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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제대로 된 정의는 타자로부터 시작 된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1월 #오세영 #공현절 #에피파니 #갈레트 #아보다

306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7일)

어제는 2025년 들어 처음으로 공식적인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세 가지 일로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 그래 어제 <인문 일지>를 오늘 공유한다. 사진은 <가톨릭평화신문>에서 가져왔다.

1.
지난 5일 주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 공현절(公現節, 공식적으로 나타난 날) 또는 <주님 공현 대 축일>은 예수의 출현을 축하하는 기독교의 교회 력 절기이다. 날짜는 전통적으로는 1월 6일이나, 나라에 따라서는 1월 2일부터 8일 사이의 주일(일요일)로 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1월 6일을 에피파니(L'Epiphanie) 또는 주현절(la Fête des Rois)이라 부르며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즉 세라믹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잠두(la fêve)를 미리 넣어 만든 갈레뜨(la galette)를 나누어 먹다가 그 잠두를 씹는 사람이 그 날의 왕이나 왕비가 된다. 왕(왕비)으로 뽑힌 사람은 금종이로 만들어진 왕관을 쓰고 왕비(또는 왕)를 선정하는데 이때 모두들 일어나 “대왕 만세, 왕비 만세”를 외치면서 샴페인을 터트린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줄 알았던 것이 눈앞에 다시 등장하는 신적인 현상인 ‘에피파니{epiphany)'다. '에피파니(현현, 顯現)'의 사전적 정의는 '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냄' 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보이지 않는 신이나 신비로운 것이 뚜렷하게 모습을 나타내다. 또는 모습이 나타나다'라는 뜻이다.

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제 6장을 보면,  "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이야기 나온다. 내 앞에 있는 컵은 컵이고 동시에 '나'가 될 수 있다. 서로 타자이다.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기면, 관계가 시작된다. 잡으라는 손잡이 때문이다. 손을 내미는 거다.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답은 서로의 것이라는 거다. 그러니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아니면 손잡이 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이건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는 거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며 타자를 받아들이는 거다. 나는 10년 전에 엄청 어려운 프랑스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존재 저 너머>>를 충북대 김연숙 교수와 번역해 책을 낸 적이 있다. 그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얼굴로 나타내는 현현(epiphany)에 의해 나에게 의무를 지운다"고 했다.  여기서도 '에피파니'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그걸 "현현"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의무에 따라 타자로 향한 정향성으로 말미암아 인간 간의 유대와 연대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제대로 된 정의는 타자로부터 시작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타자를 나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그가 있는 그대로 있게 하'는 것이다.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 했다. 특히 타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른다.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일례로 우리는 내가 아플 때 남이 그걸 아는 줄 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런데 그 아픔은 자기 아픔을 거기다 투영한 것 뿐이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쳐진 얇은 막 때문이다.

3.
'공현절'은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이다. 기쁜 마음으로 딸과 미사에 참여했다.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나도 주님을 메시아(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께 맞는 예물을 드릴 각오를 했다. 동방박사들이 바친 황금과 유향, 몰약은 각각의 의미는 이와 같다. '왕권', '그리스도의 신성',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각각 상징하는 예물이다. 현대 신학의 거장인 칼 라너 사제는 동방박사의 예물이 구세주 아기 예수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우리의 희생,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봤었다. 그래서 그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 '하늘에는 영광, 땅 위에는 평화, 나에게는 사랑'.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성탄과 희망을 되찾았으면 한다. 배철현 교수는 "희망이란 절망을 처절하게 경험한 인간들이 피워내는 불씨다. 희망이란 가치는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이상을 저버리지 않고 작동시키려는 엔진"이라고 말했다.

4.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춥고 배고픈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삶이 무의미하며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체념"(배철현)일 수 있다. 그래 우리는 지금 돈과 감각적 쾌락에 목을 맨다. 그리고 '아시비타'라는 말이 신조어로 나올 정도로 서로 사생결단으로 다툰다.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데 세월을 다 보낸다. 아기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지식인들처럼, 우리들은 "위안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그리고 상대방의 불행을 통해 스스로 정의를 실현 하기"(배철현)에 바쁘다. 아기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지식인들처럼, 우리들은 희망의 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발 아래의 땅만 쳐다보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 가고 있다. 배 교수의 글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희망의 별은 고개를 들고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찾으려는 소수에게 드러난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 별을 발견한 자를 동방박사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들판에서 양떼와 잠을 자던 목동들이라 했다.

