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4월 15일)
1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정민(데비 리)이라는 분의 책,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을 계속 읽고 공유한다, "인생이란 폭우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가 와도 그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세네카(Sénéque)의 유명한 이 말처럼, 나 만의 춤을 추려면,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일상의 꾸려가야 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살자는 거다.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바로 대학을 가지 않고 1~2년 정도 안식년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안식년을 보내는 청년들은 전문적인 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경제활동을 하면서 '나'와 '세상'이라는 과목을 공부한다.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사회적 기준과 시계에 맞춰서 살아간다. 그렇게 사회적 시간을 맞추면 나의 인생이 잘 완성되어갈 줄 안다.
진정한 자신이 영글 때가 저마다 다 다르다는 사실이 세상을 생동감 넘치고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면,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마다 솔로 부분이 다르고, 각자 큰 소리와 작은 소리를 내는 타이밍이 달라서 풍성한 음악이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겨울에 피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다 같은 속도로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역사가 되겠는가?
저자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원하는 일만 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나 답지 않게 사는 시간도 겪어보고, 세상의 지준 속에서 부대껴보는 시간도 있어야 나 답게 사는 소중함을 더 깊이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중요한 것은 바쁜 삶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는 거다. 그러면서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에서 한 말을 소개했다. 나도 공유한다.
"왜 우리는 그토록 조급하게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왜 그렇게 다급한 일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걸까? 어떤 사람이 동료들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가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가 듣는 그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게 하라. 그 박자가 느리든,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든 상관 없이 말이다. 사과나무와 참나무와 같이 서둘러 자라야 할 이유는 없다. 자신의 몸을 억지로 여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어도 올바른 길로만 가고 있으면 된다. 배마다 가장 아름답게 흐를 수 있는 속도가 있다. 서두름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여정 속에서 내게 필요한 걸 찾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항해이다.
2
그 다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숫자와 글자의 균형 또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루는 의식과 같다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자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Jack Canfield)의 인생 수업>을 소개했다. 그 중 수업 내용이 흥미로웠다. 커리큘럼이 "나 자신을 100% 책임지기", "두려움을 이기는 법", 관계를 맺는 법", "거절을 다루는 법",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법" 등 개인적이고 일상에 밀접한 내용이라는 거다. 저자는 주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했고, 자식을 얻기 위해 수업을 들었는데, 잭 캔필드의 교육은 삶의 내공을 쌓게 해주었다고 했다.
내 <인문 일지>도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혜를 전달하고, 나 또한 그 지혜로 내 일상을 바꾸고 싶다. 잭 캔필드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고, 오히려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큰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교육을 마치는 시간에 "Be yourself. - 당신 자신이 되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저자는 이 수업을 통해, 자신을 믿고, 불안감을 덜어내며, 삶의 프로세스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인생도 배워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삶도 인생도 배워야 한다.
- 긍정성과 감사의 실제적인 가치를 찾고 경험해 본다.
- 어두운 과거나 할 수 없다는 죄절감과 이별하며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상을 꾸려본다.
- 사랑과 용서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도 깨닫고 경험해 본다.
그래야 우리는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끓이는 나만의 레시피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완전해 진다. 인생의 풍랑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과감히 떠나 보는 거다. 그 길 위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행복을 발견하는 인생 수업이 시작될 것이다.
4
덴마크 교육 이야기를 소환한다. 덴마크 교육에서 느낀 거다. '사회 안에는 반드시 우리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원칙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가 최고가 되려고 행복을 희생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목적은 지식을 축적해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우리 각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유용하게 자신이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사회 안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이 말을 우리 교육문법의 원칙으로 삼았으면 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덴마크가 그렇다고 한다.
▪ 덴마크는 몇몇 엘리트에게 맞춰 교육하지 않는다.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 수준에 맞춘다.
▪ 무상교육에 장학금까지 지급하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덴마크 교육제도는 암기식 지식 습득보다 개인의 자율성 형성 및 호기심과 판단력 자극이 목표이다.
▪ 덴마크 아이들은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도록 자극 받는다.
▪ 덴마크는 평등, 자유, 공동체 의식이 기초인 사회에서 각자 책임, 권리, 의무를 잘 이해하고 미래의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교육한다.
