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국영화 100주년에 칸느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그 상 이름이 '황금종려상'이다. 영화제목이 <기생충>이다. 글쎄, 난 기생충에 대한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으로 외면했었다. 그런데 프랑스어로 번역된 제목이 'parasite'였다. 이 단어를 <프랑스어 사전>에서는 '식객, 기식자, 기생충 같은 존재'로 풀이한다.
난 지난 해부터 내 인생을 더 이상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기여'하는 사람(contributeur, contributor)으로, 내 인생의 나머지로 채우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기생하는 인간으로 키운다. 조벽 교수가 하는 말이다. "내가 먹여주고 태워주고 입혀주고 뭐 사주고 다 할 테니까 넌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해. 공부해서 남 주냐? 오로지 너만 위해서, 네 주변에 있는 거 네가 다 끌어다 써라." 이런 말을 듣고 큰 사람이 기생하는 존재의 특성이다. 기여하는 존재가 되게 하려면, '공부해서 남 주냐"며 이기심을 부추기는 풍토를 반성해야 한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훗날 돈도 벌고 얻을 거 다 얻은 후에.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하겠다는 것은 헛소리가 되기 쉽다.
<기생충>의 배우 송강호는 "제목은 '기생충'이지만 '공생'과 '상생'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말하며, '충'보다 '기(奇)'에 집중해달라고 했다. 식물의 세계에서 남의 몸에 붙어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식물을 '기생 식물'이라 한다. 일은 하지 않고 선량한 사람들을 등쳐먹고 사는 사람을 우리는 '기생충 같은 사람'이라 한다. 기생의 관계에서 양분을 빼앗기는 쪽을 '숙주' 또는 '임자몸'이라 하고, 양분을 빼앗는 쪽을 '기생' 또는 '더부살이'라고 한다. 식물계에서 기생 식물은 잎이 없으며 숙주 식물보다 빨리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드는 약삭빠른 식물이기도 하다.
사람도 '기생하며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이가 있다. 기생과 공생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없다.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 한다. 숙주의 입장에서 볼 때 기생이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 그리고 기생하는 사람은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환경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기생이든, 기여이든, 상생이든, 공생이든, 서로 존엄 지키면 '기생'은 '상생'으로 나갈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기생과 공생을 가른다고 봉준호 감독은 말에 나는 동의한다. 오늘 사진 처럼, 모든 존재는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존재하게 되어 있다. 남 한테 주는 게, 나 한테 주는 거랑 마찬가지다.
오늘 저녁에 영화 <기생충>을 볼 계획이다. 예약해 두었다. 딸과 저녁도 같이 먹고 영화를 볼 생각이다. 아마도 서로 존엄을 유지하고, 서로 예의를 지키며 '비스듬히' 기대여 사는 따뜻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일 것 같다.
비스듬히/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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