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2월 31일)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더해진 청룡(靑龍)을 의미했던 갑진년 2024년의 마지막 날이다. 물론 음력으로 하면 아직 더 가야 한다. 갑진년의 갑(甲)이 지닌 동쪽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작을 상징하며, 청색은 푸르름으로 건강미 넘치게 새로이 시작하는 역동의 모습이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지닐 수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품고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질서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계묘년이기 때문에 갑진년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만 집착하면 향후 10년의 미래에 뒤처질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 올 한 해가 다산 다난했던 것일까?
그리고 진(辰)은 오행으로 '토'에 해당하며, 천간 목(木, 나무)의 기운인 갑(甲)의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되기도 하고, 갑(甲) 목(木) 입장에서는 진(辰) 토(土)를 경작하는 '소토(燒土)'의 의미도 지닌다. '소토'란 경작의 의미로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즉 유행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기반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꿈꾸어 보는 것이 2024년 갑진년 푸른 청룡의 해였다. 더불어 지난 것들을 털어버리고 소토하여 밭을 새롭게 갈아엎는 수고를 필요로 했다. 그래 12월에 비상 계엄으로 나라가 '소토'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일까? 좋게 해석하자. 그런 상황에서 아침에 윤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썩은' 정권을 청소하고, 새로운 2025년은 다시 시작하는 거다.
다가오는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이다. 을사는 60간지 중 42번째에 해당하는 순서로, ‘을’은 색상 중 ‘청색’을 의미하고, ‘사’는 동물 가운데 ‘뱀’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풀어서 해석하면 ‘푸른 뱀의 해’를 뜻하게 된다. 아래 12간지의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 천간 : 갑을(甲乙 - 청색-목-봄), 병정(丙丁 - 적색-화-여름), 무기(戊己 - 황색-토), 경신(庚辛 - 백색-금-가을), 임계(壬癸 - 흑색-수-겨울)
▪ 지지 :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 해자(돼지, 쥐-수-겨울), 축진미술(소, 용, 양, 개-토), 인묘(호랑이, 토끼-목-봄), 사오(뱀, 말-화-여름) 신유(원숭이, 닭-금),
동양에서는 매해 특정한 띠와 간지가 결합해 그 해의 특성을 점치곤 한다. 이는 ‘육십갑자’ 체계와 연관이 깊다. 육십갑자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해서 만든 60년 주기의 연도 표시 체계를 말한다. 하늘의 기운을 나타낸다는 10개의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을 나타낸다는 12개의 지지(地支)가 천간의 순서대로 12지신과 한 번씩 짝을 맺어 나가는 방식으로 총 60번의 간지가 채워진다.
위에서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하면, 을사년에서 ‘을(乙)’은 푸른색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양의 오행에서 ‘나무(木)’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생명력과 성장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뱀(巳)’은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동물이다. 이 둘이 합쳐진 을사년은 새로운 시작, 지혜로운 변혁, 성장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뱀은 12간지 동물 중에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무섭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뱀은 다양한 문화권과 문학 속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먼저 뱀은 겨울잠을 자고 봄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여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라는 ‘불사의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한 집안의 재물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뱀은 ‘논리의 신’ 혹은 ‘치유의 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 마크에서 뱀이 지팡이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뱀을 치유의 신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대 인도와 불교에서 뱀은 비와 땅을 관장하는 ‘풍요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뱀띠에 태어난 사람들은 활동적이고, 문무를 겸비해 머리가 명석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혜로운 동물 뱀을 닮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을사년과 관련된 단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을씨년스럽다’이다. 주로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말할 때 쓰인다. 이 말은 1905년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외교권이 박탈된 불평등 조약인 ‘을사늑약’이 맺어지면서 당시의 비통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일컫는 말로 ‘을사년스럽다’로 사용되다가 ‘을씨년스럽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을사년에 관한 또 다른 역사적 사건으로는 1545년 ‘을사사화’도 있었다. '을사사화'는 조선 중종 말기부터 인종의 외척인 대윤(윤임)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윤원형)이 세력 다툼을 벌인 끝에 소윤이 승리하면서 대윤이 모조리 숙청된 사화를 말한다.
