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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3)

198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3일)

 

오늘 아침은, 세 번째로 앵커스 플레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한다. 나는 문학이 온갖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방식이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기도 하였다. 오늘은 그리스 비극의 치유 효과를 개선하기 위한 혁신으로 나온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자기 효능감'이 있을 때 외상 후 두려움에 대한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는 거다. 여기서 자기 효능감은 우리가 트라우마 후 두려움을 잘 처리해서 결국 극복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이다. '나는 이 두려움보다 더 강해'라는 생각이 머리에 깊숙이 박히는 것이다. 자기 효능감이 있으면, 어제 말한, 자전적 검토와 EMDR이 상당히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리스 비극은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메커니즘을 개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 메커니즘을 포착했다. 그는 특정한 비극적 플롯, 즉 캐릭터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처음엔 모르다가 나중에 가서야 인식하게 되는 상황에서 카타르시스의 치유 효과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뒤늦은 인식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라 불렀다. 우리는 이를 "상처 지연(hurt delay)"이라 부른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의 목적은 트라우마를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자리에 관객을 배치하는 거다. 이러한 선지적(先知的) 배치는 전두엽 피질의 '관점 수용 네트워크'에서 강력한 우주적 아이러니를 자극하여 비극을 신처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전지전능한 입장은 뇌에서 깊숙한 감정 영역의 활동을 감소시켜 우리 앞에 놓인 충격적 사건에 대해 완충제로 작용한다. 아울러 자기 효능감도 높여준다.

흥미로운 주장이다. 자기 효능감은 '상처 지연'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부터 높아진다. 정리하면, 상처 지연은 우리 뇌의 관점 수용 네트워크를 활발하게 자극하여 우리가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거다. 자신의 '사유의 시선'을 높이는 거다. 예를 들면 재앙을 더 방대한 우주적 패턴의 일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다. 이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트라우마를 이겨내도록 도와 주면서, 동시에 자기 스스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임상 시험에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면 트라우마 회복률이 상당히 더 높아졌다 한다. 또한 '상처지연'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에게 대처할 능력을 키워준다는 거다. 예컨대, '무력감(helplessness)'이라는 비극적 느낌을 '유력감(helpfulness)'이라는 심리적 기분으로 바꿔 줌으로써, 치유할 힘이 있다는 믿음을 우리 뇌에 심어준다는 거다.

그러니까 등장 인물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나중에 인식하게 하는 '상처 지연(아나그노리시스)'의 플롯으로, 트라우마를 관객이 먼저 알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더 높은 위치에서 그 비극을 보게 하는 장치가 자기 효능감을 올려준다는 거다. 그 자기 효능감을 키우면, 카타르시스의 치유 효과가 더 향상된다는 거다. 그런 치유 뿐만 아니라, 시선을 높여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일은 삶의 지혜인 것 같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갑작스런 사고,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 혹은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들이 있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고 자체가 아니라, 그 사고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 중에 하나가 자기-자신이 저 높은 경지로 올라가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줌-아웃'하여 자기 자신을 관조해보는 거다. 줌-아웃은 에픽테토스가 말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부, 명예 그리고 권력의 유혹을 약화시키고, 1인칭과 2인칭(나와 너), 더 나아가 1인칭과 3인칭(나와 그 혹은 그것)의 구별을 점점 모호하게 만들어, 하나로 융합한다. 배철현 교수의 표현을 공유한다. "'나는 나'일 뿐만 아니라, '나는 너'이며, '나는 결국 그것'이 된다. 내가 너가 되는 과정이 연민이며, 내가 그것이 되는 깨달음이 해탈이다."

이런 연민과 해탈이 문학을 통해 키울 수 있다는 거다. 그리스 비극이 발명해 놓은 발명품을 앵커스 플레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와 함께 찾아 보려 한다. 저자는 두 가지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문학에 적응시키기'이고, 두 번째는 '문학을 우리 마음에 적응시키기'이다.

첫 번째 방법으로, 상처 지연의 경우, 문학 발명품이 작용하는 방법에 관한 청사진은 우리에게,
(1) 오이디푸스의 재앙을 마리 알게 함으로써 아이러니하면서도 전지전능한 기분을 수용하게 하고,
(2) 오이디푸스의 고통을 지원하도록 코러스와 함께 손을 내밀게 하며,
(3) 고마워하는 오이디푸스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세 단계를 밟으면, 그리스 비극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거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회백질, 즉 뇌는 적응력이 뛰어나서 온갖 종류의 문학에 알아서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의 취향에 유기적으로 더 맞는 동시대 문학에서 그러한 발명품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거다. 많은 현대 소설 속에서 트라우마의 시간을 비트는 이 장치는 주인공보다 먼저 비극적 운명을 감지하게 함으로써, 우리 뇌에 우주적 아이러니를 맛볼 힘을 제공한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비극적 순간에 함께 있어 줌으로써 그들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감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기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문학 발명품들을 알면, 그것들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거다. 예컨대, 상처 지연(플롯 반전) 같은 발명품은 우리의 정신 건강을 개선할 수 있게 하고, 확장(정신적 스트레치, 관심 전환) 같은 발명품은 우리의 행복감을 키워 줄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을 더 멋진 삶으로 이끄는 다목적 도구로 여겼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슬픔, 원한, 비관, 수치심, 애통, 곱씹기, 반사적 사고, 자기회의, 무력감 등 요즈음 정신과 의사들이 흔히 정신적 고통으로 규정한 것들을 겨냥한다.
(2) 용기, 사랑, 호기심, 믿음, 에너지, 상상력 등 요즘 심리학자들이 웰빙 부스터, 즉 행복 촉진제라고 규정한 것들을 전해준다.
(3) 자유로운 생각과 문제해결 능력, 편견 해소, 조건법 추측, 인지적 유연성, 재학습, 자기성찰 등 실용적인 삶의 기술을 길러주어 우리의 정신 건강과 행복감을 간접적으로 높인다.

