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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1574.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매주 월요일은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했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면서 <사람 사전>을 쓴 카피라이터 정철은 이야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은 이야기다. 들어줄 귀만 있다면 모든 사람은 이야기다. 지금 그대 곁으로 이야기가 지나가고 있다."

 

이야기들은 아무리 들어도 늘 새롭다. 왜냐하면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전달이 끝나자마자 효과가 소멸되는 '정보'와 달리 , 이야기는 그 의미를 최종적으로 유보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 남는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제곱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모르는 것'에 있지 않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 모르겠다. 도무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없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에서 진행하는 '책 읽고 건너가기' 2월 책이 <이솝 우화>였다. 3월이 다 지나가는 데, 아직 <이솝 우화>를 다 못 읽었다. 대신 3월의 책인 루쉰의 <아Q 정전>은 이미 읽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면 <이솝 우화 전집> 다 읽는다. 이솝은 영어 식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아이소포스'이다. 그는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꾼이다. 최진석 교수는 <이솝우화>의 독후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문자를 사용하는 인간 가운데서 논증하거나 논변에 빠진 자는 크기가 작다. 더 커지고 싶은 자는 이야기를 한다. 논증이나 논변에는 여백이 없다. (...) 이야기는 오히려 빈틈을 생명으로 해서 산다. 이야기에서의 빈틈은 소비되거나 낭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더욱 생명력 있는 율동감을 만들어 내는 생산적 공간이 된다. 듣던 자들은 이 여백의 빈틈으로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이야기에 참여하며 결국에는 이야기의 공동 생산자로 이름을 올린다. 감동의 공유와 폭이 커진다는 말이다."

 

"이야기 하는 자는 크다. 이야기 꾼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 아니겠는가. 이야기 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을 자주 하면 사람은 커진다. 자신을 향해 걷는 자가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하는 자, 질문하는 자, 생산하는 자, 지배하는 자들은 모두 자기를 향해 걷는다. 사람을 일단 크고 굵어야 한다. 그래 최진석 교수는 <이솝 우화 전집>(현대지성)에서 194번 "암사자와 여우"를 가장 마음에 남는 이야기로 꼽았다. "여우가 암사자에게 새끼를 고작 한 마리 밖에 못 낳는다며 면박을 주자, 암사자가 말했다. "한 마리이긴 하지, 하지만 사자야." 그리스 시대에 이 야기를 듣고 남긴 메시지는 "좋고 나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코로나-19로 하고 싶은 일들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코로나 블루가 생기던 참에 나도 이 194번을 만난 후, 자존감이 확 올라왔다.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반면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다. 이 이야기는 오늘 아침 시를 공유하고 이어간다.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수 백 명의 단체로 묶인 카카오 단채 톡에서 알게 된 이야기이다. 오래 전에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학생이 공부를 더하라는 교수와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여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접수 시켰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한테서 부러움의 대상인 천재 학생이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 못하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는데, 수석은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 와 합격자 가족들을뒤로하고핏기가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자존심이 상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을 하고 잠에 들었다 영원한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 전보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하였다.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 했던 것이다.수석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실무자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빠뜨린 것이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 때문에 '자존감'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 하면서 말하였다. “장래가 촉망 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말을 이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다음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서 회사를 엄청난 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 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할 수 있었을지 알겠습니까?”

 

'셰익스피어'는 "달성하겠다 결심한 목적을 단 한 번의 패배 때문에 포기하지 마라"고 하였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을 하기까지 2천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2번의 실패로 깨끗이 포기했을 일을 말이다. '앤 설리반'은 실패에 대하여 이렇게 충고를 하였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한 것은 성취하지 못해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 하는 것을 계속하라.”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가 있다. 내가 나를 존중해야 남도 존중해줄 수 가 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 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남의 탓이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존감 있는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포용하고 양보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간다. 이번 한 주도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인 자곤심을 줄이고,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인 자존감으로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