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1월 22일)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좋은 삶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자기 스스로를 세우고[자립], 거기에 알맞은 소질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사회적 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성장이고 순환이다."
자립이 시작이다. 배철현 교수의 묵상을 읽다 보면, 자립을 무척 강조한다. 배교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삶을 유지시키는 태양과 같은 것이 있다. 이 신적인 중심이 ‘자립(自立)’"이라고 하며, 자립에 대해 길게 설명하였다. 공유한다. "자립은 자족하는 삶의 비밀이다. 이 중심이 없다면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평화가 깨진다. 고대 그리스인들 만이 인간은 자족하는 인간, 자립하는 인간으로 정의하였다. 한자 ‘인간(人間)’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인간을 의미 하는 히브리어 ‘아담(adam)'이나 라틴어 ‘호모(homo)'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흙'으로 정의했다. 그리스어 ‘안쓰로포스(anthropos)'는 ‘영웅처럼(andro-)' 고개를 쳐들고 멀리 보는(ṓps) 사람'으로 정의했다. 이족 보행하는 인간만이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할 수 있다. 인간만이 두발로 걷기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그(녀)가 스스로 두발로 걷는 순간, 온전한 인간이 된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립은 모든 인간의 심연에 자리를 잡은 부동의 중심이며 나침반(羅針盤)이다."
자립이란 태양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주위의 행성들을 정해진 공식과 규율에 따라 움직이게 만든다. 만일 이 중심이 흔들거리면, 그 사람도 흔들린다. 만일 그가 자신의 태양에 의존하지 않고, 가까이 있는 금성이나 화성에 의존한다면, 그는 금세 정해진 길에서 이탈하여 우주의 고아가 될 것이다. 인간은 홀로 서기를 연습해야 한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손을 의지하거나, 전동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다면, 나는 영원히 올바로 걸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심연에 건재한 자립으로 부터 만족과 위안을 얻는다면, 나는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의존하도록 아이들을 키운다.
어제 뉴스에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소식이 많았다. 그 중 관심을 끌었던 멘트는 "힘의 본보기가 아닌, 본보기의 힘으로 세계를 이끌겠다"는 말이다. 말 뿐이 아니길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 또 다른 멘트 하나를 보았다. "우리가 마음을 닫는 대신, 영혼을 열면, 관용과 겸손을 조금 보여준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볼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통합]을 해결할 수 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영혼을 열고, 관용과 겸손으로 자신의 마음을 재배치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불편을 받아들이면, 소통이 시작되고 갈등이 풀린다. 겨울 들녘에 서면 안다. 아침 사진은 겨울 들녘을 걷다 만난 갑천의 모습이다.
겨울 들녘에 서서/오세영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 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기린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새끼 기린은 태어나면서부터 일격을 당한다. 키가 큰 엄마 기린이 선 채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수직으로 곧장 떨어져 온몸이 땅바닥에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충격으로 잠시 멍 해져 있다가 간신히 전신을 차리는 순간, 이번에는 엄마 기린이 그 긴 다리로 새끼 기린을 세게 걷어찬다. 아픔을 견디며 다시 정신을 차리는 순간, 엄마 기린이 또 다시 새끼 기린을 힘껏 걷어찬다. 처음보다 더 아프게 걷어찬다. 새끼 기린을 깨닫는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가는 계속 걷어차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새끼 기린은 가늘고 긴 다리를 비틀거리며 기우뚱 일어서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 엄마 기린이 한 번 더 엉덩이를 세게 걷어찬다. 충격으로 자빠졌다가 벌떡 일어난 새끼 기린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엄마 기린이 달려와 아기 기린을 어루만지며 핥아 주기 시작한다. 엄마 기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새끼 기린이 자기 힘으로 달리지 않으면 하이에나와 사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을 걷어 차는 것이다. 일어서 달리는 법을 배우라고. 까뮈는 "눈물 나도록 살라"고 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어머니가 세상에 내놓은 날 그 날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링게 태어남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다. 인생이 우리를 세게 걷어차면 우리는 고꾸라진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그게 성장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함께 정해진 장소에서 모여 살면서,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행복은 타인과 그들이 만든 물건들에 있다고 교육받고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조절할 수 없어 예측이 불가능한 타자의 변덕變德에 의존하여, 항상 실망과 후회를 반복한다. 타인이나 물건에 의존하지 않고, 태양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중심에 의존하는 사람, 즉 ‘자립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고요하고 침착하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자는 다른 사람의 손길이나 목다리에 의존한다.
아기는 1년이 지나면서 아이가 된다. 이 애기는 이리저리 걸으면서 다리에 힘이 생기고 엄마의 손길 없이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정신적으로 자립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상황을 고려하고 판단하며, 자신의 숙고를 행동으로 과감히 옮길 수 있어야한다. 그는 자신을 위한 최선을 선택하고 자신의 의지로 목적지를 향해 걸을 수 있어야한다. 누구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은 불안이며 실패다. 그러나 자립은 확실하고 굳건하다. 자립은, 그것을 시도하려는 자에게 언제나 자비롭다. 인간이 영원히 평온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곳을 찾아 안주하는 일이다. 나에겐 모든 일을 선별 할 수 있는 본능인, 양심이 있다. 내가 할 일을 그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는 최선을 위한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나는 생각을 선별하여 하나를 찾는다. 내 안에는 의지가 있고, 나는 그 의지를 강화하여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잡고 홀로 설수 있는 인간은, 무슨 일을 하던지 성공이다. 그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중심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립하지 않는 한, 누구의 도움을 청한다. 그것이 신이든 인간이든. 그러나 자립하는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빛을 등불 삼아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의존하는 인간은 남들의 아첨을 공정한 평가라고 착각하고 다른 사람의 비난에 쉽게 상처받는다. 그의 행복은 온전히 남의 손에 있다. 자립하는 자의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 있기 때문에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이지 않는다. 의존이라는 독재자는 나를 혼동으로 몰아친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립>라는 에세이에서 인간들이 쉽게 탐닉하는 값싼 감정들을 경고한다. 교육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실이나 숫자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법이 되는 자신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는 과정이다. ‘교육’이란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자신의 머리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원석原石을 발굴하여 그것을 스스로 빛나도록 다듬는 수련이다. 에머슨은 인간이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다음을 깨닫는다고 확신한다. “시기는 무식이며, 흉내는 자살행위다.”Envy is ignorance and imitaton is suicide. 인생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기엔 너무 짧다.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경청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
자립에 대해 너무 길게 이야기를 했다. 이젠 내일로 미루어 성장과 순환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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