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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구속_취소 #천망회회_소이불루 #하늘의_맷돌 #극즉반 #걱정

318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8일)

1.
악몽으로 몸은 지쳤는데, 잠이 오지 않고, 눈 앞이 잘 안 보인다. 어제는 매달 함께 하는 탁구 모임으로 천안에 다녀왔다. 기차 안에서 무심코 켠 스마트폰에서 봤다,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10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는 거다. 구속 취소는 구속의 사유가 없거나 소멸될 때 검사, 피고인, 변호인 등이 법원에 구금 상태를 해소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대부분의 상식을 가진 페친들은 최소한 윤석열의 인신 구속에 대해서 별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당장, 검찰이 법원의 구속 취소에 대해 즉시 항고를 통해 윤10의 구속을 연장하고, 절차적 위법 문제를 해결하며, 다음 주 윤석열 파면 결정 이후 그동안 묵혀뒀던 모든 죄에 대한 구속(신청/연장)과 기소를 시작하면 된다는 거다. 그런데 아직까지 항고를 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항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검찰은 고민 중이라 한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윤10은 살아서는 다시는 사회 구경을 못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을 공유하기 직전에 윤10이 석방되었다. 불안하다. 아마도 박노해 시인이 최근 발표한 시처럼, 세상은 대혼란 속으로 빠질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오면/박노해

그가 다시 돌아오면
계엄의 밤이 도래하겠지
번득이는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
의인들과 시위대가 ‘수거’되겠지
광장과 거리엔 피의 강이 흐르고
사라진 가족과 친구를 찾는
언 비명이 하늘을 뒤덮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살림은 얼어붙고 경제는 파탄나겠지
우린 갈수록 후진국으로 추락하겠지
오가는 사람도 드문 스산한 밤거리엔
총소리 군홧발 소리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계엄군이 내 가방을 뒤지고 신상을 털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남북이 충돌하고 전쟁이 돌아오겠지
자위대가 상륙하고 미군이 연합하고
긴 내전과 숙청의 날들이 이어지겠지
숨어있던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광복 80년 만에 이 땅은 다시 빛을 잃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모든 방송과 언론과 유튜브에선
검열된 이슈와 재미와 조작으로
눈과 귀를 가리며 관심을 돌리겠지
김건희의 국빈 행사와 일상을 띄워대며
패션과 미담의 화제거리로 도배되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자유도 민주도 선거도 의회도 삭제되겠지
빛을 들고 나선 이들이 샅샅이 색출되고
단 몇 줄 올린 글로 검은 제복이 찾아오겠지
너 좌빨이지, 불순분자지, 완장을 찬 극우대의
광기 어린 폭력에 숨도 못 쉬겠지

아아 그가 다시 돌아오면,
저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버젓이 권좌에 도사린 채
내란을 지속하고 내전을 불지르는 자들

지금, 빛으로 끌어내 처단하지 않는다면
지금, 뿌리째 뽑아내 청산하지 않는다면

2.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한국의 엘리트 관료들이 비겁하고, 대가 약하다. 조금도 자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왕을 꿈꾸는 자 옆에는 늘 세습 귀족들이 똑같이 꿈꾼다. 전우용 교수의 담벼락을 읽고 터득한 것이다. 왕이 되려는 자 옆에는 언제나 '세습 귀족'이 되려는 자들이 있다. 왕과 세습귀족들의 나라는 민주 공화국을 파괴해야 만들 수 있다. 높은 곳에 '세습 귀족'을 꿈꾸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언제 폭탄을 맞을 지 모른다.

3.
나는 하늘의 이치를 믿는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 기다릴 뿐이다.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촘촘하지 못해 엉성하지만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늘이 모르는 죄가 있는 듯하지만, 벌 주기에 적당한 때를 선택할 뿐이다. 큰 물고기는 홀로 다니지만, 작은 물고기는 떼를 지어 다닌다. 작은 물고기는 서로 뭉쳐 돕지 않으면 큰 물고기한테 다 잡혀 먹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큰 물고기도 수명이 다해서 죽거나 그물에 걸려 잡힐 때가 있다. 그걸 알아야 한다.

4.
사람의 손길은 피할 수 있어도 신의 손길은 피할 수 없다. 하늘의 섭리는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는 이렇게 표현했다. “하느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갈지 않는 것이 없다.”

