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푸른 잎을 한웅 큼 훑어 꽉 쥐어짜면 연한 녹색물이 떨어질 듯한 산책길을 너무 걸어, 오늘은 하루 종일 피곤했다. 연두가 녹색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색이 변화하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연이 농담(濃淡, 진함과 묽음)의 붓질을 해댄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暗綠, 어두운 초록색)일만큼 신록이 눈부시다.
오늘은 산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바로 본다는 것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깨달음과 실천의 시작은 바로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리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시작하면, 내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다. 진짜 다이내믹하고, 한 번에 올인하는 기질도 있고, 굉장히 낙천적이긴 한데 근본적인 통찰 같은 건 약하다.
오늘 아침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 좋다.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허공으로 가지를 뻗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은 뛰어난 상상력으로 나무를 “빛의 광맥을 찾는” 광산으로 바꿔 놓는다. 허공은 너무 단단해 나뭇가지는 일 년에 “일 미터도” 자라지 못한다. 불쌍하게도 광부들은 어두운 나뭇가지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 그 속에서 깊이와 향방도 모른 채 뼈 빠지게 일만 한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 아닐 수 없다. 한데 멀리 있는 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절망스럽지는 않다."
다음 주부터는 바쁘다. 그리고 10시에 뱅샾의 문을 닫는 것도 해제된다. 어서 빨리 백신 접종이 많이 이루어져, 마스크 벗고, 5인 이상 모이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아침에 오늘 공유하는 아침 사진을 찍고 <나무와 광부>라는 시를 소환했다.
나무와 광부/이선식
나뭇가지들이 허공의 지층을 파고들어간다
허공은 얼마나 견고한 지 일 년 내내
일 미터도 전진하지 못한다
나뭇가지 좁은 갱도 속 광부(鑛夫)들은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갱도 속에 뼈를 묻었다
대낮의 칠흑 속에서 빛의 광맥을 찾는 나무다 나는
너는 멀고
가닿아야 할 깊이를 모르니
흰 날들의 향방이 캄캄하다
꽃,
해마다 단 한 번 허락된 등불을 밝혀 길을 찾는 측량
그리고 또 한 해 나의 완성인 너를 찾아
마지막 뼈를 꺼내 허공 속 갱도를 판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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