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4월 2일)
1
어제는 넷플릭스에서 '닥치고 아무거나' 정신으로 영화 한 편을 틀었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누구인가 물었다. "나는 작가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는 말이 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들이 우산을 펴거나 신문지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뛰어갈 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는 바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거나 시간에 맞춰 어딘 가에 도착하기보다 무늬를 그리며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 응시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무엇이 살면서 중요한가"라고 물으신 예수님의 첫 번째 물음을 좋아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마태 6장 25절) 이 질문은 수사학(修辭學)적 질문이다. 이것은 즉답이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오히려 질문을 받은 사람을 고민에 빠뜨려 자신만의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신앙은 분명한 해답이 아니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던 세계관과 신앙관의 끊임없는 파괴이며, 새로운 세계로의 과감한 여행이고 동시에 그 과정에 대한 한없는 의심이다.
2
작가는 기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생명체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포식(捕食), 기생(寄生), 경쟁(競爭), 공생(共生)이 그것이다. 포식과 기생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반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포식을 생존 수단으로 삼는 호랑이나 늑대가 멸종위기에 처하고, 기생의 대표 격인 칡덩굴이 인간의 손에 의해 제거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자원이 유한한 환경에서 생명체들은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공생이 완전히 배제된 파멸적 경쟁은 종의 번성에 기여하기는커녕 쇠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성공적인 생존 전략은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정된 삶과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할 것이 바로 “햇빛, 공기, 물, 영양, 파장(파동)" 다섯가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계속적인 이상 기후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할 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본다. 이중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햇빛, 공기, 물, 영양“으로 자연에서 오는 것이고, “파장(파동)과 희망“은 본인의 선택사항이다.
그럼에도 생명은 아프다.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두 다 고통의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물의 푸른 덩굴이 팔을 뻗어 위쪽을 향해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수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만큼 에는 이르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존재들이 곤란을 견디고 있다. 고통 없이는 빛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반짝이는 별의 배경은 긴 밤이고, 캄캄한 어둠이다. 꽃도 나비도 살아 있음을 아픔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가고 싶어"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처럼 넓고 큰 세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이승하
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보려고 지금은 앓고 있는 중이지
3
지난 달 말, 3월 31일에 했던 '배고픔에 대한 연구'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은 사람들이 병적인 도박 같은 해로운 행동을 연구하는 세계 최고의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는 마크 포텐자(Marc Potenza) 박사의 연구를 살펴본다. 우선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저의 관심은 사람들에게 잠재적으로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먹는 행동'을 연구해왔습니다. 공중 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무엇일까요? 발병률과 사망률 관련 요인에서 비만과 흡연이 선두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수백 건의 연구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슬롯머신을 당기고 스포츠 배팅을 하고, 복권을 긁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스트레스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우리로 하여금 쉴 새 없이 입안에 쓰레기를 집어넣게 한다고 했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에는 급성 스트레스와 만성 스트레스, 두 종류가 있다.
▪ 급성 스트레스는 공포 영화의 "섬뜩한 공포"와 같은 경계 반응이다. 투쟁도피반응이 나타나면서 심장이 뛰고 혈압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피가 팔다리로, 심장으로, 뇌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대항하든지 도망치든지 하게 된다.
▪ 만성 스트레스는 덜 강력하지만 오래간다. 이런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다른 호르몬을 천천히 지속적으로 분비한다.
인간과 영장류가 특히 만성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높은 지능을 지닌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 불행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주기에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는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는"(로버트 새폴스키, Robert Sapolsky) 것과 같은 급성 스트레스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사람들은 만성 스트레스 요인들을 스스로 만들어내 전파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옆집 사람과 비교하며 사는 삶
▪ 청구서
▪ 뒷담화와 소문 등
바로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포식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잡아 먹히는 이유이다. 우리는 무엇을, 언제, 왜, 누구보다 더 많이, 더 먼저 성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코르티솔의 지속 분비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상 섭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자제력을 좀먹기까지 한다. 마크 포텐자(Marc Potenza) 박사는 이를 "비만을 유발하는 강력한 공식"이라고 표현하며, "음식은 저렴하면서도 단기적인 기쁨과 불편함에서 벗어나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과체중인 사람들이 저체중 사람들에 비해 먹을 것에 손을 대는 경향이 더 많았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과체중인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더 강한 식욕을 느끼고, 더 많은 정크 푸드를 먹었다.
포텐자 박사는 자신의 연구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식의 보상 속성을 고려했을 때, 소금, 지방, 설탕, 전분을 함유한 음식물이 자기치료 형태로 기능하는 '컴포트 푸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초가공 식품은 어디서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값싼 항불안제와도 같다. 그러나 신경안정제가 그렇듯이, 그 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스트레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래서 약을 한 알 더 삼키거나, 정크 푸드를 더 먹어줘야 한다. 부작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체중 증가, 심장병, 삼장마비, 암, 고혈압, LDL 콜레스트롤 증가, 2형 당뇨, 만성 피로, 우울증, 골관절염, 통증, 수명 단축 등.
