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6월 14일)
1
우리는 연결된 상태로 태어난다. 홀로 있음은 성숙한 인간이라야 가능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 어디에 가든, 아니면 삶의 어디에 있든 우리는 서버에게 알려지고 그 영역 속에 들어가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우리들의 움직임과 행동과 생각의 흔적을 남겨두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의 기록은 썩지 않는 삶의 배설물을 뒤에 남기게 되는 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생의 어느 부분 동안 사라지고 추적되지 않을 권리를 고집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자아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타인이 지켜보든 말든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나가야 한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의 저자 리처드 루브(Richard Louv)는 "자연결핍장애"에 대해 설명하였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 말이다. 그것에는 "감각 활용의 감소, 주의력 장애, 신체적, 감정적 질병의 높은 비율"이 들어 있다. 자연에 나가면, 만물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넓은 하늘과 창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우거나 시골길을 도보여행하면서 평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율감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인간은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삶을 살았고, 자연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이젠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집이 되어주던 광활한 잡목 숲 지대를 거부하고, 그 이후로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도시는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빈곤하게 만들고, 빈곤해진 정체성으로 진정한 인간 지성에 필요한 겸손함의 감각이 결여된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많은 연구들을 보면, 야생의 숲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보다 주의력의 범위가 더 크고 만족감도 더 높다는 거다. 그 외 자연 속에서 지내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 풀이 무성한 목초지와 교통량이 많은 시내 도로를 각각 걷게 한 후 뇌 영상을 찍으면, 시내에서 걸은 사람들은 '반추'의 빈도가 훨씬 더 잦았다고 한다. 이는 우울증의 초기 증상으로, 생각에 잠기고 자기 비판에 빠지기 쉽다는 거다. 반추와 관련된 뇌 영역이 시내 산책에서는 불이 켜지는 반면, 자연 산책에서는 차분해졌다는 거다.
▪ 일본에서 '삼림 욕'이라 알려진 숲으로 잠시 다녀오는 것은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면역 체계를 증진시킨다는 보고가 나왔다.
▪ 부자이든 빈민이든 학생들은 초록색 공간을 접할 때 공부를 더 잘한다는 보고도 있다.
▪ 단순한 초록색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곤경에 처했을 때 회복력을 증대 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 자연 속에서 지내는 시간은 후각, 시각, 청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증진시킨다는 자료도 있다.
이 모든 이득의 누적된 효과는 분주한 도시의 영혼들에게는 일종의 진통제 체험처럼 보인다. "유월의 바람"을 위해 숲으로 간다.
유월의 바람/이해인
유월의 바람은
초록빛 향기가 납니다.
나뭇잎들이 조용히 속삭이는 숲 길에서
바람은 내 볼을 스치며
푸른 위로를 건넵니다.
열심히 살아내느라 고단했던 마음들
초록의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가라고,
유월의 바람은
자꾸만 등을 다독입니다.
햇살을 받아 더욱 짙어지는 신록처럼
우리의 사랑도
더 깊고 푸르러 가기를 소망 하는 유월입니다.
2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박해영 작가가 쓴 드라마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그들이 내뱉는 대사에 인문 운동가는 깜짝 깜짝 놀란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는 다 볼 만하다. <또 오혜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가 기억난다.
변은아(고윤정 분)의 몇 대사를 나열해 본다.
▪ "저는 한 번도 대표님이 파워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지랄맞다고 생각해요, 그거 헷갈리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저는 얌전한 아이예요. 만만하고 약한 애가 아니고. 이것도 헷갈리지 않으셨으면 해요." 내 주변을 보면, 이런 식으로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별 것도 아닌 것이 자기가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 "저는 힘 있는 엄마가 될 거예요. 돈 있고 빽 있어서 힘 있는 거 말고요. 고요한 중심에 서 있는, 옆에 있는 사람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엄마요. 저희 할머니처럼."
▪ "감독님은 천개의 문이 다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
▪ 길거리를 보면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게 아니에요, 거대한 '감정 덩어리'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아요. 걸음걸이 하나, 표정 하나에 그 사람의 총체적인 감정이 다 베어 있거든요. 엄마는 무슨 감정 덩어리인 줄 알아요? 경멸 덩어리."
