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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고약한 상전

370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6월 3일)

1
심리 상담 전문가 이호선 교수가 말하는 자식에게 꼭 물려줘야 하는 3가지를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알고리즘이 읽게 한 기사에 낚였다. 그런데 동의한다. 

이 교수에 의하면, 물질적인 유산은 아이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지탱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돈은 쓰면 없어진다.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실제로 복권 당첨자나 유산 상속자 중 상당수가 수년 내에 재산을 탕진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국내외에서 발표된 바 있다. 재산 자체보다 그것을 다루는 내면의 힘이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반면 보이지 않는 유산이 있다. 아이의 내면에 새겨지는 것들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빛을 발하는 것들 이다. 이 교수가 말하는 진짜 유산 3가지를 지금부터 짚어본다.

§ 첫 번째가 정서적 자산이다. 
아이가 마주할 세상은 언제나 따뜻하지 않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냉혹한 평가와 실패, 좌절을 겪게 된다. 취업 문턱에서 수십 번 떨어지는 경험, 직장에서의 무시, 관계에서의 배신. 이 모든 것이 인생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찾아온다. 그 순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피해 숨을 수 있는 안전기지 이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느낄 때. '괜찮아, 고생했다'라며 안아주는 부모의 품 말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아이는 다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선다. 세상으로 다시 나갈 용기를 낸다.

이것은 심리학 이론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 정신분석학자 존 볼비가 정립한 '애착 이론'은 부모와의 안정적 애착이 아이의 전 생애에 걸친 심리적 건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낯선 환경에서도 탐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건부 사랑, 즉 성적이 좋을 때만, 말을 잘 들을 때만, 기대에 부응할 때만 인정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내 안에 기준이 없으니, 끝없이 밖에서 기준을 찾는 것이다. 그 용기의 뿌리는 언제나 같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가면 나를 두 팔 벌려 맞아줄 곳이 있다는 확신.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조건 없는 환대의 경험이다. 

§ 두 번째가 관계적 자산이다.  
부모가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던 사랑의 기억 같은 거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지 않는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부모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 갈등이 생겼을 때 고함 대신 대화로 풀어가는 모습,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 같은 일상의 장면들이 아이에게는 최고의 관계 교과서가 된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학습'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는 부모의 상호작용 방식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면서 자신의 관계 패턴을 형성한다. 부모가 갈등 상황에서 보이는 태도, 감정을 다루는 방식, 상대방을 대하는 언어가 고스란히 아이의 뇌에 각인된다. 부모가 서로를 존중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존중 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이 자기 존중감은 이후 직장 내 갑을 관계에서, 연애와 결혼에서, 친구 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대로 부모 사이에서 잦은 폭언이나 무시, 냉전을 목격하며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된 뒤에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것 역시 수십 년간 임상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아이의 미래 결혼 생활, 친구 관계, 직장 생활의 디딤돌은 결국 어릴 때 집에서 본 장면들로 놓인다. 부부 관계에 투자하는 것이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것과 다름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세 번째가 철학적 자산이다. 
땀 흘려 일궈낸 성실과 극복의 스토리 같은 거다. 완벽한 부모의 모습이 아이에게 울림을 주는 게 아니다. '우리 부모님도 참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정직하게 땀 흘려 이겨 내셨지' 같은 기억 하나가 자녀의 인생에서 나침반이 된다. 아이는 자라면서 반드시 폭풍우를 만난다. 실패를 마주한다. 길을 잃는다. 그 순간, 부모가 보여준 삶의 태도가 떠오른다. 넘어졌을 때 어떻게 일어났는지. 막막할 때 어떻게 버텼는지. 그 이야기가 아이의 뼈대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족 서사'라고 부른다. 부모의 실패와 회복 경험을 공유 받은 아이일수록 역경에 대한 내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미국 에모리대학교 심리학 연구팀은 가족의 역사를 많이 알고 있는 아이일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인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부모가 살면서 겪은 좌절과 그것을 이겨낸 과정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어떤 사교육보다도 강력한 인성 교육이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단단한 인생 철학은, 결국 부모가 살아온 역사에서 물려받는다.

2
가난한 청년 어부가 어느 날 엄청 큰 진주를 품은 조개를 잡았다. 갑자기 찾아온 그의 행운이 불행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주를 훔치러 침입한 도둑과 싸우다 어부는 도둑을 살해하게 된다. 가족과 함께 도망자 신세로 쫓기던 그는 하나 뿐인 아들을 추격자의 총알에 잃기도 한다. 긴 도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어부는 재앙의 원인이 된 그 진주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 백의 유명한 소설 <<진주>>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횡재가 재앙이 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 이다.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고약한 상전'이라는 속담에서 보듯, 돈은 집착의 대상이 되었을 때 화근이 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인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돈은 독을 뿜는다. 한자어 ‘돈 전(錢)’ 자에는 돈을 경계하는 모양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황금을 뜻하는 글자와 두 개의 창이 뒤엉킨 모습이 합쳐진 모양이다. 돈이 자칫 인간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염려를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년에도 돈의 사슬에서 풀려나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무소유의 삶을 산 것으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의 일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스님은 지인한테서 선물 받은 난(蘭) 한 포기를 정성스레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물을 주면서 바깥에 내어 놓은 채 길을 떠났다. 그런데 난을 내놓은 곳에 햇볕이 들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스님은 급하게 가던 길을 되돌아와 난을 그늘로 옮겨놓고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스님은 난 한 포기 가지는 것도 쓸데없는 소유로 인한 번뇌라 생각하고, 그 난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다고 했다.