중요한 것은 건강식품과 규칙적인 운동이 의사의 치료와 혈압약을 보충하듯이, 이러한 혜택도 정신의학을 보충할 뿐이라는 점이다. 다만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못지 않게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문학도 상당한 혜택을 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예컨대, 용기 촉진제, 사랑 증식기, 공감 발생기, 자유와 해방감 등이다.

문학은 "배고픈 사람에게 빵 하나 주지 못한다."(앙드레 지드) 그러나 "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추문을 퍼트림으로써 이 비정한 세계의 가혹한 현실을 폭로하고 선의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든다."(김병욱) 문학은 그 '쓸데없음'이 마련해준 자유를 통해 실용주의에 매인 욕망에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그 실용성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김현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문학의 효율성은 그 쓸모를 거부하는 데서 얻는 자유와 해방의 귀중함에 있음을 말하였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드라마 <나의 아저씨>을 썼던 박해영 작가의 신작 <나의 해방일지>를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다. 제목에 '해방'이 들어가서 이다. 이 드라마가 지금까지 보여주는 "해방클럽" 이야기는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이어간다. 오늘 시처럼, 우리는 늘 후회한다. 그래도 나는 늘 그것 들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지나간 사랑은 후회로 남는다/김철현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었더라면
미련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말해주려 했었는데
사랑할 수 없는 지금에야
후회가 아쉬움이 되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었더라면
전부를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 했었는데
기다릴 수 없는 지금에야
원망이 전부가 되었다.

아쉬움이
후회로 남기 전에
원망이
전부가 되어
가슴을 허물기 전에
사랑하고
기다려 줄 수 있기를…….


드라마에 나오는 첫 번째 해방클럽은, 사람을 관리하고 감독한답시고 괴롭히고 억압하는 그 모든 일상의 권력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소모임이다. 그들은 일단 ‘똑바로 마주보고 앉는 모임의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냥 셋이서 각자 창밖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야기한다. 사람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조직에 복종하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 애인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회성 뛰어난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으로 나누는 그 모든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은 일단 굳이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 편안함에서 시작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알코올중독자 구씨와 염씨네 막내딸 염미정과의 로맨스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해방클럽이다. 미정은 우리가 서로를 조건 없이 추앙한다면 분명 삶이 달라질 거라 믿는다.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평범한 사랑으로는 부족한, 한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 추앙. 그것은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게 따스한 응원의 눈길을 보냄으로써 시작되는 거다. 사랑과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모든 편견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관계. 그것은 다만 서로를 온전히 ‘추앙’함으로써 시작된다. 늘 불완전한 사랑에 시달렸던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는 것은 어쭙잖은 연애, 늘 눈치보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를 빈틈없이 채워주는 순수한 추앙의 눈길이 아닐까? 추앙이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신선하다. 

다짜고짜 자신을 추앙해달라는 미정의 당혹스런 부탁에 구씨는 당황하지만, 그 또한 미정의 결핍을 알아본다. 한 번도 온전히 채워진 적이 없는 존재. 항상 결핍과 우울에 시달리는 존재. 나를 무작정 추앙해달라는 미정의 참담한 눈빛 속에 숨겨진 영혼의 허기를, 구씨는 이해한다. 구씨 또한 방안을 빼곡하게 채운 초록색 소주병으로도 결코 해결하지 못한 결핍과 절망을 홀로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야기는 정여울의 글을 보고, 원래 드라마를 보지 않지만, 어제부터 시작한 드라마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나도, 나만의 해방클럽을 시작해 보고 싶다. 나의 경우는 와인을 마시는 일이지만, 술에 취해 이루어진 관계는 거기서 멈춘다. 술자리에서의 건배와 같다. 건배란 "소리는 쨍! 의미는 쿵! 건배는 두 사람이 마주보고 달려와 가슴을 쿵 부딪치는 의식, 서로의 가슴에 풍덩 빠지자는 약속. 그러나 늘 술잔에 빠지고 마는 허무한 약속."(정철, <사람사전>)

그래도 나는 해방클럽을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먼저 내가 당신을 추앙하겠다. 내가 먼저 추앙하다 보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관심이 없어도, 당신이 내 문자를 ‘읽씹’하더라도, 당신에게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나의 결핍을 채워 보련다. 그런데 당신이 구체적으로는 없다. 추앙은 '높이 받들어 우러르는 것', '우러러봄'이란 말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날 추앙해요." 그러나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말하리라.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는 내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존재의 빈틈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머리로 알고 있다. 우리는 각자 내면의 영혼의 허기를 느낀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늘 쓰레기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그런 기분을 건져주는 발명품들이 문학에 있다는 걸 알았다.. 문학은 그러한 두려움을 치료해 준다. 아니면, 극장이나 미술관에 있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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