5.
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양치기, 즉 목자가 하는 일이 인문운동가의 일이라 생각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양치기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인도해 초원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시냇가로 인도해 물을 먹이는 노동자이다."(배철현) 인문운동가도 마찬가지로 돈과 쾌락, 그리고 권력과 명예에 온 정신을 팔고 사는 주변 인들에게 인문정신을 갖도록 애쓰는 자이기 때문이다. 양치기든, 목동이든, 인문운동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유한 의무를 완수하는 자이다. 양치기는 양떼를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며, 양을 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자다."(배철현) 인문운동가도 다른 이를 나처럼 사랑하며, 함께 사람 답게 살자고 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6.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복음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우리가 상상하는 종교인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머나먼 외국 땅, 즉 변방에서 온  주변인이자 외국인과 종교인이 아니라 일상의 생계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보통 사람이었다. 마태복음은 동방박사가 그 별을 본 것으로 소개한다. 나는 그걸 '변방에 있으라'는 메시지로 읽는다. 중앙은 퇴행하게 마련이며, 변경에 있던 세력이 다시 중심부를 장악해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고 토인비는 말했다. 신영복 교수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변방인, 주변인을 강조했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 창조,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중심부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면, 변방에 있는 이들은 끊임없이 중심으로 가려고 변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방에 있다면 오히려 기회이다.

7.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동방박사는 페르시아에 거주하던 '빛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섬기는 사제인 마기(magi)들이었다고 한다. 마술사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magician이 이 단어에서 파생했다고 한다. 별을 움직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던 마기들은 밤하늘에 등장한 커다란 별을 보고, 별을 따라 '베들레헴'이라는 조그만 동네의 누추한 마구간까지 간다. 그리고 양치기들이 그 큰 별을 봤다. 그 큰 별을 이렇게 말했다. 이건 지금 우리들 에게도 희망이다. "두려워 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 분을 알아보는 표다." 그 분은 낮은 곳에서, 낮게 태어나셨다. 그를 찾아 경배하라고 한다.

8.
나는 언젠가 경배, 예배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아보다'라는 것을 배철현 교수에게서 배웠다. 배 교수에 의하면, 아보다(avodah)는 '노동'이면서 '예배, 미사'라고 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노동', 아니 자신이 하는 일이 신에 대한 경배로써 '예배'. 그래서 히브리어 '아보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서비스(service) 란다. '아보다'는 다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이웃이나 낯선 자를 위해 하는 일이나 노동(서비스)은 바로 신에게 하는 것과 같다. (2) 자신이 하는 일을, 신을 위해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삶의 원칙이 되기도 한다. (3) 서비스라는 말은 낯선 자를 신처럼 섬기라는 윤리적 명령이기도 하다. 일이 신에게 드리는 예배일 수 있으며, 이웃에게 봉사는 길이 되는 것이다.

9.
그 예언은 희망이다. 그 예언처럼 내 일상을 경배와 낯설고, 힘든 자에게 서비스하면, 나는 거기서 신을 만나고, 내 삶이 희망으로 변한다. 그래 배 교수는 "희망이란 고개를 높이 들고 밤하늘에서 자신만의 별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 했다. 그 별은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빛나는 별이다. 일상을 지배하며, 예수의 사랑을 온 사방에 퍼뜨리는 자에게 나타난다. "희망이란 가죽 먹이통 구유와 같이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흔한 것에서 발굴되는 보석"(배철현)이다. 이 말이 이해가 된다.

10.
오늘 아침 시는 오세영 시인의 <1월>을 택했다. "1월은/침묵으로 맞이하는/눈부신 함성'이다. 크로노스적 시간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는 것이지만, 카이로스적 시간은 나 자신의 철저한 의지, 개입 그리고 열정에 의해서만 가능한 시간이다. 크로노스적 시간의 흐름에 반전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달력을 만들고 첫 달을 모든 것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정월(正月)'이라 부른다. 서양에서는 1월을 '제뉴어리(January)라고 한다. 이 말은 과거와 미래, 전쟁과 평화, 끝과 시작 등 현실 세계의 다양한 두 축을 상징하는 의미의 두 얼굴을 담고 있는 야누스(Janus)라는 신의 이름을 담고 있다. 1월은 달력의 크로노스적 시간을 통해서 의미의 시간인 카이로스적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야누스적 시기이다.

1월/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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