4
이제까지 말한 스트레스 섭식은 제한적 다이어트 방법들이 대부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행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경우 버텨내지 못하고 금지된 음식에 손을 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동료는 직장 스트레스를 받아도 식습관에 변화가 없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 접근 방식은 오히려 금지된 음식의 매력을 더 강하게 만들고, 보상감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수록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따를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리고 한 연구에 따르면, 유행 다이어트는 사람의 배고픔 측정 능력을 망가뜨린다. 엄격한 식사 원칙을 따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몸에서 보내는 배고픔과 포만감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져 결국 배부름을 훨씬 초과할 때까지 과식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더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특정 음식을 완전히 금지하지 않는 다이어터들은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았다. 여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을 수 있다. 유행 다이어트법으로 덥석 뛰어드는 사람들의 총동 조절 능력이 취약한 탓인지도 모른다. 또 허기 감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엄격한 원칙을 통해 통제권을 휘두르고자 하는 욕구를 더 많이 느끼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다.
스트레스 섭식을 유발하는 모든 요인들을 전부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에 따른 행동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비만을 예방하는 첫째 방법으로 개인의 행동 변화가 중요하다. 우리가 스스로 힘을 키워서 불편함을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거다.
지난 3월 31일에 말했던, 트레버 캐시(Trevor Kashey)의 배고픔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르면, 그는 어떤 음식도 금지하지 않는다. 먹을 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도덕, 자책감, 감정을 배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억제 효과(Disinhibition Effect)'라 불리는 현상이 나온다. 음식을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종종 스트레스와 감정에서 오는 강렬한 보상 허기에 굴복하게 된다는 거다. 과도하게 제한적인 다이어트를 하면, 오히려 체중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를 겪고, 결국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보다 더 살이 찐 상태로 끈이 난다. 캐시의 방식에서는 하루 목표 칼로리를 초과하지 않는 한에서 정크 푸드를 포함한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잇다. 감정과 도덕 판단을 배체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처음 세운 계획이 절대 변하지 않는 일반적인 다이어트와 달리, 캐시의 접근법은 데이터를 갖고 지속적으로 정비되며 최적화 된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 평소에 먹고,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한다.
▪ 이 데이터를 갖고, 체격, 활동 수준, 현재 체중을 기반으로 필요한 섭취량을 계산하여 섭취해야 할 구체적인 칼로리와 단백질 목표량을 제시한다.
▪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 자신이 먹은 음식과 행동을 모두 기록하고 매주 데이터를 제출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주 미세한 조정을 가한다. 그것을 '동적 조정(Dynamic adjustment)'라 부른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잘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동적 조정'은 영양이라는 관점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 아닐까?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의 지속적이 활용이다. 호손효과는 1958년에 발견된 행동 심리 현상으로, 사람은 자신이 관찰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행동을 바꾼다는 개념이다.
그렇다 해도, 정크 푸드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짜 배고픔을 달래거나 자제력을 잃는 폭식을 막는 데 있어서 모든 음식이 똑같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음식이 허용된다고 해도 중요한 건 양을 조절하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피자만 먹는다면, 하루 2,000칼로리~2,500칼로리 어치의 피자는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는 거다. 피자는 칼로리 밀도가 sj무 높아서 피자만으로 배부른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칼로리 제한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끊임없이 배고픔에 시달린다. 이때 "피자는 먹으면 안 돼요"라고 말하기 보다, "마음껏 먹으세요. 대신 계획 안에서 움직이셔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건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학습 기회가 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을 따르면서 피자를 먹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요"라고 말하게 된다. 이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학습 기회를 얻은 거다. "이제 좋아하는 음식 중에서 더 오래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걸 같이 골라봐요"라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음식에 대해 엄격한 '전부 아니면 전무' 식 원칙을 가진 사람들은 건강한 다이어트법을 팽개치고 포만을 훨씬 초과한 수준까지 먹는 경향이 강해서 결국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퇴보한 상태가 되고 만다. 배고픔 없는 장기적 체중 감량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배고픔을 다스리는 것이 체중 감량의 성공 확률을 높여준다. 문제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산책을 나가는 것은 일정 수준까지 만 효과가 있다는 거다.
