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건너 가기'는 개인과 사회의 책임이 동시에 있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난 금요일 새통사에서 서보광 교수님의 매우 좋은 강의와 이순석 부장의 그보다 더 잘 정리 한 강의 후기를 읽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여러 사유들을 정리하였다. 그걸 네 번에 걸쳐 공유하고 있는데, 오늘이 그 네 번째이다. (4)

4. '건너 가기'는 개인과 사회의 책임이 동시에 있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주어야 한다', '내게 문제가 있지만 정부를 찾아가면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이다', '나는 집이 없다. 정부가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식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에 전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누구예요?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들이 있는 것뿐입니다. 정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합니다. 스스로를 돕고 이웃을 돕는 것은 여러분들의 의무입니다. 삶이란 것은 주고 받는 거예요. 주는 것 없이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대처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원래 자본주의는 실업과 불평등을 필연적으로 낳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는 5-8%의 실업을 내장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실업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상당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비용, 대가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실업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로 사회의 문제이다. 실업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돌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것이 사회적 시장 경제의 기본철학이다.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주고, 재교육 프로그램을 돌리고, 이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하는 것까지 정부의 책임 영역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로지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외친다. 사회적 정의와 인간적 존엄을 외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개인들을 무한 경쟁의 정글로 몰아치기만 한다.

김누리 교수는 이를  '야수 자본주의'라 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놓아두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가 된다'의 의미이다. 1970년 독일 총리였던 헬무트 슈미트는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야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에서 인간을 잡아 먹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 정치의 책무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 세기동안 보면, 시회주의적 경제 체제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더 효율적인 체제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겼다. 특히 자본주의 효율성 경쟁에서 승리를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효율적인 체제임을 분명한데, 인간을 잡아 먹는 야수적 속성을 지녔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시장 경제의 '효율성''은 활용하되, '야수성'은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말은 공산주의가 아니고, 국가가 나서서 야수들에게 재갈도 물리고 고삐도 채워 컨트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야수가 인간을 잡아먹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이 야수같은 사회에서,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를 소개하고 있는 채상우 시인의 말처럼,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거짓말을 자꾸 지어내고 지어내서, 자기가 만든 거짓말에 푸욱 빠져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처럼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정말이지 "목 놓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떼를 써 가면서 울고 싶고 큰소리로 엉엉 울고 싶은데 그러면 어김없이 경비실에서 전화가 온다. 그렇다고 다 큰 어른이 놀이터에서 울 수도 없고. 그래서 여기서 운다.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처럼 운다. 약속한다. 딱 한 시간만 울고 "뚝" 그칠 것이다. 그리고 좀 "쑥스"러운 얼굴로 "제자리로 돌아"갈 테다. 그러니까 꼭 그럴 테니까, "아줌마, 10분만 더 울면 안 돼요?"

나는 노래방이 아닌 내가 울고 싶은 공간이 있다. 거기서 색소폰도 부르고, 내가 배운 성악 아리아를 내 방식대로 크게 부른다. 그러면 마음이 풀린다. 오늘 아침은 흥미로운 시를 공유한다. 사진은 광어 두마리가 한 횟집의 어항에서 울고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코로나-19로 10시 까지만 복합와인문화공방 <뱅샾62>을 열으라 하니, 손님이 없다. 그런데 주변에서 와인을 막 사 주신다. 어제는 옛날에 함께 와인 공부했던 서진미님이 멀리서 찾아왔고, 고춘숙 화백 친척까지 찾아 와 힘내라고 와인을 많이 사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함박사까지 와서 와인을 사갔다. 감사하다. 삶은 관계이다. 나도 주변에 많이 베풀 생각이다.

파리, 텍사스/김남호

울고 싶으면 저 방으로 올라가지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오르다 보면
할 말이 없어지고
눈이 매워지고
우리는 서둘러 거짓말을 하지

거짓말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울게 돼

이건 거짓말이야, 이건 거짓말이야
진짜 거짓말이야 하면서도
거짓말처럼 울게 돼

탬버린을 흔들면서 고개를 저으면서
다리 하나를 까닥거리면서
울게 돼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하면서 울게 돼

울음이 뚝 그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고
우리는 갑자기 쑥스러워지고
아줌마, 10분만 더 울면 안 돼요?

그러면 우리는 추가로 10분 동안
또 목 놓아 울지

이어지는 나의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김남호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