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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세상은 신성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다.

202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15일)

 

나에게 페이스 북은 세상과 만나는 장소이다. 꼭 읽고 싶은 글이 나오면 저장을 해 두고 아침 글쓰기를 할 때 다시 읽는다. 오늘 아침에 저장한 글은 <노자의 5가지 가르침>이다. '원더플마인드'라는 담벼락에서 본 것이다.
1) 노자의 행복에 관한 시각: "가난해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부유해져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우리 주변의 존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2) 강직함과 융통성:  "삶에서, 인간이란 융통적이고, 진화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는 굳어서, 더 이상 변화할 수 없다. 태양을 마주하는 식물들은, 여유롭게 휘어지지만, 겉보기에는 메마르고 잘 부러지는 듯이 보인다. 이것이 융통성과 여유로움이 삶과 연관된 이유이며, 굳건함과 불변함이, 죽음까지 이어지는 이유이다." 삶이라는 것은, 본래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수용이란 것을 필요로 한다. 강철과 같이 강하기보다는, 물과 같이 융통성 있게 흐르는 것을, 우리의 삶은 요구한다.
3) 사랑하고, 사랑 받음: "깊이 사랑받는 것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깊이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힘과 용기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힘은 할 수 있는 것, 용기는 하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줄 수는 있지만, 그 반대는 온전히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4) 소망과 좌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좌절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평온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소망은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이 면에서 보건대 평화와 조화는, 그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 자연히 따르는 법이다." 서양적 사고와는 다르다. 서양은 야망을 성장과 진보의 근원으로 본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 끝없는 야망은 끝없는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5) 싸워야 할까, 물러나야 할까: "싸움을 걸지 말되, 받아들여라. 1보 전진하는 것보다, 10보 후퇴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노자의 철학은 부쟁(不爭)의 철학이다. 싸우지 않는 거다. 

벌써 우리는 노자 <<도덕경>> 제29장을 읽을 차례이다. 우선 한 구절 씩 나누어 정밀 독해를 해 본다. 그 내용은 블로그로 옮긴다. 원하시는 분은 다음 사이트로 따라 오시면 된다. 오늘 오후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가고 싶다. 경외의 마음으로.

https://youtu.be/sCgVu267Xx0


바람이 불어오는 곳/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즐거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노자<<도덕경>> 제29장 정밀 독해이다.

• 將欲取天下而爲之(장욕취천하이위지) 吾見其不得已(오견기부득이): 천하를 취하고자 하지만,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그건 부득이한 일(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볼 뿐이다. 요즈음 쓰면 말로 해보면, '세상을 장악하여 다스려 보려 하여도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또는 '온 천하를 먹으려고 발버둥치는 자를 보면, 나는 그 먹지 못함을 볼 뿐이다.' '세상을 갖고자 인위적으로 노력한다 해도 쓸데없는 노력임을 나는 안다.' 최종적으로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만일 천하를 취하고자 억지로 도모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서 "장(將)"은 '만일 ~이라면'으로 해석하면, "만일 천하를 취하고자 한다면', 또는 '천하를 취하려고 발버둥치는 자를 보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부득이(不得已)"를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로 보면, 그것은 무지무지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도올은 "나는 그 얻지 못함을 볼 뿐이다"고 해석했다. 나는 <<장자>>를 읽으며 "부득이"라는 말을 배웠다. <<장자>>라는 책에 흐르는 중심은 다음과 같은 말들로 이해하고 있다.
(1) 망아(忘我):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다.
(2) 승물유심(乘物遊心):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의 파도를 타다. 사물이나 일의 변화에 맡겨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음을 노닐게 한다.
(3) 탁부득이(託不得已) 양중(養中):  어찌할 수 없음에 맡김으로써 중(中)을 기른다. '탁부득이'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 일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내면의 세계를 어디에도 기울이지 않고 중(中)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무위(無爲)의 가르침'이다. 모든 것을 억지로 하거나 꾸며서 하지 말고,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이 '무위의 가르침'이다. 이는 억지로 꾸민 말, 과장한 말, 잔재주를 부리는 간사한 말, 남을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말, 남을 억지로 고치려는 말 등을 삼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遊心, 유심) 하십시오.
(2) 부득이 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託不得已, 탁부득이),
(3) 중심을 기르는 데(養中,  양중) 전념하십시오,
(4) 그저 그대로 명을 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억지로 거역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라는 말이다. 이를 우리는 '안명론(安名論)'이라 한다. 니버의 기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나는 작년에 이런 기도를 만들었다. 올해도 잘 기억할 생각이다.
주님  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는 말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 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 天下神器(천하신기) 不可爲也(불가위야)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천하는 신령한 그릇이니, 함부로 취할 수가 없다. 행 하고자 하면 실패하고, 잡고자 하면 잃는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천하란 신령한 기물이다. 도무지 거기다 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는 자는 패할 것이고, 잡는 자는 놓칠 것이다.' '세상은 신기한 것이라 갖고자 하여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갖고자 노력해도 실패하게 되고, 집으려 해도 놓칠 것이다.' '천하는 신이 만들어 논 신기한 그릇이기에, 억지로 도모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니다. 도모하고자 억지로 행하는 자는 실패하게 되고, 붙잡고자 억지로 행하는 자는 잃어버리게 된다.  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세상은 신비스러운 것이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잘 해보려고 해도 실패하게 되고,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된다.

