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8월 1일)
1
벌써 팔월이다. 농사를 짓던 예전에는 ‘어정 칠월, 동동 팔월’ 또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을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고, 팔월은 추수 일손이 바빠 발을 동동 구른다는 의미와 그래도 추수는 건들거리며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옛 어른 들은 "미끈유월(농사 일로 바빠 한 달이 미끄러지듯이 쉽게 지나간다), 어정칠월(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린다)이라 했다. 나는 8월이 오면 힘들다. 나에게는 8월에 유독 사건들이 많았다. 올해 8월도 몹시 허하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때 정끝별 시인의 글을 만났다. 이런 때는 시를 읽는 거다. 8월이 되면 잊지 못하는 시가 있다. 오세영 시인의 <8월의 시>이다. "8월/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 (…) 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
8월의 시/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정 시인처럼, 나에게 도 "시는 내게 마음과 세상(밖)을 잇는 기도이자 나를 일으켜 세상에 세워 두는 응답"이 된다. "고단한 일상과 미친 경쟁의 속도 속에서 시를 읽는 시간은 정지이자 정화"이고, "잠시 멈춰 갇힌 숨을 몰아쉬며, 고즈넉이 고단함을 위로하고 넘치는 제 그릇을 조금 비워내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는 내 허기진 날에 순하고 선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왜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하는가? 정끝별 시인이 잘 말해준다. "현실이라는 고통의 무게 앞에서 한 시인은 신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왜 삶을 이토록 견딜 수 없이 만들어 놓고/ 나를 사면의 벽 안에 두었는가”(이보르 거니, <신에게>). 시는 이런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물음이 많을수록 세계는 넓어지고 감정과 사유 또한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시를 읽는다는 건 발 딛고 선 현실과 그 ‘바깥'을 향해 물음을 던지는 일이며, 가장 ‘나’다운 시선과 자세를 얻는 일이다." "이때 시야말로 상상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도화선이 된다. 얘기되지 못한 것들을 얘기하고 이름 없는 것들에 이름을 주기 위해. 다른 감정, 다른 나,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개진하기 위해. 그리하여 다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그래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를 한 편 씩 공유하는 거다. 정 시인에 의하면, 낭만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죽기 전 “나는 지금 생의 더 많은 시간을 시와 보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고백했다 한다. 우리가 시를, 그것도 자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 차고 넘친다.
2
어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서울에서 45인승 버스 한 대의 관광객이 우리 마을에 와 성심당 빵을 사고 4대째 내려오는 평양 냉면 집인 <숯골 원 냉면>에서 점심을 먹고, <뱅샾62>에 와 와인 칵테일의 다른 세계를 맛보고, 우리 동네의 자랑인 <은샘치아바타>의 이탈리아 정통 빵인 치아바타를 맛보고 산 후, 옥천으로 갔다. 찌는 듯한 무더위로 힘들었지만,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억지로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살다 보면 결국 '꾸준함', 아니 '버티는 것'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잘하더라도 금방 질려서 그만두면 실제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경험과 전문성, 인맥, 기회 등을 갖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로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잘 버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왠지 초인 같은 의지력, 싫어도 꾸역꾸역 어떻게 든 해내고 마는 끈질긴 정신력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자신이 선택한 영역에서 (어느 정도 잘 맞는다는 전제 하에) 꾸준함과 좋은 자기 통제력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같은 행동에서도 더 많은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 꾸준히 오래 열심히 해서 계속해서 경험과 능력치가 향상되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든 비교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적 의미를 잘 찾는 사람들인 것 같다.
박진영 심리학자의 칼럼에서 읽은 것이다. "카타리나 베르네커 베른대 사범대와 취리히대의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그저 기분이 좋은 일을 고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일(예를 들어 새로운 것 배우기, 자기 관리)을 고르는 편이었다. 이들은 또한 비슷한 활동을 해도 자신이 선택한 활동을 더 의미 있다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집 청소를 해도 평소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겹고 하기 싫고 의미 없는 잡무라고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중요한 활동이라고 느끼고 더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었다"고 한다.
