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1일)

목련은 도도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지저분하다. 목이 부러질 듯이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리며 뽐내다가 질 때는 남루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가 목련같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가 흐르지 않아, 몇 일전부터 뉴스를 끊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깔끔하게 정리한 한 칼럼을 읽었다. 한국일보 박석원 국제 부장의 글이다. 제목은 "푸틴의 무리수가 바꿔 놓은 국제질서(2022년 3월 21일)"이다. 국내 정치도 크게 요동치는 모양이다. 질서가 바뀔 것이다.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울 때가 아니다.
정치가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은 동부 돈바스를 대량 학살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 되어오던 국제질서에 무력으로 현상변경을 시도한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는 해석하여야 한다.
푸틴의 의도는 단기간 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젤렌스키 정권을 무너뜨려 친러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에 제동을 걸고 러시아의 안보를 지키는 구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냉전 종식 이후 쪼그라든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고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존재감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개전 25일째를 넘어선 지금 단기전은 실패로 규정되는 분위기다. 현재까지 이 전쟁이 일으킨 현상은 다음과 같다. 좀 긴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1. 동맹, 우방 규합 어려움을 겪던 미국에 선물: 푸틴은 정치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유럽에서 중립적이던 나라들까지 모두 미국 편에 서게 됐다. 민간인을 공격하고 잔학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그를 국제사회 ‘공공의 적'이자, 전범 히틀러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침공 전 독일이나 프랑스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일정부분 인정하고 유럽에서 공존을 실천해왔지만 지금은 입장이 명확 해졌다. 그 결과, 동맹, 우호국을 한데 묶는 데 어려움을 겪던 바이든 미 행정부에 푸틴이 선물을 안겼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취임 일성이 ‘허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던 바이든은 이번 일로 손쉽게 목적을 달성했다.
2. 중국은 대만 침공 시 겪을 제재 간접 체험 중: 중국 이야말로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중국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세계 각국과 거리가 멀어졌다. 중국이 챙긴 이익이라곤 미국이 동아시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는 것 정도다. 푸틴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을 흔히 말한다. 그러나 향후 중국이 맞닥뜨릴 불길한 징조는 널려 있다. 유일한 친구인 러시아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산 원유나 원자재 수입, 금융거래 등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혜택을 베풀더라도 서방의 제재가 계속되고 푸틴이 권력을 유지하는 한 중국은 함께 늪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골칫거리를 계속 옆에서 도와주는 꼴이 된 것이다. 더 큰 치명상은 경제제재가 주는 실질적인 ‘억지력'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규모나 포괄성, 그 효과는 국제사회의 동반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리고 대만을 침공할 경우 중국에 돌아갈 파괴력을 중국은 간접 체험하는 중이다. 이번 사태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회사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체제가 안고 있는 정치적 위험을 경험한 외국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중국 밖으로 눈을 돌리도록 내몰리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슬픈 현실을 우리는 겪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다. 러시아군이 쏜 박격포탄에 피란 가던 일가족이 쓰러지고, 빵을 사러 줄을 섰다 거리에 떨어진 포탄에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충격적인 영상과 사진이 공개됐는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비극적 장면이 반복되지만 이를 멈추려는 노력은 소극적이다. 국제사회는 무기력하다. 아니 제 잇속 챙기기 위해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인 전쟁을 제어할 나라와 국제기구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대 강대국의 비토권에 막혀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슬픈 사진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번 전쟁으로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강하고 호전적인 군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초기 전략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상대국을 얕본 안이함이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초기 전황이 그 증거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피해국 지도자나 국민의 항전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 세계에 보여줬다. 어느 나라든 최악의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국방부가 무기를 버리고 평화를 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통일부가 하면 된다. 국방과 평화통일, 두 가지 카드를 양손에 쥐고 결정은 대통령이 하면 된다. 이게 국제정치에 나서는 국가의 ‘지렛대'다."(박석원)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전쟁이 미국의 꽃놀이패가 될까, 패착이 될까? 궁금해 한다.
어서 우리 다같이 우크라이나에 <<사닥다리>>를 세우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음)이다.
사닥다리/황인숙
봄이 되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겠네
은빛 사닥다리
은빛 사닥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오르겠네
사닥다리, 뼈로만 이루어진 사닥다리
한 디딤마다 내 발은 후둑후둑 떨겠네
내 손은 악착같이 사다리를 쥐겠네
사닥다리, 발이 손을 따르는 사닥다리
구름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대추나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종달새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돌멩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땅바닥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내 사랑이 아슬아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봄이 되면
땅바닥은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네
<사닥다리>라는 시를 읽다 보니, 우리 사회가 걱정된다. 우리 사회도 '사닥다리'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일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고 이는 여러 형태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으로 오르는 사다리는 이미 걷어차인 지 오래다. '진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한없이 정제된 언행과 집단의 숙고(熟考)를 통해 만들어진 결정을 수용하고 준수하려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편협한 편견이란 사실을 모르고 말을 쏟아 내는 정치인들이 언론을 통해, 국민의 정서를 점점 각박하게 만든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1) 승자독식의 1등 숭배 주의, 효율성과 성과 우선의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 가치의 훼손
2) 학력과 일자리마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이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사회
3) 평범한 삶조차 목숨 걸고 도전해서 얻어야 하는 사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공공성과 공화국 정신이 제대로 공유되고 실현될 때라고 본다. 그래야 공동체의 희망이 되살아난다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벌과 권력자와 정치가들, 그리고 학력을 배경 삼는 이른바 엘리트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이란 공화국 시민의 삶이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정책, 즉 사회 공공성을 구석구석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이다. 희망을 걸어 본다.
현재 우리 사회의 비극과 부조리는 근본적으로 부의 편중,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이 불평등은 공공성을 상실한 극소수 기득권층의 사익을 돕는 수단으로 타락해버린 국가권력의 오용 내지 남용이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그래 필요한 것이 '완전한' 민주 정치의 실현이다. 절차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다소 효율적이지 못하고, 시끄럽다 할지라도. 그리고 경제민주화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완전한 경제적 평등은 하나의 몽상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할 경우,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자유로운 삶'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나아가 불평등한 사회는 국가 폭력 없이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야만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그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는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망한다. 이를 피하려면, 공화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나는 공화주의야 말로 다수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유일한 체제이라고 본다. 그런데 공화정의 최대 방해 자는 부의 균형을 완강히 거부하는 부유층의 탐욕이다. 왜냐하면 부의 과도한 격차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의 격차를 가져오고, 그렇게 되면 귀족과 평민의 평등한 참정권을 전제로 하는 공화주의는 존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공익 내지 국익으로 끊임 없이 위장, 은폐하면서 상습적인 거짓말을 한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몽테스키외는 공화주의에서 시민은 "소박하게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평론의 편집장이셨던 고 김종철의 주장도 마음에 와 닿는다. 그에 의하면, 공화주의자는 "고르게 가난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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