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20일)

오늘 아침도 어제에 이어,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일곱 번째 rule(규칙)인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제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이 인간을 죽음을부터 이겨내고 영원히 부활한 신과 비슷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피조물은 본능에 따라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상황 변화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을 생각을 통해 행동을 대신할 수 있다.
물론 아이디어는 사실(fact)과 다르다. 사실은 그 자체로는 죽은 것이다. 사실(fact)에는 의식도, 권력 의지도 없다. 동기 부여도, 행동도 없다. 죽은 사실은 우리 주변에 넘쳐흐른다. 인터넷은 죽은 사실들의 묘지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디어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는 명확히 표현되기를 바라며, 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 한다.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정신을 '아이디어의 전쟁터'라고 규정했다. 어떤 아이디어는 추구하려는 목표가 있고, 원하는 것이 있으며, 따르는 가치 체계가 있다. 아이디어가 목표로 삼는 것은 현재 상태보다 더 좋은 무엇이다. 아이디어는 사실이 아니라, 인격이다. 왜냐하면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사람을 자신의 아바타로 만들려고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이디어대로 행동하게끔 충동질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디어의 아바타가 될 필요가 없다. 언제든 아이디어는 다른 아이디어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야 할 것은 아이디어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그 관계를 회복하려면 가장 포기하기 어려운 것을 먼저 버려야 한다. 삶의 질서가 무너졌다면, 견딜 수 없는 부당한 고통이 변화를 요구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부터 포기해야 한다. 지금 적절한 희생을 해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간도 수십만 년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에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로 꾸미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절제하며 현재보다 미래를 더 소중히 여기면 현재를 자신 의도대로 바꿀 수 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인 피터슨의 다음 의견에 나는 동의한다. 사회주의도 실체가 없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적 사고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거다. 사회주의자도 자본주의자 못지않게 돈을 신봉한다. 사회주의자는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가지면 인류를 괴롭히는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돈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많고, 돈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더 많다. 예를 들면, 부자들도 이혼하고, 자녀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며, 존재론적 불안에 시달리고, 암과 치매에 걸린다.
그리고 사악한 행위에 참가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기생충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개개인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무작정 고문하고 학살하는 짓은 변명의 여지 없이 어떤 경우에도 잘못된 것이다. 현실 세계는 고통에 짓눌려 있고, 어느 누구도 이 고통에 찌든 현실에서 탈출할 수 없다.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교묘히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인간이면 누구나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동시에 선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 선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선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최악의 죄가 순전히 고통을 주려는 목적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이라면, 선은 그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 잘못된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선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는 말은 고통의 십자가를 자신이 진다는 말이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는 선한 것이다. 그 일은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가져야 이루어진다.
(1) 높은 목표를 지향한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신념 속에서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 가치 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놓는 것이다.
(2) 주의하고 집중하여,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고친다. 그러나 현재의 지식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 전체주의적 자만심은 무자비와 억압, 고문과 살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4) 나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겁과 악의, 원한과 증오를 인정한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 전에 나의 잔혹한 심성을 살핀다. 어쩌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5)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면서, 수많은 죄를 범했으면서 감히 하늘의 영광을 바라지 않는다. 결국 나도 세상이 사악해지는 데 한 몫 거든 것이기 때문이다.
(6) 무엇보다, 거짓말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나치와 공산주의의 거짓말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선 정국인데, 거짓말들이 난무한다.
가을이 저물기 전에 꼭 공유하고 싶은 시가 하나 있다. 이재무 시인의 <감나무>이다. 시인은 붉은 감들이 떠난 이가 그리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다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문자로 쓰면 글이고, 이미지로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기다림이 쌓이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도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마운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긴다. 그런 그리움의 다른 말이 기다림이다. 시인은 깊은 그리움과 오랜 기다림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보통의 우리는 보이지 않는데, 시인의 눈에는 그리움이 보인다. 그리움은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긁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그리움이 현실이 될 때가 '설렘'이 된다. 설렘이 많아야 그만큼 더 행복하다. 행복은 작은 것에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순간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있다. 나는 매일 그걸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감나무/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 곁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 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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