▪ "애들이 왜 예쁘게요? 감정이 덩어리 지지 않아서."
▪ 옆에 있으면 안심이 돼요. 보고 있으면 힘이 나요." "사람들이랑 말할 때 늘 긴장했어요. 근데 감독님이랑 있으면, 마음의 밑창이 터진 것처럼 그냥 술술 나와요. 어디에도 걸림 없이."
황동만(구교환 분)의 몇 대사를 나열해 본다.
▪ "내 인생이 왜 니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
▪ "이 바닥의 어른인 것처럼 굴지 마. 아무도 널 어른으로 안 세웠어."
▪ "불안하지 않는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슴이 막 뛸 거다."
▪ "싸가지 없는 게 파워인 줄 아는구나."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안온함. 겨울에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면서 만화책 보는 느낌의 한 백만 배쯤?"
▪ "나는 리트머스지 같은 남자야. 상대가 산성이면 나도 산성, 상대가 알칼리면 나도 알칼리!"
▪ "감정은 의지로 못 바꿔요. 절대. 우울할 땐 길바닥에 떨어진 500원이라도 주워 야지. 작은 성공, 그런 게 있어줘야 기분이 바꾸지. 의지로는 안돼요." 변은아: 집 어디 에요? 500원 뿌려줄 게요!
▪ 내 인생에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늙어주는 거. 고양이도 나무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늙어 죽길. 병들어 죽지 말고 괴로워 죽지 말고. 후드득 낙엽이 떨어지듯이 모두 다 늙어 죽길."
▪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돼요. 내 손으로 조금이라도 뭘 이뤄야 그래야 과거든 상처든 놓을 수 있어요."
그 외 명 대사들도 나열해 본다.
§ 상담사: "누구였을까요? 은아 씨에게 최초로 엑스표를 친 인간이?" 변은아: 이응, 어, 마음, 미음, 아. 그 단어는 너무 과장됐어요. 나도 나에게 X친 사람을 기억해 보니, 다 죽었다. O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나는 사람들에 OX를 치지 않을 생각이다.
§ 황진만: "쓰는 행위는 봐 줬으면 하는 마음을 쌀고 시작해요." "버릴 수 있는 거 모든 거 버리고, 어디에도 진하게 들러붙는 거 없이 싱겁게"가 그의 인생 목적이라고 말한다. "시를 쓸 때는 좌절과 자괴감의 연속이었지만, 용접은 지지고 있으면 그냥 일이 됩니다. 마음이 번다하지 않습니다. 용접공을 놓고 돌아서면 또 다시 이 생각, 저 생각 어지럽게 올라오지만 그래도 지지고 있는 동안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난생 처음 쉬는 것 같습니다. 일하는 데 쉬는 것 같습니다."
§ 오정희: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 애기해 줄게. 내 친딸 너 따위 랑 비교도 안 되게 근사해. 아무 한테도 빌붙어 가지 않아. 남자한테도, 부모한테도."
3
드라마 <모자무싸>의 멋진 후기담을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이 드라마의 근본적인 힘은 ‘환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박해영을 두고 “어떤 사람이든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니, 배척하기보다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 작가”라고 규정했다. 사회가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을 세워두고 그 안의 사랑스러운 면을 길어올리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사회에서 배제하려던 사람 안에서 ‘나도 저렇지’ 하고 나를 발견하고, 그를 싹 끌어안았을 때 주는 공감대가 가장 크다”며 이 환대의 시선이야말로 박해영의 가장 큰 힘이라고 짚었다. 박 작가 역시 좋은 작가의 단 하나의 조건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꼽은 바 있다. 무가치함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시대에, 나와 똑같이 부서진 누군가에게 기대 숨통을 틔우는 이 쓸쓸한 연대야말로 우리가 그의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이유다.
