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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외투/하재일

185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30일)

지인 덕분에 바다 구경 실컷 하고, 조용하게 연말을 보내고 있다. 오늘이 제주에서의 마지막 말이다. 3일동안 제주에서 보냈다.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그동안 비울 것은 비우고, 버릴 것은 버리려는 마음으로 제주 <올레 길>을 혼자 많이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거기서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복제본을 하나 샀다.

세한(歲寒)은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은 그 추위를 체험하기 위해 삼악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 생각이다.

발문의 일부를 읽어 본다.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와 같이 많은 고생을 하여 애써 구한 것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 주었으니, 마치 세상 사람이 권력자를 추구하듯 자네는 나를 따라주었네. 태사공이 말하기를 권력으로 마음을 같이 하는 자는 권력이 사라지면 사귐이 멀어진다고 하였네. 자네 역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일 텐데. 스스로 권력을 따르는 무리를 초연이 떠나서 권력을 쫓아 들어가지 않으니, 나를 권력으로 대하지 않는 단 말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잘못인가? 공자가 말하길 "날이 차가운(歲寒) 이후라야 소나무와 잣나무(松柏)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하였네. 송백은 사계절 시들지 않아 세한 이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자네는 이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이후라고 덜한 것이 없네. 세한 이전의 자네를 칭찬할 것 없거나 와, 세한 이후의 자네 또한 성인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시들지 않는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네."

이젠 정말 2021년도 오늘 빼면 하루 남았다. 되돌아 보니, 올해도 하루도 쉬지 않고, 긴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를 썼다. 그 이야기는 사람(人)과 삶(世界)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들이었다.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고민하는 문제들이었다. 나는 이 글들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 모두 우리가 딛고 있는 자신의 땅 속으로부터 맑고 차가운 지하수를 길어 올려, 우리의 심연을 깨끗하게 하여, 그 속에 우리 자신을 만나길 바랬다.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이 우리 사회를 각성 시키고 싶었다. 더 행복한 사회를 향해 나약한 각 개인은 연대하기 위한 마중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 내 가족만 잘 살면, 뭐하나? 세상이 힘들어 하는데. 우리 주변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마중물은 혼자 힘으로는 세상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하수를 마중하는 한 바가지의 물이다. 마중하는 한 바가지 물은 보 잘 것 없는 적은 물이지만 깊은 샘물을 퍼 올려서 세상과 소통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마중물이 되기 위해, 관계와 활동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1)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큰 변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마중물은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 우리 모두는 누구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물이든 상관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비판으로 깨어나 '자각한 시민'들은 비판을 공유하며 조직의 회원이 되어 '조직된 시민'을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조직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3) 마중물은 우리 가까이 어디에나 있다. 지역과 마을, 현장 곳곳에서 전문가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문제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정책 입안 가와 시민 운동가 될 수 있다. (4) 마중물은 어디에나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다. 이것은 마중물이 항상 열려 있다는 말이다. (5) 마중물이 버려질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러니까 권력에서는 떨어지되 공동체에는 묶여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권력에 밀착해 권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수련하고 연마해야 한다. 작년 오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인문 일기>를 썼는데, 되돌아 보니 실천력이 뒤 따르지 못했다. 올해 다시 한번 정리를 한 후, 일상에 적용하는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삼악산 둘레길>를 걸으며 마음에 깊이 새길 생각이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에 나오는 '못'을 뽑을 것이다. 우리는 그 대못을 감추기 위해 행복한 척 화려한 외투를 걸어 놓고 산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거다. 행복은 그 대못과 함께 사는 지혜에서 오는 것이 보기 때문이다.

외투/하재일

누구나 살면서
가슴에 대못 하나쯤 박고 살게 마련이다

그걸 숨기기 위해
사람들은 녹이 슨 못 위에
자신의 화려한 외투 한 벌을 걸어둔다

못은 박힌 곳에서 버티고 견디다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부러진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라도 나는 성인들이 하신 말씀으로 또 다시 새해를 맞이할 생각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명상록』에서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150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기획자 소만 차이나니(Soman Chainani)는 우리들의 "영혼은 생각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 감정, 이미지, 단서, 실마리를 통해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영혼은 파편처럼 우리 삶 곳곳에, 모든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각, 규칙, 체계, 신념은 대부분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저 우리가 손에 넣지 못하고 있는 "과거 경험의 잔재 물"이라고 한다.

