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코로나 전염병으로 잃어버린 계절이었는데, 어김 없이 가을이 찾아 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내리는 이 비는 계절이 가을로 가는 길을 더 재촉할 거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여름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가을비에 나뭇잎 보내고, 잎 떨어진 벌거벗은 나무에 겨울비 내릴 거다.
오늘은 토요일 아침이다. 약속대로 와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와인을 잘 즐기려면, 한 번 좋아하는 와인을 만나면, 이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해야 한다.
- 와인제조업자,
- 포도품종,
- 재배지역,
- 블랜딩 비율
- 그리고 배경까지.
좋은 와인이란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맛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와인을 포함한 좋은 음료를 마셔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감각이란 것이 우리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몇일 전에 말했던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는 서구 문명의 문제 중 하나를 미각, 후각, 촉각 같은 '근접감각'보다 시각, 청각 같은 '원격감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와인을 마시는 일은 '근접감각'을 키우는 일이다.
인간은 다양한 감각 언어를 사용하고 소통하고 그 중에서도 촉감은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인간이 서로를 바라보고 느끼게 하거나, 맛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마시는 등을 통해 우리의 경험세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 디지털 대면이라는 환경은 우리가 오감을 통해 경험했던 세계를 축소하고, 시각과 청각이라는 원격감각에 점점 더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 TV나 스마트폰의 가상공간에만 머물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앞에서 말한 원격감각이 폭력에 대한 반응을 둔화 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성폭력이 확산일로를 거쳤던 이유 중 하나는 화면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각과 청각만으로는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청각만 사용하면, 우리의 오감각이 퇴화한다.
오늘로 화이트와인 이야기는 마치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두 개의 화이트 와인을 공유하려 한다. 하나는 프랑스 알자스 지역과 최근에는 뉴질랜드도 선보이고 있는 게브르츠트라미너 품종 와인이고, 두 번째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의 쏘떼른느 지역에서 나오는 귀부와인이다. 이 귀부와인 이야기는 다음 주에 자세하게 공유할 생각이다.
언제나 처럼, 우선 시를 한 편 공유한다. 이 가을을 위해 몇 일 전 시집 한 권을 샀다.『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란 제목으로 내가 좋아하는 여성 시인 다섯 분의 주옥 같은 시들이 묶여 있는 시집이다. 천양희, 신달자, 문정희, 강은교, 나희덕 시인의 시들이다. 오늘부터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을 함께 읽을 생각이다.
참 좋은 말/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내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 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 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시인은 참, 좋은 말을 찾아 내는 광부이다. 와인 이야기로 되돌아 온다. 내 주변에는 와인을 즐기는 데에 까다로운 지식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와인의 마시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하늘의 별 수 만큼 많은 종류의 와인들 앞에서 내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와인의 고향인 떼루아, 포도품종, 양조 기법, 빈티지 등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 잔의 와인은 시(詩)이기도 하다. 그 한 잔 속에 예술(藝術)이 들어있다. 따라서 와인을 즐기려면 우리도 지성과 취향이 필요하다. 특히 취향은 예술적 자질과 교양에서 나온다.
와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와인 속에는 이야기할 주제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와인을 잘 즐기려면 와인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첨가되어야 한다. 한 잔의 와인 속에 멀리 두고 온, 와인 고향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숲, 땅, 하늘 그리고 자기를 태어나게 보살펴 준 사람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포도재배에서 병입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와인메이커'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과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사진의 왼쪽에 있는 파란 색 와인 병의 라벨을 잘 보면, GEWURZTRAMINER 가 보인다. 이게 이 와인의 포도품종이라는 말이다. '게브르츠트라미너'라고 읽는다. 이름이 어렵다. 그래 그냥 '게'로 시작하는 것을 말하면 와인 소믈리에들은 다 알아듣는다. 다시 이 포도품종에 대해 알아본다. 게브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포도품종의 별명은 내가 '향기로운 꽃밭'이라고 붙였다. 독일어로 게부르츠는 ‘향신료’라는 뜻이다.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코르크를 열자 마자 마치 꽃밭에 온 것처럼 꽃향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특한 꽃향기와 알싸한 향미로 잘 알려진 포도품종이다. 드라이 와인부터 스위트 와인까지 만들 수 있는 다재 다능한 것 또한 이 품종의 특징이다. 이 가운데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와인이 가장 유명하다. 풍미가 강해서 양념이 많은 우리나라 음식들과 잘 어울린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우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와인을 원하시면 문자 메시지를 남기시면 된다. 그럼 보내 드릴 수 있다. 원래 글쓰는 작가이지만, 밥벌이로는 <와인 샵 & 바>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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