만약 사람의 마음에도 질감과 형태가 있다면 그녀는 가장 푹신하고 둥근 모양이 아닐까 생각하며 살았다. 여유 있는 미소와 좋은 사람이라는 타인들의 평가는 다 그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다만 2017년 눈 수술 사고로 빛을 잃은 후에 그녀는 좋은 성격, 둥글둥글한 언어, 너그러운 마음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있었는지 애초에 자신에게 존재했는지 의문이 들곤 했다. 그녀에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 절망은 그런 것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재앙은 사람의 마음을 깎고 또 깎아 가장 가늘고 좁게 만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뾰족해 진 끝은 마음이 가까운 심장을 겨누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기도 했다. 대책 없는 억울함은 마치 계절이 멈춰 선 나라에 그녀를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계절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사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창밖의 기후와는 다른 온도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산다. 멈춰 선 기온과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무채색 시간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계절과 날씨를 모른다. 새로운 계절이 되었으니 새 옷을 반드시 장만해야 한다 거나, 제철에만 나는 음식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부지런함이 없어도 되는 나라. 날씨를 미리 확인할 필요도, 갑작스러운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황동만이 쓴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는 시나리오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고 소식 이후 이 사람, 저 사람이 뱉어 내는 위로의 언어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도무지 내려오지 못했다. 위로라는 말은 바람결에 새털 같이 흩어졌다. 나를 향해 집중된 안쓰러운 시선만 겹겹이 쌓여 소화되지 못한 채 명치에 걸려 있었다. 중증 장애를 갖게 된 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영혼의 날개가 꺾이는 듯했고, 자유를 빼앗긴 채 새장에 갇힌 새가 되는 기분이었다. 병원비에 보태라며 친구들이 보내온 정성도, 이웃들이 건네는 관심의 마음도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증 받는 것 같았다. 그 호의는 감사함과 무력감을 한꺼번에 몰고 와 마음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보는 건 어때? 여보라고 늘 주는 자리에만 서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협소하고 편협한 마음을 펴는 일은 늘 그렇듯 남편의 몫이었다. 그 때 부터였을까? 자신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저 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 갔다. 특히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래'라는 말은 그 어떤 위로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신의 무가치함을 마주하는 상황과 싸워 가고 있다. 때로는 언제까지 증명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런 마음 끝에 지난주 방영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는 ㄱ녀에게 남의 이야기로 닿지 않았다.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라고 적힌 차단막이 내려진 건널목에서 황동만(구교환)은 변은아(고윤정)에게 묻는다. "파워는 어떻게 장착되는 걸까요?" 이어진 여주인공 변은아의 대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존재를 가치의 경중이나, 처한 상황, 갖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끝 모를 감정적 허기도 채울 수 있다는 말로 닿았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갇힌 것 같은 상황도 돌파해 볼 힘이 생긴다는 말로 들렸다. 그 장면에서 나는 멈춰 섰다.
그녀도 '내가 다시 일어서게 된 이유가 저거였구나'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의 삶을 다시 흐르게 만든 것은 거창한 의지도, 대단한 계기도 아니었다. 그저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기력해서 뾰족함만 남아 있던 시간 위에 가족이 있었다. 한숨이 머무는 자리마다, 조용히 곁을 지켜 준 사람들이 있었다. "날씨를 만들어 준다"는 말에서 날씨 대신 '사랑'을 넣으니 금방 무가치와 싸우는데,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절마다, 구간마다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녀에게 왜 그런 상처가 새겨져 있는지, 어떤 의미를 얻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 함께 걸었다. 세상에는 거기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절이 있다. 마치 초록이 우리 곁에 숨 쉬고 있을 때 그 쓸모와 용도를 굳이 계산하지 않는 것처럼. 그게 날씨이고, 다르게 보면 사랑이다. 사고 후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이제 벚꽃을 배경으로 여유롭게 사진을 찍어볼 수 있게 되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계절의 손에 이끌려 산다. 날씨가 생겼고 계절이 흐른다. 사랑 때문이다.
4
오늘 복음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그 군중은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삶의 무게에 지치고, 상처 받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우리들 말이다. 겉으로는 웃고, 맡은 일을 해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경쟁의 피로, 관계의 상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엾은 마음"은 단순히 머리로 '안타깝다'고 느끼는 동정이 아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 머문다고 여겨지던 '내장', '속 깊은 곳'이 흔들릴 만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민, 타인의 아픔이 내 안까지 파고드는 사람의 움직임이다.