▪ 덴마크 학교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키우고 많은 열정을 쏟아 개성을 발달시킨다. 학생들이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미래를 건설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렇게 데카르트의 말(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뇌는 지식을 위에서 아래로' 수동적으로 전달받을 때보다 직접 경험하고 참여하고 의견을 낼 때 훨씬 잘 습득한다. (OECD 교육연구혁신센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직접 힘들게 해결책을 찾아 낼 때 인간의 지성은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UNESCO도 21세기의 경쟁력으로 융통성, 상호작용능력, 비판 정신, 창의성, 주도성을 꼽았다. 흥미로운 덴마크의 두 학교를 소개한다.* 우리 사회가 분열로 갈등을 겪는 교육이 없었거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 사회는 '엘리트 주의'가 심각하다.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엘리트를 양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덴마크 교육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최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덴마크 교육 제도의 목표는 많은 학생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목적은 지식을 축적해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즉 학생 각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선진국 젊은이들은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젊은 덴마크 사람들은 자녀에게 재산보다 인내, 존중, 정직, 독립심과 같은 가치를 더 물려주고 싶어 한다. 물질적인 성공만을 좇다 보면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물질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 의미도 없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덴마크에서 본받을 것은 양질의 진로 교육을 시에서 관리한다는 점이다. 덴마크 젊은이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엘리트 양성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과 능력 발달을 강조하는 덴마크 교육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하는 투쟁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약자들이 최후에 택하는 방법"인데, "구성원들 모두 기득권인 정당이 삭발 투쟁이라면서 약자 코스프레를 하니"(정의당 김동균 대변인) 혼돈스럽고, 쓸쓸하다. 이런 현상을 교육의 부재라고 본다, 그래 글이 길다.
쓸쓸한 날에/강윤후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을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알리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 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더러운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들려주어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타전할지 모르므로
*(1) 에프터스콜레: 일종의 인생 설계 학교이다. 14살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 학교에서 1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전형적인 교과목이 아닌 다른 분야의 재능을 개발하면서 보내는 성숙의 해다. 이 학교의 목표는 학교 교과목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지 못하더라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서는 지유로운 분위기와 공동체 의식, 창의성, 신체 활동, 기술 습득 및 단체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학교를 거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길을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다. 매년 학생의 15%가 등록한다.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에프터스콜레에서 경험한 덕분에 다른 사람과 자신의 차이를 대화와 관용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 개인의 목적보다 공동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제도 안에서 더 잘 적응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동체 교육이 중요하다. 또 다른 학생의 증언을 들어보자. "저는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공동체,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공동체 의식, 관용, 신뢰가 가장 밑바탕에 있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시스템을 존중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조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2) 호이스콜레: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교이다. 그룬트비가 설립했다. 그는 평등, 분배, 타인 존중, 공동 프로젝트 참여와 같은 기본 가치를 존중하며 배우는 즐거움을 바탕으로 교육제도를 만들었다. 모두가 이용하는 평생학교이다. 각자 창의성을 표현하고,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경쟁도 학위도 없는 자유로운 학교이다. 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24세로, 개인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열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입학요건은 17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즉 덴마크어나 영어를 할 줄 알면 된다. 수강 기간은 일주일에서 열 달 사이로 다양하다. 학교 재정은 정부 장학금과 기부금으로 일부를 충당한다. 이 곳의 교육 목적은 모든 학생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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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제2주간 수요일로, 말씀은 <요한 3,16-21> " 니코데모와 이야기하시다" 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당신을 믿기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당신을 믿기에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께 듣습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께 말합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을 느낍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을 희망합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을 품습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께 스밉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을 닮습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이 됩니다
6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어둠 속에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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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4/15/부활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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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3장 16-21절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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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빛으로, 진리를 통하여 빛으로
오늘 복음은 우리의 영적 여정이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행적 사랑에서 시작됨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뉘우치기도 전에 은총을 가득 부어주셨습니다. 이미 하느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졌기에, 그분으로부터 새롭게 무언가를 얻어내기보다 그 사랑을 깨닫고 머무르는 것이 믿음이 됩니다. 심판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빛은 이미 세상에 왔지만, 우리는 그 빛 앞에 서기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빛이 우리의 실수, 상처, 위선, 두려움 모두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러나지 않아도 되고, 변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어둠을 쉽게 선택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진리를 선택하며 말이지요. 이 선택은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음으로써 빛으로 나아갑시다. ‘주님! 저는 아직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숨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말이지요. 김상태 사도 요한 신부(도미니코 수도회)/생활성서 2026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2026년 4월 15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도 핵심적인 구절을 마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우리가 부활을 기뻐해야 할 모든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동기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을 우리의 잘못을 감시하고 벌을 주는 무서운 심판관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님을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그분께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짝사랑의 전문가이십니다.
둘째, 주님은 닫힌 감옥 문을 여시는 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지만, 주님의 천사는 밤중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옵니다. 그리고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사도 5,2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억누르는 절망, 질병, 죄악, 혹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문을 열고 진정한 자유를 선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셋째, 빛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빛 앞에 서면 나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이 드러나기에 사람들은 흔히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빛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치유하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비추는 것입니다. 나의 약점까지도 주님의 빛 앞에 솔직하게 내어놓을 때, 우리는 어둠 속의 고민에서 벗어나 비로소 참된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종류의 문을 봅니다. 우리를 가두는 감옥의 문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열어두신 구원의 문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마음을 감옥처럼 답답하게 만들더라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 사랑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감옥 문을 부수는 강력한 힘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심판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나를 살리려는 주님의 빛을 향해 고개를 듭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우리가 이 사랑을 믿고 빛 속을 걸어갈 때, 우리를 가두었던 모든 감옥 문은 소리 없이 열릴 것입니다.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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