소만에 의하면, 늘 영혼은 우리 내면에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영혼과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헸다. 그래 우리는 영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영혼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말하면, 영혼의 떨림이 없이 산다는 말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산다. 그러나 쇼만은 영혼이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 몰입하여, 자신의 심연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들려주는 목소리, 나의 자아. 두려움, 본능들을 만나는데, 그것들이 나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만이 혼자 찾아가는 장소를 가지고, 잠시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 사이만큼 먼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맹자의 '사단'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주례례(周禮)>>의 한 문장을 공유한다. "대사도는 각 지역에서 백성들에게 매일 다음의 세 가지 일을 가르쳐야 했다. 그러면서 그 곳의 현명한 사람을 뽑아 천거하는 일을 맡았다. 매일 하여야 할 세 가지 일은 여섯 가지 덕목을 가지고, 여섯 가지 행실을 하고, 여섯 가지 예술 행위를 하여야 한다. 그 여섯 가지 덕목은 지식, 어진 마음, 성스러움, 의로움, 충실함 그리고 조화이다." 이 여섯 가지를 한문으로 하면, "지인성의충화(知仁聖義忠和)"이다. <주례 집설>는 이 여섯 가지는 마음에서 나오는 덕(德)이라 하며,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지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이고, 인은 사욕이 없음이고, 성은 통하지 않음이 없음이고, 의는 결단과 제재함이 있음이고, 충은 자기 마음을 다함이고, 화는 어긋나는 바가 없음"이다.

<<주례집설>>에서 말하는 "지인성의충화(知仁聖義忠和)"을 좀 더 풀어 실천 가능하도록 정리를 해 본다.
(1) 지식: 지식은 이런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지식이 있어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삶의 방향을 바르게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어진 마음: 맹자는 '인(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불편을 자초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고, 더 나아가 사욕, 즉 자기 욕심을 채우지 않는 것이다. 자기 이익을 따르지 않고, 사랑하며 배려하며 사는 것이 바로 인을 살천하는 삶이다. 나의 불편을 감당하며 배려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3) 성스러움: 나는 이 '성(聖)' 자를 좋아한다. 귀이(耳)+입구(口)+왕왕(王)자의 합성어이다. 즉 먼저 듣고 말하기를 나중에 할 줄 아는 최고의 왕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남의 말을 잘 듣는 일이 "성'이다. <<주례 집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성스러움'이나 '탁월함'이 아니라, '통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해석했다. 통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보편 타당하다는 말이다. 즉 공정성과 보편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것으로 언제나 지켜야 할 도리이다. 일상에 적용하자면, 사람에 따라 차별하거나 자기 선호도에 따라 일을 판단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건 편견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잘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의로움: 맹자는 '의(義)'를 '악을 미워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결단과 제재함이 있다"로 푼다. 의로움을 행하기 위해서는 불의에 대해 단호하게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이해하게 한다. 정의 앞에서 머뭇거려서도 안 되고, 상황에 사람에 따라 마음이 바뀌지 않도록 자신을 굳게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5) 충실함: '충(忠)'은 자기 마음을 중심에 바로 세우는 것이다. 충실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나는 한문 '忠(충)'자를 좋아한다. 풀어 보면 이 거다. '中+心". 한 마음을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마음을 먹으면, '환患', 즉 '걱정'이 된다.  충이 정립되어 있으면 다른 덕목을 바르게 행할 수 있는 근본이 바로 서지만, 만약 스스로 충실하지 않으면 그 어떤 덕목도 온전하게 행할 수 없다.

(6) 조화:  '화(和)' 주변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삶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떼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진다.

육덕(六德) 다음으로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이 육행(六行)이다. 먼저 뜻을 세우고, 반드시 실천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육행(六行)은 육덕을 삶의 일상에서 실제로 행할 떼 드러나는 모습이다. 그 육행은 "효우목인임휼(孝友睦婣任恤)"이다. 그 뜻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가 있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친족과 사이 좋게 지내고, 친구 간에 신의를 갖고, 어려운 사람을 도 와야 한다"이다.

그리고 육덕 다음으로 실용적인 공부로 다음과 같이 육예(六藝)를 익힌다. "예악사어서수(藝樂射御書數)"이다. 이는 "예절, 음악, 활쏘기, 말 타기, 글쓰기, 셈하기'와 같은 실용적인 공부이다. 단지 좋은 덕목만 있어서도 안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도 "선경후사실용(先經後史實用)"을 강조했다고 한다. 경전으로 사람됨의 기초를 세우는 것은 육덕의 공부이고, 역사의 득실과 치란(治亂)을 아는 것은 육행에 도움이 된다. 실용의 공부는 육예의 공부이다. 근본을 세우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실용적인 학문도 함께 해야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이상에서 실천까지. 그 멀고 먼 간격을 좁히는 과정이다. 이상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이상에만 치우친 삶 또한 곤란하다. 이론과 실제, 도덕성과 능력이 어우러져서 조화롭게 발현되는 사람이 진정한 실력자이다. 내가 좋아하는 균형 맞추기 이다. 육덕과 육행 그리고 육예가 어우러진 균형 잡힌 공부 말이다. 이젠 그만 멈추고, 삼악산에 올려 마음에 깊이 새길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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