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햇살 한 뼘 담요"가 아쉬운 추위가 계속된다. 이를 우리는 한파(寒波)라고 한다. 그 한파를 '동장군(冬將軍)'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혹한을 의미하는 동장군은 한파(寒波)와 뗄 레야 뗄 수 없다. 언뜻 보면 동장군이 한자어에서 온 것 같지만, 프랑스어(겨울 장군, Le general hiver), 영어(general frost)가 일본어(후유쇼군)로 번역되면서 그 표현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란다.
이런 식으로 말이 어려운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낭패(狼狽)라는 말이다. 사전을 보면, 낭패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딱하게 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낭(狼)은 이리이고, 패(狽)도 이리의 한 종류이다. 낭(狼)은 앞발이 길고 뒷발은 짧은데, 패(狽)는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길다. 따라서 낭(狼)은 패(狽) 없이는 서지 못하고, 패는 낭 없이는 가지 못한다. 물론 낭과 패는 실제가 아닌 상상 속의 동물이다. 둘은 항상 같이 다녀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낭은 꾀는 부족하지만 용맹하고, 패는 꾀는 많지만 겁쟁이이다. 둘이 호흡이 잘 맞으면 문제 없지만, 서로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오늘 시를 읽으며, '낭패'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는 일에 '낭'과 '패'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햇살 한 뼘 담요"가 되었으면 좋겠다.
햇살 한 뼘 담요/조성웅
울산 용연 외국계 화학공장에 배관철거 수정 작업 나왔다
기존 배관라인을 철거하는데 먼지가 일 센티미터 이상 쌓여 있었다
변변찮은 마스크 하나 쓰고 먼지 구덩이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땀과 기름때로 범벅이 된 내 생의 바닥을 만나곤 한다
마스크 자국 선명한 검은 얼굴로 정규직 직원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까끌까끌한 시선이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기름때 묻은 내 작업복이 부끄럽지는 않았으나
점심시간 어디를 찾아봐도 고단한 몸 쉴 곳이 없었다
메마른 봄바람이 사납고 거칠었다
흡연실에서 담배 한 대 물고 버티는데
축축해진 몸에 한기가 돌았다
흡연실 쓰레기통 옆이 그런대로 사나운 바람도 막아주고
햇살 한 뼘 따뜻했다
함께 일하던 이형이 쓰레기통 곁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더니
몸을 오그려 고개를 숙였다
이내 코고는 소리가 쓰레기통에 소복이 쌓였다
난 그의 곁에서 오래도록 아팠다
안정도 지금 그를 안내할 수 없고
행복도 지금 그를 도와줄 수 없고
코뮤니즘도 지금 그를 격려할 수 없었다
쭈그려 쪽잠 자는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그의 고단한 몸을 깨우지 않는 것이었다
햇살 한 뼘조차 그늘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난 햇살 한 뼘을 가만히 끌어다 덮어주고 싶었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가진 것 하나 없는 맨몸으로 도달한 투명한 수평
햇살 한 뼘 담요!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조성웅 #와인비스트로뱅샾62'햇살 한 뼘 담요"가 아쉬운 추위가 계속된다. 이를 우리는 한파(寒波)라고 한다. 그 한파를 '동장군(冬將軍)'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혹한을 의미하는 동장군은 한파(寒波)와 뗄 레야 뗄 수 없다. 언뜻 보면 동장군이 한자어에서 온 것 같지만, 프랑스어(겨울 장군, Le general hiver), 영어(general frost)가 일본어(후유쇼군)로 번역되면서 그 표현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란다.
이런 식으로 말이 어려운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낭패(狼狽)라는 말이다. 사전을 보면, 낭패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딱하게 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낭(狼)은 이리이고, 패(狽)도 이리의 한 종류이다. 낭(狼)은 앞발이 길고 뒷발은 짧은데, 패(狽)는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길다. 따라서 낭(狼)은 패(狽) 없이는 서지 못하고, 패는 낭 없이는 가지 못한다. 물론 낭과 패는 실제가 아닌 상상 속의 동물이다. 둘은 항상 같이 다녀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낭은 꾀는 부족하지만 용맹하고, 패는 꾀는 많지만 겁쟁이이다. 둘이 호흡이 잘 맞으면 문제 없지만, 서로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오늘 시를 읽으며, '낭패'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는 일에 '낭'과 '패'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햇살 한 뼘 담요"가 되었으면 좋겠다.
햇살 한 뼘 담요/조성웅
울산 용연 외국계 화학공장에 배관철거 수정 작업 나왔다
기존 배관라인을 철거하는데 먼지가 일 센티미터 이상 쌓여 있었다
변변찮은 마스크 하나 쓰고 먼지 구덩이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땀과 기름때로 범벅이 된 내 생의 바닥을 만나곤 한다
마스크 자국 선명한 검은 얼굴로 정규직 직원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까끌까끌한 시선이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기름때 묻은 내 작업복이 부끄럽지는 않았으나
점심시간 어디를 찾아봐도 고단한 몸 쉴 곳이 없었다
메마른 봄바람이 사납고 거칠었다
흡연실에서 담배 한 대 물고 버티는데
축축해진 몸에 한기가 돌았다
흡연실 쓰레기통 옆이 그런대로 사나운 바람도 막아주고
햇살 한 뼘 따뜻했다
함께 일하던 이형이 쓰레기통 곁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더니
몸을 오그려 고개를 숙였다
이내 코고는 소리가 쓰레기통에 소복이 쌓였다
난 그의 곁에서 오래도록 아팠다
안정도 지금 그를 안내할 수 없고
행복도 지금 그를 도와줄 수 없고
코뮤니즘도 지금 그를 격려할 수 없었다
쭈그려 쪽잠 자는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그의 고단한 몸을 깨우지 않는 것이었다
햇살 한 뼘조차 그늘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난 햇살 한 뼘을 가만히 끌어다 덮어주고 싶었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가진 것 하나 없는 맨몸으로 도달한 투명한 수평
햇살 한 뼘 담요!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조성웅 #와인비스트로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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