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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별을 보며/이성선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벌써 1년 전이다.

어제는 ‘윤며드는(윤여정에 스며드는)’ 하루였다. 그녀처럼 늙고 싶다. "윤여정의 연기도, 작품도, 매일 좋아하는 사람과 일하는 건 사치라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여정도 좋았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윤여정처럼 늙어가는 것’을 통해 나이듦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 것이야말로 대체불가한 윤여정이 해낸 일이다."(국민일보 김나래 기자) "나이든 여성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어떤 한 명의 예술인, 연예인, 배우라는 느낌이 컸다. 나이에 의해서 좌우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입고 싶어하는 것, 하고 싶어하는 것, 도전하고 싶은 것에 의해 정의되는 사람이다.”(나영석 PD)

2020년 지난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작품상 및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에 이어,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102년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윤여정의 수상 소감이 '유니크'했다는 점이다. 미국 언론들도 그녀의 매력적인 수상 소감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평하였다. 사실 그녀의 유쾌하고 재치 있는 수상 소감은 준비를 잘 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녀는 꽃 길만 아닌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녀의 삶의 여정만으로도 매력이 차고 넘친다.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운 위대한 어머니의 성공담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랜 꿈을 키워 나가 마침내 성공한 대기만성 배우를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그 지난한 시간을 담담하고 꿋꿋하게 살아낸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마이뉴스>의 은주연 기자의 말처럼 말이다. 은 기자의 다음과 같은 글 제목이 인상 깊었다.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복수'라니요, 저만 불편한가요?"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집 나간 남편 대신 두 아들을 홀로 키워내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연기를 했다는 그녀의 인터뷰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배우 역시 돈이 급할 때 가장 연기를 잘 하는 법이다."(2009, 12, 09, MBC <무릎팍도사>) 그녀가 했다는 말을 소환한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를 공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갈며 '성공할 거야! 두고보라지!'라는 독한 결기를 뿜어내기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을 수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간다. 오히려 독한 결기를 지녔던 그 시절이 더 불행했었다. 그걸 내려 놓는 순간 육체적, 정신적 균형을 찾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감사하면서. 그 감사가 윤여정의 내공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은 기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설사 윤여정이 마음 속으로 '한국 최고의 배우가 될 거야!'라는 칼날만을 갈았더라면, 우리는 그녀의 오스카상 수상 소식은 들었을 지 몰라도 그녀의 우아한 수상 소감은 듣지 못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두고두고 회자될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만날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의 말에는 자신을 높이는 노욕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품격 있는 유쾌함, 고단한 삶이 주는 경륜, 그런 격조 있는 사람으로, 그녀는 '배우고 싶은 어른'이다. 그녀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 아니 자세를 배운다.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희망을 준다. 지난한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내 삶에도 그런 여유와 품격이 마나리처럼 심어져 자랄 테니 말이다. 은기자의 말처럼, 더 나이 먹어 무슨 상을 타지는 못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격조 있는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우아한 노인이 된다면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오늘 아침은 주말농장에 심어 둔 미나리를 조금 잘나다가 저녁에 먹을 생각이다. 미나리 같은 애정의 씨앗을 내 마음 속에 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상식과 다른 인터뷰에서 그녀가 했다는 말들 중,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포착된 것들을 공유한다.

(1)  각자의 색을 가진 배우들 간의 경쟁이 싫다는 그녀는 오히려 '최고'가 아닌 '최중'의 가치를 역설했다. "나는 '최고' '1등' 그런 말 싫어요. 우리 그냥 다같이 '최중'만 하고 살면 안 돼요? 우리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 모든 것을 줄 세우고, 최고, 1등이 되기 위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어버리는 경쟁 시대에 너무 좋은 말 이다.  최고가 아닌 최중이 되어 함께 더불어 살자는 말이 인상적이다.

(2) 이번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가장 큰 경쟁자는 글렌 크로스(<힐빌리의 노래>)였다. "글랜 클로스가 진심으로 받길 바랐어요. 참 대단하더라고요." 배우의 가치는 트로피 하나만으로 쌓이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 했고, 서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내가 운이 더 좋아 오늘 밤 이 자리에 섰다."

(3) 영화 <미나리>는 미국 내 인종 혐오에 대한 경고등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윤여정의 수상은 분명 지난달 혐오 범죄 반대 시위에 나섰던 미국 내 한국계 및 아시아계 여화인들을 넘어 아시아계 혐오 및 범죄를 일삼는 미국인들에게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시상식을 주최한 아카데미 위원회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윤여정이 한 말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은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아요.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는데,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주요하고,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예쁘게 만들어야겠죠.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들이잖아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끌어 안아야죠."

여기서 잠시 멈추고, 그녀가 미국 LA 총영사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했다는 기자회견의 어록은 시를 한 편 감상 한 후로 넘긴다.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그녀는 솔직하면서도 따뜻하고, 호탕하면서도 세련된 그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인터뷰였다고 한다. 윤여정은 '별'이다. 그래 이성선 시인의 <별을 보며>를 소환한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다.

별을 보며/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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