세상은 신성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다는 거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을 망칠 것이고, 그것을 휘잡으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고 말 것이다는 말이다. 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가? 세상은 신령하니까. 다시 말하면,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원리와 리듬이 내재해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깊고 높은 차원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할 때 제발 경외(敬畏)의 태도로 대할 줄 알라는 이야기이다. 난 경외(敬畏)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이다. ‘외경’이라고도 한다. 두려워 할 ‘외’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경외'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좀 두려워 하면서 만나야 한다. 이어지는 <<도덕경>> 제29장 이야기는 노래와 시를 읽고 이어간다.

• 故物或行或隨(고물혹행혹수) 或歔或吹(혹허혹취) 或强或羸(혹강혹리) 或挫或隳(혹좌혹휴): 사물은 혹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고,  혹 숨을 내쉬기도 하고 들이쉬기도 한다.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것도 있고, 선반 위에 놓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거기서 떨어지는 것도 있다.


여기서 "고물(故物)"은 그러므로 세상 사물의 이치"로 보면 좋다. 그 다음 문장은 '앞서 가는 것이 있으면, 뒤따른 것이 있고, 들여 마시는 것이 있으면 내뿜는 것이 잇고, 강한 것이 있으면 여린 것이 있고, 북돋아 오르는 것이 있으면 무너지는 것이 있다'로 읽으면 된다. 이는 여러가지 변화 과정을 말하는 거다. 이런 변화 과정, 변수 때문에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이도 있다. '세상 만물은 스스로 가기도 하고, 남의 뒤를 따라가기도 하며, 또 어떤 것은 강하고, 어떤 것은 약하며, 어떤 것은 좌절되고, 어떤 것은 무너진다.' 또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앞서서 가는 것도 있고 뒤따라가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숨을 천천히 쉬는 것도 있고 급하게 쉬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강하고, 어떤 것은 약하다. 어떤 것은 올라가고, 어떤 것은 내려간다.' 내 생각은 가되 앞서고 뒤 서고, 내쉬되 크고 작게, 힘이 있되 간하고 약하고, 파괴되어도 그 정도가 크고, 작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 是以聖人(시이성인) 去甚 去奢 去泰(거심 거사 거태) : 따라서 성인은 지나친 것과 사치, 교만하지 않는다. 

여기서 "거(거)"는 버리거나 피하는 거다. 여기서는 성인의 태도이니까 그냥 '않는다'로 보는 것이 좋다. 성인들은 애초에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 버린다 또는 물리친다는 맞지 않아 보인다.  "심(甚)"은 지나치고 극심한 것이고, "치(奢)"는 사치하는 거고, "태(泰)"는 과분한 또는 교만한 또는 태만한 거다.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과도한 것을 버리고, 과욕을 버리고, 교만을 버린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지나친 것을 피하고, 꾸미는 것을 버리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나는 '이로써 성인은 지나치지 않고 사치스럽지 않, 교만하지 않는다'로 풀이하고 싶다.

이 장의 핵심은 "천하(天下)는 신기(神器)라서 불가위야(不可爲也)니라. 위자(爲者)는 패지(敗之)하고, 집자(執者)는 실지(失之)하게 마련이다'이다. 이는 이 세상의 리더들에게 보내는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 사유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를 해 보겠다고 설치지 말라는 거다. 세상은 인간의 꾀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신비한 면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원리와 리듬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서 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이 있고, 그뿐 아니라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도 앞서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때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 일방적이고 피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 가는 인간이 세상을 뜯어고친다 어쩐다 하면서 함부로 덤비다 가는 자기 코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나 자연 자체에도 손상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게 된다는 거다. 세상을 외경의 태도로 대할 줄 알라는 이야기이다.

거듭 말하지만, 천하, 권력이나 부, 명성들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잃는다. 사물은 혹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한다. 모든 사물을 앞에만 둘 수는 없다. 숨은 때로는 내쉬어야 하고 때로는 들이쉬어야 한다. 내쉬기만 하거나 들이쉬기만 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사물은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다. 모든 것을 강하게만 할 수는 없다. 도는 편벽된 것, 치우친 것, 극단적인 것에 있지 않다. 그래서 성인은 극단을 피한다. 그러니 극단적인 말과 행동, 지나친 부와 권력, 명성을 갖지 않는다는 거다. 이는 우리 자신에게도 보내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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