"가엾은 마음"은 예수가 우리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처럼 품으시는 사랑의 마음이다. 예수를 본받아 나도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랑을 품으며 살고 싶다. 아마도 그게 신앙 인의 태도이다. 일찍이 맹자는 그것을 '측은지심"이라고 하며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성이라 말했다.
'가엾은'의 뜻은 '마음이 아플 만큼 안되고 처연하다'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며, '가엽다'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플 만큼 딱하고 불쌍하다'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흔히 우리가 연민이나 동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 '긍휼'이다. '긍휼'은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는 마음 또는 그러한 행동'을 의미하며, 한자어 矜恤(矜:불쌍히 여길 긍, 恤:돌볼 휼)에 바탕을 둔 단어이다. 긍휼에는 다음 세 가지의 의미가 포함된다.
§ 동정적인 마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을 보고 연민을 느끼는 마음
§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돕는 행위를 포함
§ 사랑과 연대의 감정: 긍휼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강한 유대감처럼, 서로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존중하는 마음
이러한 연민과 긍휼, 즉 사랑은, 예수님처럼, 먼저 하는 거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직 부족하고 흔들릴 때,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하신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내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포장하지 말라는 거다. 이 수고는 거창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본당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거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피로를 알아보는 눈길, 상처받은 이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마음, 말없이 손을 내미는 작은 배려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거다.
상처 받은 일상의 한복판에서 예수의 따뜻한 손과 발이 되는 거다. 우리가 거저 받은 자비로운 눈길과 따뜻한 손길을 이웃에게 거저 나눌 때,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일 것이다.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면 잘 대답할 곳에 있는 거다.
5
연중 제11주일, 말씀은 <마태오 9,36-10,8>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길을 걷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믿음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믿음께 가까이 다가가
믿음이 되어
믿음의 길을 걷습니다
희망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희망께 가까이 다가가
희망이 되어
희망의 길을 걷습니다
사랑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사랑께 가까이 다가가
사랑이 되어
사랑의 길을 걷습니다
기쁨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기쁨께 가까이 다가가
기쁨이 되어
기쁨의 길을 걷습니다
고움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고움께 가까이 다가가
고움이 되어
고움의 길을 걷습니다
착함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착함께 가까이 다가가
착함이 되어
착함의 길을 걷습니다
품음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품음께 가까이 다가가
품음이 되어
품음의 길을 걷습니다
돌봄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돌봄께 가까이 다가가
돌봄이 되어
돌봄의 길을 걷습니다
베풂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베풂께 가까이 다가가
베풂이 되어
베풂의 길을 걷습니다
돋움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돋움께 가까이 다가가
돋움이 되어
돋움의 길을 걷습니다
살림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살림께 가까이 다가가
살림이 되어
살림의 길을 걷습니다
이룸께서 가까이 부르시니
이룸께 가까이 다가가
이룸이 되어
이룸의 길을 걷습니다
6
오늘 내 안에 스친 ‘가엾은 마음’을 기도와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나요?
2026/6/14/연중 제11주일
마태오 복음 9장 36절―10장 8절
⠀
예수님의 마음과 그 열매
누군가를 보며 문득 ‘가엾은 마음’이 든다면, 그 순간은 ‘예수님의 마음’에 머무른 순간입니다. 군중을 바라보시며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라는 예수님의 그 시선은 판단하는 시선이 아니라 연민의 시선이었습니다. 살레시오 성인은 이러한 마음을 “온유함”(Douceur)이라 불렀습니다. 상대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 고치려 들기보다 먼저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이지요. “온유함만큼 강한 것은 없고, 참된 힘만큼 온유한 것은 없다”라는 성인의 말처럼, 온유함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온유의 연민에만 머무르지 않으십니다. 그 마음은 곧 기도로 이어지고, 기도는 다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시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라보는 것과 청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머뭇거리지 않고 마치 이미 준비된 것처럼 이어지는 사랑의 실천.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 방식이며, 살레시오 성인이 말하는 신심생활의 모습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짧은 말씀 안에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자선은 부담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사랑이 그저 넘쳐흐르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향해 가엾은 마음이 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켜놓으신 그 작은 불씨로 인해 오늘도 사랑이 숨을 쉽니다.박성재 엠마누엘 신부(살레시오회)/생활성서 2026년 6월호 '소금항아리'에서⠀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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