비슷하게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운동과 같은 활동을 해도 하기 싫지만 주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는 거다. 종합하면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쉬운 활동에서도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끼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임제 선사가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가르침이 소환된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모두 참 되다”는 뜻이다. 진정한 주인이라면,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곳이 주인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 든지 자신이 주인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절에 들어가지 않아도 일상의 삶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각을 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자이다.
박진영에 의하면, 실제로 주변에 있는 연구자 선생님들과 대화하다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어도 본인이 자기 연구를 좋아하는 것이 학계에 오래 남는 비결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의미 있게 여기거나 즐기지도 못한다면 오랜 시간을 바쳐 그 일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항상 의미 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세상이 힘들게 돌아가는 것은 '돈' 때문이다. 야마자끼 마사시의 <<딱한 사람들의 돈 쓰는 습관>>이라는 책에서, 돈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돈을 쓰는 방법은 크게, 소비, 낭비 그리고 투자로 크게 세가지라 했다.
▪ 소비는 의식주 등 생활에 드는 최소한의 경비를 말한다.
▪ 낭비는 쓸데 없는 지출이다.
▪ 그리고 투자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주식 투자나 자신의 장래를 위한 교육비 등이다. 그렇지만, 호화로운 여행에 돈을 쓴다면, 낭비에 해당하겠지만, 만약 여행을 통해 누적된 피로를 풀고 그 다음주부터 더욱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투자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했다.
소비의 형태는 두 가지이다. 소유형 소비와 존재형 소비이다. 소유형 소비는 물건을 사는 것에 소비하는 것이고, 존재형 소비는 경험에 소비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물건을 산 후의 즐거움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풍성함을 위해 경험에 소비한 기억은 평생 갈 수 있다. 가령 여행이 그렇다. 책을 사는 일도 그렇다. 구입한 책을 읽어서 미래에 도움이 될 책이라면 이는 자신을 위한 투자가 된다. 가령 도박을 하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편하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없다는 교훈을 얻으면 또한 투자라 볼 수 있다. 돈을 쓰는 방법이 소비, 낭비, 투자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처럼 소비주의가 전면적으로 아무런 비판 없이 확장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유럽에는 완전 소비 없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어쨌든 최근에 최대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 한다. 환경 보호를 위해 소비를 최소화 하려 한다. 소비할 때마다, 우리는 '미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우리의 삶이란 사실 지구에서 잠시 살다가 떠나는 것이고, 지구는 다음 세대인 미래 생명이 살아야 할 터전이므로 소비를 줄이는 것은 최소한의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보면서, 우리도 이젠 지나친 소비주의를 부끄러워 해야 한다.
바보는 쓸데 없는 일에 돈을 쓰고,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돈을 쓴다. 돈을 쓰는 방법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돈은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써라. 그것이 가장 확실한 투자 이다"라 워런 버킷은 말했다. 나의 경우는 가급적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보다는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노력한다.
4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어제(7월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언론 보도처럼,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가 골자가 아니다. 검사는 더 이상 수사권자가 아니라는 것 핵심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다. 1948년 검찰청법 제정 이후 78년 만에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이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견제한다는 검찰 개혁의 대명제가 제도화된 날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표결을 통해 종료한 뒤 형소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개정된 형소법은 검사의 보완 수사권을 비롯한 직접 수사 권한을 완전히 없앴다. 대신 검사의 보완 수사요구권을 구체화해 보완 수사 요구를 받은 경찰은 최장 2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토록 했다. 아울러 수사 관련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토록 하고 경찰의 사건 불송치에 대해 고소인, 피해자 그리고 고발인의 이의 신청권을 신설하는 등 피해자 보호 장치도 마련했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모두 틀어쥐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그러다 보니 ‘표적 수사’, ‘별건 수사’ 등 수사권 남용의 폐해가 컸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치 검찰’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번 형소법 개정은 검찰의 수사권 독점을 폐지하고 수사 관련 기관들이 서로 견제토록 해 정치 수사 및 인권 침해를 차단한다는 검찰 개혁의 목표를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은 일로
▪ 검찰은 왜 개혁 대상이 됐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형사 사법 시스템 안착에 협력해야 한다.
