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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명(明)


밝을 ‘명’자라고 한다. ‘밝다’의 반대는 ‘어둡다’이다.

명자를 풀이하면, 달과 해가 공존하는 것이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을 우리는 흔히 ‘안다’고 하며, 그 때 사용하는 한자어가 지(知)이다. 안다고 하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평생을 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외치다 죽은 이유를 난 알겠다.

명자는 그런 기준을 세우고, 구획되고 구분된 ‘앎(지)’를 뛰어 넘어, 두 개의 대립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명확하지 않은 경계에 서거나 머무는 일이다.

명자를 <도덕경> 제22장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불자견고명 不自見故明
불자시고창 不自是故彰
불자벌고유공 不自伐故有功
불자긍고장 不自矜故長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니 밝고, 즉 명이고, 스스로 옳다 하지 않으니 빛난다. 세계와 다른 사람을 자기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야 ‘명’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자기를 뽐내며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공이 있게 되고, 자기를 내세우지(자만하지) 않으니 으뜸(리더)이 된다.

제33장에서 또 명에 대해 설명한다.

지인자지, 자지자명 知人者智 自知者明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명)하다(밝음이다).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勝人者有力, 自勝自强
타인을 이기는 자는 힘이 센데 불과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자라야 진정한 강자이다.

이 두 문장을 읽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알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나는 나를 되돌아 본다는 것이 구심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원심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서야 자신을 깊이 되돌아 보는 묵상이 더 주요한 이유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