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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약속대로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곳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펼치면, 제일 먼저 두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유역에서 수메르 문명이 기원전 4000년에 출현한다. 그리고 도시가 탄생하며, 우르크, 우르 등이 건설된다. 기원전 2300년에는 아카드 족이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1000년 후인 기원전 1300년에 히타이트 제국이 성장하여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전쟁을 한 기록이 있다. 이 히타이트 제국은 바로 사라진다. 다시 아시리아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다가, 이어서 바빌로니아 제국이 부흥한다. 이때 우리가 잘 아는 바벨탑이 건설된다. 그리고 기원전 500년에 페르시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여 오랫동안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다가, 기원전 300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페르시아 정복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이어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미술로 기억할 만한 것을 양정무 교수는 다음 6가지를 꼽는다.

▪ 와르카 병: 우르크 지역에서 발견된 화병으로 도시의 수호신 이난나 여신에게 바친 제물로 추정된다. 우르크의 현대식 발음을 따서 와르카 병이라 한다. 설화석고라는 일종의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대략 1미터 안팎이고 폭은 36cm로 추정한다. 아마 신전에 바쳤던 그릇, 이집트로 치면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와 견줄 수 있다. 도상의 내용을 보면, 그릇 표면의 부조가 세 단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에 서로 다른 내용이 그려져 있다. 초기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맨 위 탄의 중앙에 있는 인물은 이난나 여신이다. 일찍부터 수직적인 권력관계가 엄격하게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아래쪽부터 식물, 동물, 백성, 권력자, 신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새겨져 있다. 와르카 병은 원래 한 쌍으로 제작되어 신에게 봉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남아 있지 않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약탈되었는데, 2003년 4월 되찾는다. 많이 훼손된 채로.

▪ 우르의 군기: 우르 왕족의 무덤에서 발견된 이 작품은 양면에 전쟁과 평화시의 생활상이 새겨져 있다. 풍요로운 현실을 바탕으로 영원한 내세를 꿈꾼 이집트 사람들의 작품에서 여유와 낙관주의 드러났다면,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에는 냉혹하고 잔인한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자연과도 이웃 도시들과 끝없이 싸워야 했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미술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집트 사람들이 현세의 평안을 사후에도 이어가고 싶어했던 내세주의 자였다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현세주의자였다. 내세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울 만큼 현실이 냉엄했기 때문이다. 미술의 성격도 그들의 생존 방식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술을 통해 힘과 권위를 시각화해서 경쟁자를 제압하고자 했다고 본다.

▪ 나람신 전승비: 아카드 제국의 나람신 왕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새겨진 비석으로 용맹한 왕의 모습이 특징적이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데, 이 전승비를 보면, 적들을 밟고 서있는 위풍당당한 나람신 왕의 모습과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적군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높이 2미터, 폭 1미터이다. 나람신은 사라곤 왕의 손자뻘 되는 아카드의 왕이다. 산악 지역의 이민족을 정벌하고 그 업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이 비석을 새겼다고 본다. 산악 민족과의 싸움을 기념한 것인 만큼 왕과 아카드 군대가 산을 오르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람신 전승비 상단에 서 있는 나람신 왕의 손에는 화살을 들고 머리에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런 투구는 보통 신이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전승비의 표현이 오만하다고 보았다. 그래 이런 전설이 있었다. 나람신이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를 높이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아카드 왕조가 일찍 멸망했다.

너무 길어져 함무라비 법비, 라마수 조각상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만국의 문 이야기는 내일 아침으로 미룬다. 특히 페르시아에 대해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파리에서 유학하며, 루브르 박물관을 자주 갔지만,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미술이 있는 곳은 가지 안 했다. 그만큼 나의 관심의 폭이 좁았던 것이다. 후회한다. 300명의 그리스 스파르타 군인이 페르시아 백만 대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인 영화 <300>을 보면서, 서양인들이 페르시아를 인식해온 방식에 생각을 당했음을 이번 강의에서 깨달었다. 영화만 보고 오해를 할 뻔 했다.

이번에 원시 미술, 이집트 미술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미술을 공부하며 얻은 생각이다. 외국어를 배우면 새로운 세상 하나를 더 읽어낼 수 있게 되듯, 미술 언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문자 언어 이상의 풍성하고 생생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도 하나의 언어이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은 미술이라는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다. 이 미술언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던 세계를 조금 더 자세하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역사적, 정신적 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양정무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이 미술 이야기는 "내 지식의 깊이라기보다는 관심의 폭에 기댄 결과물이다." 양 교수의 책을 읽으며, 얻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제는 익산의 도시 재생 문화거리, 전주의 팔복 예술촌 그리고 삼례 문화예술촌을 대전 원도심 예술인들과 함께 다녀왔다. 많은 영감과 부러움을 갖고 왔다. "욕심을 털어 버리고/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그래도 1할은 된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12월/박재삼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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