평생 역사를 연구해서 얻은 교훈으로 찰스 비어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꼽았다.
▪ 하늘의 맷돌은 멸망시킬 자에게 권력을 줘 날뛰게 한다. 하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못한다. 하늘은 오만한 사람을 파멸시키려고 할 때는 먼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권력에 중독되게 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기적인 생각과 권세욕, 욕망과 교만에 날뛰면 결국 멸망한다는 사실이다.
▪ 하늘의 맷돌은 더디게 돌지만 아주 작은 것까지 간다. 하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도는 것 같아도 반드시 미세한 부분까지 분쇄 시킨다. 하늘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가서 결국에는 의는 의로, 불의는 불의로,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드러나게 한다는 거다.
▪ 하늘이 주관하는 역사에는 실패가 없다. 예컨대, 꿀벌은 꿀을 도둑질해서 꽃을 피운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빼내는 것 같아도 그 꽃을 수정시켜 열매를 맺게 한다. 벌은 꽃이 만들어 놓은 꿀을 탈취한다. 하지만 꿀을 빼앗아가면서 동시에 꽃가루를 옮겨 수정이 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에는 꿀벌과 같은 강도들이 많다. 강탈자, 악인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벌과 같은 강도가 항상 악을 행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날강도들이 설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들을 통해서도 합력해 선을 이루는 하늘의 계획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결국 하늘이 주관하는 역사에는 실패가 없다.
▪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야 별이 보인다. 어둠이 짙어야 별을 볼 수 있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별이 또렷하게 보이고, 별이 보이면 날이 곧 밝아온다. 우리는 당장 전개되는 현상에 교만 해지거나 혹은 의문을 품고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기엔 하늘의 섭리가 있으니 겸손히 그 뜻을 물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다. 개인의 인생이나 기업, 권력도 마찬가지로 흥망성쇠의 원인과 결과가 있다.

문제는 이 모두가 인간의 눈에는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은 사람이 보기에 난해하다. 그래서 신의 섭리는 없거나 침묵하고 있는 듯이 비쳐진다. 섭리는 때로 묘하게 작용한다. A라는 죄에 대해 B라는 죄목으로 응징하기도 한다. 작가 이병주의 깨달음이다. 필화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경험한 그는 그것이 섭리였다고 말한다.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한 대목이다. “섭리란 묘한 작용을 한다. 갑의 죄에 대해서 을의 죄명을 씌워 처벌하는 것이다. 꼭 벌을 받아야만 마땅한 인간인데 적용할 법조문이 없을 때 섭리는 이러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격언 그대로 섭리의 맷돌은 서서히 갈되 가늘게 간다.” 그날이 올 것이다.

5.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는 '극즉반(極即反)'이라는 진리를 믿는다.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 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도 있다. '어떤 일이든 극에 달해야 반전이 생긴다'는 거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 정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정점에 달하면 스스로 드러난다고 믿지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 나는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하듯이,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믿고 기다릴 뿐이다. 오늘 공유하는 사진처럼, 동백이 피려면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졌다. 그러나 내일은 이길 것이다.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야 별이 보인다. 어둠이 짙어야 별을 볼 수 있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별이 또렷하게 보이고, 별이 보이면 날이 곧 밝아온다. 우리는 당장 전개되는 현상에 교만 해지거나 혹은 의문을 품고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기엔 하늘의 섭리가 있으니 겸손히 그 뜻을 물으며 기다려야 한다.

초조해 할 필요 없다.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초조한 사람은 문제의 진행을 충분히 지켜볼 수 없기에 어떤 대체물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려 한다. 다시 말하면,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 해진다. 파국을 막기 위한 조급한 행동이 파국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많은 지름길들, 금방 치료가 되고 금방 구원이 되고 금방 개선이 될 것으로 보이는 그런 많은 길들이 실상은 비극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우리의 초조함이 닦아 놓은 것들 인지도 모른다.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또한 인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에서 나오는 인문 정신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반응은 본능적인 행동을 뜻하고, 대응은 의식적인 행동을 뜻한다. 반응은 주로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상대방이나 상황에 내맡기는 수동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반면, 대응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에만 남긴다. 내 블로그는 여럿이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