​“돈을 묘비에 쌓아 둘 이유가 없다"라는 올해 96세인 워런 버핏의 말처럼, 황혼의 나이에 많은 돈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전설적 투자자인 그는 70세부터 기부를 시작해 2025년까지 한국 돈으로 80조 원을 자선 단쳬 등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를 사회로부터 얻었으니 사회로 돌려줘야 한다”라는 말을 평소에 즐겨 했다고 한다. 세 자녀에게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대신에 그들이 운영하는 자선단체에 상당량의 주식을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자신의 다짐을 실천한 셈이다.​ ​부자로 죽는 것은 가난뱅이로 죽는 것보다 더 딱한 일일 수 있다. 법정으로 번지는 부자들의 상속분쟁이 해마다 크게 늘어난다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3
몹시 추운 겨울날, 어린 소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이윽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푸른 구슬 목걸이 참 예쁘네요. 좀 싸 주세요."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그러니?"
"우리 언니요. 저는 엄마가 없어서 언니가 저를 키워주거든요. 언니에게 줄 선물을 찾고 있었는데 아주 꼭 마음에 들어요. 언니도 좋아할 거예요."
"돈은 얼마나 있니?"
"제 저금통을 털었어요. 이게 전부예요."
소녀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모두 쏟아 놓았다. 그러나 목걸이의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소녀는 목걸이 가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주인은 소녀 몰래 정가표를 슬그머니 떼고는 예쁘게 포장해 소녀에게 주었다.
"집에 갈 때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 하거라."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젊은 여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푸른 목걸이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이 목걸이, 이곳에서 파신 물건이 맞나요? 진짜 보석인가요?"
"예, 저희 가게의 물건입니다. 그리고 좋진 않지만 진짜 보석입니다."
"누구에게 파셨는지 기억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예쁜 소녀였지요."
"그 아이에게는 이런 보석을 살 돈이 없었을 텐데요."
그러자 가게 주인은 젊은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소녀는 누구도 지불할 수 없는 아주 큰돈을 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 전부를 냈거든요."

푸른 구슬 목걸이 값 보다 더 귀한 소녀의 순진하고 아름다운 마음씨가 곱게 느껴지는 이야기 이다. 지금 당신이 가진 것 전부를 꺼내 줄 사람이 있는가? 
돈 보다 더 귀한 아름다운 마음씨에 내 마음도 따뜻해 지는 아침이다. 그런 시 한 편을 공유한다.

구겨진 생을 펴다/김해자

저마다 하루치의 수고를 닫아 건
캄캄한 골목길 오늘도 우성세탁소 안은 환하다
열린 문 사이로 스팀다리미 뿌연 열기 줄지어 승천하고
세탁통은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 덮고 미싱은 구석에서 말없이 존다
문득 다림판 앞에 서서 구겨진 허물
정성껏 펴는 아저씨 얼굴이 성자 같다
그의 등 뒤로 활짝 펴진 생들이 천장 가득 하늘거리는데
무거운 짐을 펴는 그의 등은 누가 펴줄까
하늘을 보니 별빛 몇 모여 세탁소 간판을 걸었구나

