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어떤 사연인지 잘 모르지만, 단체 카톡이 여러 개이다. 거의 다 허접 한 이야기이지만, 가끔씩 나의 영혼을 떨리게 하는 글들이 있다. 다음 문장이 그런 예이다. "덜 소유하고, 더 많이 존재하라."(스콧 니어링) "우리가 가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 짓는다." 이렇게 나는 카톡으로 늘 배운다. 그냥 읽고 지나가지 않고, 기록한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늘면서 SNS를 본 것들을 돌아서면 잊는다. 코로나-19로 시간이 많아 틈틈이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윤제의 <다산의 마지막 습관>이란 책을 조금식 정독 하며, 정리한다. 오늘 아침은 "나 또한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말을 화두로 삼고 사유를 해 본다.
다산 정약용은 "매일 나를 찾기 위해 매일 나를 비웠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사소한 일상을 위대하게 바꾸는 마지막 습관으로 그는 기본을 택했다. 습관은 어제들이 쌓이고 굳어져 내일이 되는 운명이다. 일상은 익숙함에 길들여져 나를 잊어버리곤 하는 미로이다. 공부는 일상에 갇히지 않도록 매일 새로워지는 습관이다. 기본은 나를 새롭게 채우기 위해 다시 돌아가야 하는 바탕이다. 나도 그처럼 이제부터 나를 닦고 실천하고, 내 본분을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 그래 매주 월요일마다 다산과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는 공부를 하고 그걸 공유하려 한다.
하루의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길을 잃었을 때, 나는 다음 문장을 되뇌인다. 제자 자공이 "군자는 어떠해야 합니까?" 묻자, 공자도 "먼저 실천하고 그 다음에 말하라(先行其言而後從之(선행기언이후종지), (<논어> '위정'편)"라고 말했다.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 어떤 가르침도 소용이 없으며, 군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예기> "곡례"편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습관으로 삶았다 한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속이지 않는 것을 보이며, 바른 방향을 향해 서며,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도록 가르친다" 가정에서 부모가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이에게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 가지 가르침은 구체적인 실례이다. 바로 보이는 것, 행동하는 것, 듣는 것이다.
(1) 먼저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말고, 속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는 말과 행동의 일관성에서 시작된다.
(2) 바른 방향을 향해 서다. 항상 바른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삶에서 바른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주관을 정립한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작은 이익과 빠른 결과만을 좇는 얕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3)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는다. 이 말은 많이 듣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른 자세로 듣는 것이다. 바른 자세로 듣는다는 것은 들은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왜곡해서 들어도 안 된다는 말이다. 폭넓게 배워야 하지만 올바른 뜻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너무 진지한 것 아닌가? 시를 한편 읽는다. 12월이 다 가기 전에 공유하고 싶은 시가 있다. 홍윤숙 시인의 <12월 ㅣ일>이다. 정말 2020년 12월도 정말 4일 밖에 안 남았다. 우리 고향 어른 나태주 시인의 딸 나민애 교수가 소개한 시이다. 다음과 같은 덧붙임과 함께.
“그런 멋진 일은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 거야. 이번 생은 글렀어.” 친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했다가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다음 생이라니. 인생에서 리셋이 가능할 리 없는데 우리는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게다가 다음 생이 온대도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원래 인생에는 찬란함보다 고난의 비율이 더 큰 법이다. 인생의 기쁨이 돌멩이처럼 흔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금처럼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12월, ‘다음 생’은 너무 멀고 ‘다음 해’는 가장 가까운 때다. 우리의 다음 해에도 아주 멋진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올해처럼 많은 고난과 적은 기쁨이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살고 싶고, 겪고 싶고, 기다리고 싶다. 어느 누구의 삶이라고 매 순간 즐거웠을까. 우리는 추위 속에서, 어둠 속에서, 빛 속에서 한결같이 살아 있고 살아간다.
이게 12월의 마음이다. 아름답지도 않을 다음 해를 착실하게, 끈질기게 생각하고 기다리는 마음의 달. 그래서 홍윤숙의 <12월 1일>을 소개한다. 이 시에는 따뜻함이나 환희는 없다. 시인에게 지난 한 해는 안개, 바람, 북풍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삶의 민낯은 생각보다 척박하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즐겁지 않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못난 자식이 그렇게 애틋하고 소중할 수 없다. 12월에 기다리는 다음 해도 그렇다. 기쁨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의 내년은 이미 소중하다." 우리에게 2020년은 버려진 시간이었지만, 2021년이 또 오니 소중하다. Spera! 우리는 희망한다. 희망을 한 글자로 하면 '꿈'이고, 두 글자로 하면 '희망', 세 글자로 하면 '가능성', 네 글자로 하면 '할 수 있다'이다.
12월 1일/혼윤숙(1925-2015)
한 시대 지나간 계절은
모두 안개와 바람
한 발의 총성처럼 사라져간
생애의 다리 건너
지금은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추억과 북풍으로 빗장 찌르고
안으로 못을 박는 결별의 시간
이따금 하늘엔
성자의 유언 같은 눈발 날리고
늦은 날 눈발 속을
걸어와 후득후득 문 두드리는
두드리며 사시나무 가지 끝에 바람 윙윙 우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영혼 돌아오는 소리
이어지는 다산 정약용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로 옮기낟.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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