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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 정신은 세상서 가장 낮은 계층에 따뜻한 시선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1년 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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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3월 14일)

1.
OTT를 통해, 지난 몇 일에 걸쳐 영화 <아노라>를 보았다. 받아들이기 힘들어 영화를 보다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다 본 것은 상을 받았다고 해서 이다. 그러나 나도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상 제도'에 유혹 당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인문 운동가로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영화 이야기를 한다.

올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5관왕(작품상, 감독상, 여우 주연상, 가복상, 편집상)을 거머 쥔, 영화 <아노라>는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이 시대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부조리를 포착해 고발한 것이 놀라운 걸작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닐까? 원래 좋은 소설이란 읽기가 불편하여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이게 예술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 션 베이커(Sean Baker)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계층과 계급, 그것도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럼에도 숀 베이커는 이야기를 지나치게 사회구조적 이론으로 환치시키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에 다가서게 하려고 만든다. 그의 영화가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심지어 코믹하기까지 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이유다.

2.
또 다른 이야기이다. 숀 베이커는 극장주의, 전통적 영화보기의 방식, 그리고 그 공동의 경험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감독이다. 큰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자는 거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핸드폰으로 스크롤을 하고 이메일을 체크하면서 반만 집중한 채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세상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극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것은 훌륭한 공동 경험 중 하나입니다. 나는, 우리가 친구 혹은 낯선 사람들과 웃음, 슬픔, 분노를 공유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를 바랍니다. 나는 영화의 미래는 극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극장주의를 복원하자고 외친다. “우리는 어디에서 영화와 사랑에 빠졌을까요? 바로 극장입니다. 세상이 매우 분열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집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공동체적 경험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화관, 특히 독립 영화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중에 거의 1000개의 스크린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이 추세를 되돌리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문화를 잃을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외침입니다. 영화 제작자 여러분! 계속해서 큰 스크린을 위한 영화를 만드십시오! 저도 그럴 것입니다!”

3.
영화 <아노라>에서 러시아 갑부 아들 반야는 성노동 구매 행위를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을 만큼의 재력을 가지고 있다. 클럽에서 스트립걸 애니(우즈베키스탄 식 발음으로는 아노라)를 본 그는 자신과 일주일만 같이 놀자고 꼬드긴다. 거래 끝에 가격은 1만 5천 달러로 정해진다. 일주일 간의 쾌락 동거 중 반야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애니와 충동적으로 결혼한다. 애니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반야의 씀씀이를 목격하는 와중에 결혼 반지로 다이아몬드 4캐럿을 질러 버리는 그가 실제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 버린다. 성 노동자 애니로선 팔자 제대로 고칠 '빅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애니에게 찾아온 '반짝 호사'는 반야의 러시아 재벌 부모가 그의 결혼 소식을 접한 즉시 붕괴 위험에 빠진다. 미국의 마름들이 반야의 집을 찾아오자 반야는 줄행랑을 쳐 버리고 애니는 하루아침에 사기 결혼 피의자로 몰린다. 팔자 제대로 고칠 애니의 '빅 찬스'가 하룻밤 사이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과정은 대단히 고통스러울 뿐이다. 몸 뿐만 아니라 감정 까지도 판매해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재 인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애니는 창녀였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그리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몸을 소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그것을 좇아가고 있는 러시아 자본주의는 절대로 애니=아노라가 추구하는 신데렐라의 꿈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기는 커녕 짓밟고 짓이긴다.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마지막 이고르(유리 보리소프)와의 섹스신은 애니가 자신의 정체성, 곧 애니라는 부자가 될 수 있는 미국 여자가 아니라 아노라라는 이름의 이민자 하층계급 여자임을 인식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4.
사람이 상품이 된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이다. 지배자들이 사람의 생사 여탈권까지 쥐고 있었던 전 근대 신분 제 사회에 비하면 근대 이후의 형식적인 평등은 사람의 상품 성을 탈색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는 매매가 이루어지는 순간의 불평등을 강제한다. 구매자는 '갑'이고 판매자는 '을'이다. 판매 상품인 사람의 가격은 임금으로 책정된다. 성 노동도 상품이다. 이 상품은 정해진 매장 에서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법적인 환경에 따라 단속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문 판매, 클럽에 서의 유사 성행위 등의 편법 형태로도 이루어진다. 어떤 경우에는 관계 까지 포함한다. 버트런트 러셀이 "유감스럽지만 돈은 사랑도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재력은 실제로 돈 많은 이를 사랑하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지게 하는 게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돈 많은 이가 나에게만 성실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최광희라는 분의 영화 평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사람의 노동이 상품이 되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섹스 산업이다. SNS의 발달로 이 산업은 스마트 폰을 도배하고 있다. 매일 매일 배달 되는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는 지겨울 정도이다.

이 섹스 산업은, 불편하지만, 가격을 높이기 위한 판매자의 감정 노동이 동원되고, 구매자의 짧은 오르가즘의 순간이 지나면 판매자와 구매자로 계산대 앞에 서야 하는 차가운 관계의 진실만이 남는다. 영화 <아노라>가는 그것을 대단히 드라마틱한 우화를 통해 드러낸다. 이 이야기는 당연히 영화적 해프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이 시대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부조리이기도 하다. 그것을 포착해 내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라는 것을 미국 독립영화의 총아 션 베이커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 <아노라>는, 불편하지만, 놀라운 걸작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5.
이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을 느꼈다. 그 자본주의의 민 낯을 보았으니 이젠 시장에서 정신을 차릴 생각이다. 사람이 노동이 되는 시장에서, 감정 노동까지 요구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인문 정신을 되찾았다. <아노라>의 앞 부분 1시간은 섹스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야하지만 뒷부분 1시간은 '슬랩스틱'에 가까운 코미디이고 마지막 엔딩 장면이 극히 슬픈 이유는, 숀 베이커가 날카롭고 비관적인 지성의 인물임에도 결국 희망과 낙관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작품을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다시 한번 미국이라는 나라와 세계가 서로에게 담을 쌓기 보다는 극장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부터 연대하고, 작은 돈으로 큰 의미를 만들어 가며, 낮은 곳에 임하는 인도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고 있음을 보여줬다. 딱 5년 전 봉준호의 <기생충>이 만들어 낸 항목들이다. <아노라>의 성취가 <기생충>의 그것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는 이유다. 숀 베이커는 또 다른 봉준호다. 오동진 영화평론가의 주장이다.

인문 정신은 세상서 가장 낮은 계층에 따뜻한 시선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현대 경쟁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작동 기제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이다. 올림픽에서 외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찾거나, 더 높은 성공의 열차에 타려고 발버둥친다. 과학 기술도 기하급수적인 속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더 먼 데까지 새 물건을 갖고 달려가기 위해 경쟁한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그 반대에 있다.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인문 정신은 소외된 자리를 향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고, 느긋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일이고, 세계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친화력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사회에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선진 사회가 된다.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시는 <더 느리게 춤추라>이다.

더 느리게 춤추라/데이비드 L. 웨더포드

회전목마 타는 아이들을
바라본 적 있는가.
아니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인 적 있는가.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를 뒤따라간 적은,
저물어 가는 태양빛을 지켜본 적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
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앞으로 할 백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달려가는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
내일로 미루자고.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에만 남긴다. 내 블로그는 여럿이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