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26일)

나에게 SNS는 세상과 사람들을 알아가는 도장(道場)이다. 한 밴드(와인 인문학 아카데미, !White)에서 흥미로운 사자성어들을 알게 되었다. 중소기업인들이 뽑은 사자성어 란다. 이것들 속에서 나는 삶의 지혜를 본다.
(1) 중력이산(衆力移山). '많은 사람이 힘을 합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뜻이다. '우공이산(우공이산)'이란 말이 소환된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이 말은 오랜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노력해 나간다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는 뜻이다. <열자>의 '탕문편"에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2) 수도선부(水到船浮).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뜬다'는 말로,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내실을 닦으며 기회를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인문운동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위한 배경이자 과정일 뿐이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처럼,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기 때문이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외 흥미로운 여러 개의 사자성어들도 알게 되었다. '전호후랑(前虎後狼)'. 이 것은 '앞 문에서 호랑이가 막고, 뒷문으로 늑대가 들어온다'는 뜻이다. 지금의 우리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힘든데, 지구가 병들어 이상 기후가 위협을 한다. 그리고 '언소자약(言笑自若)'이라는 사자성어도 배웠다.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뜻으로, '놀라운 일을 만나도 평소와 같은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놀라거나 근심이 있어도 평소의 태도를 잃지 않고 침착함을 이르는 말이다. 나의 2022년 바람이고 싶다. <<장자>> 제5편 "덕충부"에서 장자는 형벌로 발이 잘린 왕태를 빌려 다가, 용심(用心, 마음 씀)의 길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다.
• 생사(生死, 삶과 죽음)에 초연하라. 나는 '생사초연(生死超然)'으로 기억할 생각이다. 살고 죽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 천지개벽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꿈쩍하지 않는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이 되라. 나는 '태연자약'으로 기억할 생각이다.
• 거짓이 없는 경지를 꿰뚫어 보고(審乎無假 심호무가), 사물의 변화에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라. 무가(無假)는 '거짓이 없는 것'으로 완벽한 경지, 궁극 실체의 경지를 뜻한다. 즉 가짜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심(審)자에 방점을 찍는다. 숙고하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면 '불여물천(不與物遷)'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변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즉 '명물지화(命物之化)'하고, "이수기종야(而守其宗也)"하라. 사물의 변화를 천명에 맡긴 채, 도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다. 같이 책을 읽는 우경은 도의 근본을 "불리지당지극(不離至當之極)"이라 알려 주었다. 마음 씀은 '지극히 마땅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부정제(馬不停蹄)'라는 사자 성어를 알게 되었다.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 나는 내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배우는 사람은 '사고의 굽'이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잘 모른다. 그래 임무를 깨워줄 학교를 만드는 거다. 내 아침 글쓰기도 일종의 학교이다. 인생이란 학교의 특징은 '무작위(無作爲)'이다. 내가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곤 한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무작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정한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난제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고결하고 숭고하게 만드는 스승들이 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일상의 난제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 그들의 가르침은, 나의 생각을 넓혀주고 부드럽게 만든다. 나의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람과 사물에 친절하게 응대하게 유도한다. 인생이란 학교(學校)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이해(理解)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선, 심지어 원수의 시선으로 그 난제에 대한 나의 반응을 관찰하는 냉정(冷靜)이다. 나는 난제들을 해결(解決)할 수 없지만 해소(解消)할 수 있다. 낮은 곳에 있는 물이 높은 곳으로 흘러갈 수 없고, 선악을 구별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지혜를 가르칠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태권도를 시작한 초보자가 사범을 훈련시킬 수 없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 특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난제들이 나를 고양시킬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내가 좋아하는 이재무 시인의 <밥알>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처음 만나 잘 나갈 때는 서로 의기가 투합이 되어 없어서는 못살 것 같이 하다가, 힘 떨어지고 별 볼 일 없게 되면, 그만 찬밥 신세로 밀려나거나 밀어내는 것이 인간사이기도 하다. 찬밥 신세가 된 사람이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또 귀찮아하면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를 하는 것이, 일상적 사람들의 서글픈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함이 비단 사람 뿐이 아니라, 밥도 그렇다. 갓 지었을 때는 서로 끈끈하게 들러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있다가, 찬밥 신세가 되어 물이라도 말게 되면. 자신의 이익 따라 뿔뿔이 흩어진다.
밥알/이재무
갓 지었을 적엔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으니
서로 흩어져서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 구나
가난한 사람의 곁으로 오신 그리스도처럼,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서 기득권의 카르텔의 적폐를 혁파할 수 있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인물이 대통령 되기를 소망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씀과 함께 오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가난하고 아프고 슬프고 서럽고 불쌍한 사람들의 친구로 오셨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는 돈과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탐욕을 미워하셨으니, 기득권의 카르텔의 적폐를 붕괴시켜 주셨으면 한다. 기득권, 이상하게도 이가 갈리는, 빠득빠득 이가 갈리는 발음이 입에 달라 붙는다. 그 기득권 쉽지 않을 거다. 그리스도 자신도 그 기득권에 대들다가 돌아가신 걸 나는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검사와 판사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 한 시인은 그들을 '판금사'라 부른다. 머리 좋은 사람은 인간성마저 좋을 수는 없는 건가!
안목이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눈가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하나의 도장(道場)이 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SNS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제기되는 선정적인 의혹만이 사실이다. 그 의혹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외로움을 달래 주고 부러움을 경감해주면 굳건하게 진리가 된다. 이게 IT공화국의 역설이다. 그 사실의 진위와는 상관 없이, 대중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정의이고 진실이다. 그런 일에 휘말린 당사자는 자신이 그런 의혹에 비춰진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번거롭게'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좀처럼, 자신이 경험한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고, 남들이 제기한 소문을 진리라고 착각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판단보다는, 대중이 떠드는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우리는 좀처럼, 어떤 사안에 대해 숙고하지도 않고, 숙고를 통해 자신만의 의견을 도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제자들의 정신적인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다른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에 관한 소문을 말하지만, 베드로는 자신만의 확신을 말한다. 베드로만 예수라는 육체에 숨겨져 있는 신성을 발견했다.
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었다. 산전수전은 동물과 같은 인간을 비로소 신적인 인간으로 개조하는 스승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오해와 질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순간 같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타인들에게 아름다움이 되게 하면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오해의 대상이다.
이때 남들보다 앞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타인은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앞선 자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외롭다. 세상은 오해 받는 사람들이 진보 시킨다. 오해 받는 인간이 자신의 원대한 꿈과 열정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면, 그것이 수용되던지 혹은 수용되지 않던지 상관 없다. 그것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다면, 그 진실은 통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곤경에 빠지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 그때 누군가 호의로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 나도 누군가 도움을 원하면 호의로 도와 줄 테다. 감정적일 때,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 내년에도 아침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를 계속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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