이 밖에도 임진왜란의 공신인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도 1545년 을사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이 쓰일 만큼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던 해가 아니었나 싶다. 경제가 어려운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집안의 재물을 지켜준다’는 ‘뱀의 해’가 오히려 역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가오는 2025년에는 을사년의 징크스를 깨고 좋은 일들만 가득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푸른 뱀'의 해를 이야기 하다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이야기를 소환한다. 아폴론은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리스인들은 어두운 세계를 밝혀주는 이성의 힘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읽는 예언 능력이 수수께끼 같은 몸의 원리를 밝혀주고 치유하는 의술의 능력과 통한다고 믿었다. 그는 죽은 자도 되살리는 신통한 의술을 발휘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인들은,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가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다. 아폴론이 플레기아스 왕의 딸 코로니스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코로니스가 인간과 정을 통하자 이 사실을 아폴론의 새인 까마귀가 고자질했다. 격분한 아폴론이 쌍둥이 남매 아르테미스를 시켜서 코로니스를 활로 쏴 죽였다. 아폴론은 죽어가는 코로니스의 몸에서 아기를 끄집어냈다. 그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리고 불행한 소식을 전해준 흰 까마귀의 색깔을 바꿔버린다. 원래 하얀색이었던 까마귀가 이때부터 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과 처녀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 비밀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폴론은 애인 코로니스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른 사내의 아이로 착각하고 멀리서 활을 쏘아 코로니스를 죽였다. 아폴론이 뒤늦게 자기 아들인 것을 알고 달려갔을 때는, 코로니스의 육신이 화장터에서 까맣게 그을린 뒤였다. 아폴론은 헤르메스로 하여금 코로니스의 뱃속에 든 아기를 살려내게 하고는, 이 아기를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겨 의술을 가르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웠다. 그는 죽은 자를 살려낼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그러자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한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탄원하여 아스클레피오스를 벼락에 맞아 죽게 했다. 의술은 죽음과 삶 사이에 위치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용한 의술로 죽은 사람을 살렸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자신은 죽는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 신이 되었고, 불사의 신인데도 죽어야 했던 모순된 존재였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아스클레피오스가 지니고 있는 뱀이 감긴 지팡이는 오늘날에도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온 몸으로 대지의 정기를 받아들이며 지하(죽음)와 지상(삶)을 누비고 다니는 뱀의 치유력을 나타낸 것 같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의 제자는 아스클레피오스뿐만 아니라 이아손, 아킬레우스도 그의 제자이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에 한 마리의 뱀이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의학과 관련된 세계 여러 나라의 기구나 단체를 상징하는 휘장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정도였다. 어느 날 이미 숨이 끊어져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한숨의 쉬다가 기어가는 한 마리의 뱀을 보았다. 그는 가지고 잇던 지팡이로 뱀을 내리쳐 죽였다. 그러자 잠시 후 또 다른 한 마리의 뱀이 나타났다. 그 뱀은 이상한 풀을 물고 와서는 죽은 뱀의 입에 갖다 대자, 희한하게도 죽은 뱀이 다시 살아났다. 아스클레피오스가 그 풀을 죽은 사람의 입에 물려보았더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또 다른 뱀에 관한 이야기와 성서에 나온 뱀 이야기는 다음 <인문 일지>에서 계속해 볼 생각이다. 어쨌든 2025년이 오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상처 받은 무리 모두가 치유되고, 모든 소망들이 다 이루어지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일년 동안 <인문 일지>를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모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마음으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고 내년에도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기도 드린다.
한 해의 마지막인 이때를 표현하는 말로 '연말' 외에 '세밑' '세모'를 많이 쓴다. '세밑'은 해를 뜻하는 한자어 '세(歲)'와 순 우리말 '밑'이 결합한 형태다. '세모(歲暮)'는 해(歲)가 저문다(暮)는 뜻의 한자어다.
세모/엄원태
한 해가 저문다
파도 같은 날들이 철석이며 지나갔다.
지금 또 누가 남은 하루마저 밀어내고 있다.
가고픈 곳 가지 못하고
보고픈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생활이란 게 그렇다
다만,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그리움이 있다
막 돋아난 초저녁 별에 묻는다
왜 평화가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야
이윽고 오는지를…
지금은 세상 바람이 별에 가 닿는 시간
초승달 먼저 눈 떠,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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