▪ 경찰은 권한이 커진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와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재탄생 해 국민의 걱정을 불식 시켜야 할 것이다.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누구도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 이제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는 법안을 처리하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새로운 형사사업체계의 큰 틀을 마련했다. 이 제도가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모든 수사 기관이 견제와 책임 속에서 제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은 할 수 잇다. 우리 국민은 내란도 극복하고, 형사법도 통과시키는 저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국가 기관의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경고장을 날리고, 나아가 없앨 수 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5
오늘은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로 마태복음 <마태오 14,1-12>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이다.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사람이 죽어갑니다>
죽이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과
벗하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을
막지 않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에게
침묵하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있기에
사람이 죽어갑니다
6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2026/8/1/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마태오 복음 14장 1-12절: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
진실을 선택하기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룹니다. 요한은 해야 할 말을 했을 뿐, 죽을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때때로 진실을 숨기려 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배척합니다. 헤로데 역시 요한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 체면과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약속 탓에 결국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분위기에 맞추느라, 혹은 관계가 어색해지고 손해를 볼까 무서워 침묵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자신을 거창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 작은 순간에라도 내 마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지 않기, 잘못된 일을 그대로 넘기지 않기,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자존심을 내려놓기. 이런 작은 선택들이 우리를 하느님 편에 서게 합니다. 목숨으로 진실을 지킨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일상 안에서 작은 진실 하나를 지키면 좋겠습니다. 그 지켜낸 진실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대구대교구)/생활성서 2026년 8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2026년 8월 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8월의 첫날을 시작하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인간의 평가와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오직 하느님의 진리만을 바라보는 ‘참된 용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엄중한 경고를 그대로 전했다는 이유로, 사제들과 거짓 예언자들에게 붙잡혀 사형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전 뜰을 가득 메운 군중과 고관들 앞에서도 예레미야는 도망치거나 말을 바꾸지 않고 눈을 들어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예레 26,12-14).
인간적인 두려움을 이겨내고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을 기준 삼았던 이 의연한 태도는 고관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아히캄의 손길을 통해 예레미야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느님의 편에 설 때,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책임져 주신다는 위대한 신앙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영주 헤로데는 예레미야와 정반대의 비참한 길을 걸어갑니다. 헤로데는 동생의 아내와 혼인하는 죄를 저질렀고, 세례자 요한은 이를 "옳지 않다"고 엄히 꾸짖었습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를 예언자로 여기는 군중의 눈치가 두려워 감옥에 가두어 두기만 했습니다.
비극은 허영과 향락이 가득한 생일 잔칫날에 일어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자 흥이 난 헤로데는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만백성 앞에서 맹세합니다. 어머니의 조종을 받은 딸이 요한의 머리를 청하자, 성경은 헤로데의 비겁한 내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을 내리고”(마태 14,9). 헤로데는 요한이 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님들 앞’이라는 체면, 곧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사람들이 비웃겠지?'라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는 자신의 양심을 짓밟고 의인의 목을 베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맙니다.
오늘은 위대한 윤리신학자이자 고해성사의 주보성인이신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를 기억합니다. 성인이 살던 시대에는 죄인들을 무섭게 단죄하는 엄격주의가 만연했습니다. 그러나 알폰소 성인은 사람들의 비난과 시선에 굴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만을 선포하셨습니다. 성인은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고해소에서 눈물 흘리는 죄인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으셨습니다. 세상의 법과 평판보다 한 영혼을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이 더 큼을 온 삶으로 증언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자주 ‘사람들의 눈’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두려움은 우리의 양심을 쉽게 무너뜨립니다. 세상의 평판은 바람처럼 흔들리지만,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길은 영원하고 정확하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짓누르던 체면과 허영의 옷을 과감히 벗어던집시다. 성 알폰소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고해소에서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품어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눈빛만을 바라봅시다. 사람 앞에서는 겸손하되 하느님 앞에서는 당당하게 걸어가는 복된 8월의 첫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자비와 진리의 주님, 저희가 하느님의 눈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두려워하며 체면 때문에 양심을 저버렸던 비겁함을 용서하소서. 어떤 위협 속에서도 당신의 말씀을 당당히 선포했던 예레미야의 용기를 주시고, 영혼들을 사랑으로 품었던 성 알폰소의 따뜻한 마음을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세상의 헛된 감옥에서 벗어나, 당신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평화 속에서 이 한 달을 기쁘게 시작하게 하소서.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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