4
AI 시대엔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 앤스로픽 공동 창업자인 다니엘라 아모데이 사장은 스스로를 제너럴리스트로 부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의회에서 일했고, 금융 스타트업, 오픈AI를 거쳐 오빠 다리오 아모데이와 앤스로픽을 창업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 경력을 보면 뭘 잘하는 사람일까 싶을 것”이라며 “호기심을 갖고 여러 분야에 걸쳐 배우는 능력,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의지야말로 과소평가되는 자질”이라고 했다. 이는 그가 만난 재능 있는 인재들이 공통으로 가진 자질이기도 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KBS 다큐멘터리 <인재 전쟁 2>에 출연해 AGI(범용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인간 간의 지식 격차가 줄어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AI와 공존할 수 있는 법과 제도 같은 시스템을 새로 설계해야 하는 미래 사회에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무언가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없고 가 큰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20세기는 ‘한 우물만 파는’ 스페셜리스트의 시대였다. 1913년 미국에서 헨리 포드가 자동차 생산에 분업을 도입한 이래로 기업에선 전문성을 가진 스페셜리스트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학문 역시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과학의 발달로 지식의 총량이 급증하자 학문은 쪼개지고 나뉘었다. 장기나 세포 단위로 전문의를 배출하는 현대 의학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각종 자격증의 위력도 막강했다. 스페셜리스트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극도의 효율을 발휘한다. 하지만 AI 등장과 같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큰 환경에선 제너럴리스트의 적응력이 월등하다. 사실 인류 역사상 스페셜리스트가 대접받던 시기는 매우 짧다.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아이작 뉴턴까지 문명사를 바꾼 거인들은 본래 제너럴리스트였다. 산업혁명 이후 분업이 가속하고 지식이 폭증하면서 ‘융합형’ 인재가 탄생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AI와 공존하는 법에 취약한 스페셜리스트만 길러내고 있다. 지식을 달달 외워 객관식 문제를 풀고, 함정을 피해 정답을 고르는 방법을 배운다. 인간의 지식 독점이 깨진 미래에는 크게 쓸모가 없어질 정보와 지식을 위해 집집마다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다. 다니엘라는 “AI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적 역량이 중요해진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적 역량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  AI보다 잘 외우지는 못해도 질문하는 능력, 
§ 타인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능력, 
§ 도덕적 감수성과 윤리적 판단력
인간은 갖고 AI는 갖지 못한 이런 ‘초능력’을 뺏는 우리의 교육부터 서둘러 바꿔야 하지 않을까? <동아일보> 우경임 논설위원의 글을 갈무리한 것이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5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로 <마르코 12,18-27> "부활 논쟁" 이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 품에서>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 12,27)
하느님
품에서는
죽음이 없고
오로지 삶이니
지금여기
하느님 품에서
믿음 희망 사랑으로
죽음을 향한
찰나의
삶을
영원하신
하느님 품에서
믿음 희망 사랑으로
죽음을 건넌
영원한
삶을
하느님
품에서는
죽음이 없고
오로지 삶이니

6
예수님의 삶을 따라 부활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까?
2026/6/3/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전국동시지방선거
마르코 복음 12장 18-27절: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부활의 삶
모세 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던 사두가이들에게 부활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했습니다. 모세 오경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로 귀족이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사회적·종교적 기득권 세력이었던 그들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하느님 나라와 부활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 신앙을 부정하기 위해 한 여자가 일곱 형제와 차례로 혼인했던 극단적인 가정을 들며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이제와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현세에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삶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완전히 달라지는 ‘새로운 삶’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처럼 자신을 형제들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사두가이들의 생각처럼 부활이 그저 현세적 삶의 연장선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기쁘게 목숨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분들을 본받아, 부활의 희망 안에서 기꺼이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허규진 메르쿠리오 신부(수원교구)/생활성서 2026년 6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2026년 6월 3일 성 가를로 르앙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은 19세기 말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화형의 불길 속에서도 찬미가를 불렀던 성 가롤로 르왕가와 21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들은 왕의 부도덕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하느님의 법을 따랐으며, 순교자 중에는 불과 14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도 있었습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은 이 젊은 순교자들이 품었던 '부활의 확신'과 '담대한 영'에 대해 들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힌 채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7)라고 선포합니다. 우간다의 순교자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본능은 두려움 속에 도망치라 속삭였지만, 그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죽음을 이기는 힘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시련 앞에서 위축될 때마다, 내 안의 성령께서 주시는 이 강력한 에너지를 일깨워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부정하며 일곱 형제와 차례로 혼인한 여인의 사례를 들어 억지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부활을 단순히 현세의 삶이 연장되는 정도로만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부활한 이들이 천사들과 같아질 것임을 밝히시며,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 12,27)라고 단호히 교정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과거의 인물들을 추억 속에 가두어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곁에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순교자들이 기쁘게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품으로 옮겨가는 문임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복음을 위한 고난의 길로 초대합니다. 성 가롤로 르왕가는 화형대에 묶여 발부터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집행관에게 "당신은 지금 나를 태우는 게 아니라 내 발에 시원한 물을 붓고 있는 것 같소"라고 말하며 놀라운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육신의 고통보다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이미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가요? 나는 죽음 이후의 삶인 부활을 얼마나 실재적으로 믿으며 살고 있습니까? 작은 시련 앞에서 '비겁함의 영'에 굴복합니까, 아니면 '성령의 힘'을 청합니까?. 신앙은 단순히 도덕적인 삶을 배우는 수업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께 내 삶 전체를 거는 용기 있는 모험입니다. 우간다의 젊은 순교자들이 보여준 뜨거운 사랑이 오늘 우리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기를 간절히 청해 봅니다. 우리가 부활의 희망 속에 머물 때, 세상의 어떤 시련도 우리를 삼키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들이 가졌던 굳건한 믿음을 주소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비겁해지지 않게 하시고, 산 이들의 하느님이신 당신만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기쁘게 봉헌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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