고, 녹음이 없으면 열매도, 씨도, 그리하여 그 이듬해의 꽃도 없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현재를 붙잡으려 하며 추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때가 되면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
꽃들은 저 마나 피어나고 지는 모습이 다르다. 우리 인간들도 저마다 살다 가는 길이 제 각 각인 것처럼. 동백은 한 송이 개별 자로서 피었다가, 주접스런 꼴 보이지 많고 절정의 순간에 뚝 떨어지며 진다. 매화꽃, 벚꽃, 복사꽃, 배꽃은 풍장을 한다. 꽃잎 한 개 한 개가 바람에 흩날리다 땅에 떨어져 죽는다.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었다가 노을이 스러지듯 살짝 종적을 감춘다. 나무가 숨기고 있던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 같다고 소설가 김훈은 묘사한 적이 있다. 나도 내 삶을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산수유처럼.
그리고 길게 이야기 하고 싶은 꽃이 목련이다. 목련은 도도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지저분하다. 목이 부러질 듯이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리며 뽐내다가 질 때는 남루하다.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꺼번에 뚝 떨어지지 않고 잎 조각들로 느리게 사라진다.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며. 오늘 공유하는 시어 처럼,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봄비가 내린 후 길가에 목련들이 그득하다. 봄이 너무 짧다. 봄의 첫 빛을 반사하여 흰빛이 더욱 눈부신 꽃잎. 그러나 다른 유색의 꽃들이 퐁퐁 터질 때면 이미 목련은 누런 수의를 갈아입고 맥없이 땅으로 낙하한다. 잎보다 먼저 피어서 질 때는 지저분하다. 이 비 그치면, 나는 꽃과 만나고 이별하면서, 행복한 봄의 한철이 되도록 하고 싶다.
목련 후기/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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