음식에 따라 배고픔을 억제하는 하는 효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음식의 포만감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에너지 밀도이다. 이를 활용해 배고픔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우리 조상들의 식습관을 바탕으로 진짜 배고픔과 가짜 배고픔을 구별하고, 건강을 개선하며,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에너지 밀도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우리 앞에 놓은 음식 약 450g(1파운드)에 들어 있는 에너지 혹은 칼로리의 양을 따져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상추 450g에는 60칼로리가 들어 있고, 올리브나 카놀라유 같은 기름에는 1파운드(450g)에 4,000칼로리가 들어 있다. 이 두 가지 음식을 직접 비교하면, 450g당 칼로리 차이가, 6,500%에 달한다. 또 다른 예들을 나열해 본다.
▪ 감자튀김 같은 정크 푸드, 초코바, 디저트류, 심지어 에너지바 같은 것에는 450g당 2,000칼로리
▪ 빵이나 크래커 같은 가공 곡류에는 1,500칼로리
▪ 쌀밥이나 찐 귀리 같은 비가공 곡류에는 500칼로리
▪ 감자나 고구마 같은 뿌리채소, 과일, 채소에는 각각 400, 300, 120칼로리 정도가 들어 있다.
우리의 위장에는 기계적 수용체가 있어서 위가 채워졌을 때 뇌에 포만감을 전달한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 문제는 다음 기회로 옮긴다.
5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요한 13,1-15>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 이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하나의 사랑>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요한 13,6)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8)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2-15)
하나의 사랑
발을 보는 사랑
발을 보여 주는 사랑
하나의 사랑
발을 보듬는 사랑
발을 내미는 사랑
하나의 사랑
발을 맡는 사랑
발을 맡기는 사랑
하나의 사랑
발을 씻어 주는 사랑
발을 씻게 하는 사랑
하나의 사랑
6
나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2026/4/2/주님 만찬 성목요일
요한 복음 13장 1-15절: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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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이 머무는 곳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악마가 불어넣었다고 요한 복음은 전합니다. 그런데 바로 앞 구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전하며, 예수님의 마음과 유다의 마음을 선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유다의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꼭 유다처럼 배신의 생각이 아니더라도,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사랑이 들어올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사랑은 계산이나 논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마지막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에서 예수 성심이라는 중심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기 자신이 된다고 강조하십니다(17-18항 참조). 거룩한 성삼일을 보내며, 나의 마음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돌아봅시다. 현실에 대한 걱정과 근심, 자기중심적이고 계산적인 생각, 다른 이들에 대한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예수 성심을 바라봅시다.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가득 찬 마음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내 마음의 중심이 사랑으로 채워질 때, 생각은 더 깊이, 더 많이 사랑하도록 돕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김우중 스테파노 신부(예수회)/생활성서 2026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
- 예수님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유다의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생각과 사랑은 다르다. 생각은 변한다. 그러나 사랑은 안 변한다. 특히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 현실에 대한 걱정과 근심, 자기중심적이고 계산적인 생각, 다른 이들에 대한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예수 성심을 바라봅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기 자신이 된다.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가득 찬 마음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7
2026년 4월 2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룩한 사흘인 '파스카 성삼일'의 문을 엽니다. 오늘 밤, 성당의 종소리는 잠시 멈추고 제대는 비워지며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신비 속으로 깊이 침잠합니다.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두 가지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로 '발을 씻어주시는 주님'과 '빵이 되신 주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여기서 ‘끝까지’는 시간적인 마지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극치, 곧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이 '끝까지'의 사랑은 유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시작해, 내일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까지 쏟아내시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주님의 사랑에는 ‘여기까지만’이라는 한계가 없습니다.
스승이요 주님이신 분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채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십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했고 베드로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주님이 보여주신 권위는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타인의 먼지를 닦아주는 겸손이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품격은 내 어깨에 힘을 줄 때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앞에 내 무릎을 굽힐 때 드러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신비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을 추상적으로 가르치지 않으시고, 우리가 먹고 마실 수 있는 구체적인 음식으로 남기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죽음을 단순히 추억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2,000년 전의 그 희생이 오늘 이 제대 위에서 다시 일어나는 신비입니다. 빵이 쪼개져 우리 몸에 모시게 되듯, 우리도 주님을 닮아 타인을 위해 기꺼이 쪼개지고 먹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초대입니다.
오늘 미사가 끝나면 성체는 수난 감실로 옮겨지고 성전은 정적에 잠깁니다. 이제 우리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오늘 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봅시다. “나는 오늘 누구의 발을 씻어주었는가?, 누구에게 내 발을 내밀며 씻겨달라고 군림했는가?”, “나는 주님의 몸을 모시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빵이 되겠다고 다짐했는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이론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이번 성삼일 동안,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밥이 되시고 종이 되신 그분의 사랑 앞에 머물며 우리 마음의 때를 씻어냅시다. “주님, 제 머리도 손도 아니라, 제 삶 전체를 씻어 주소서. 그리하여 저 또한 당신처럼 누군가를 위해 쪼개지는 빵이 되게 하소서.”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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