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2월 4일)
정치판이 나라를 '후지게' 끌고 간다. 지난 주와 어제 동네 구 의회 행정감사를 방청했다. 거기서 만난 의원은 나를 한 명의 '신성한' 구민으로 보지 않고, 사람이 아닌 '표'로 보았다.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몇 명의 의원들은 어디서 오셨냐고 묻더니 자신들의 지역구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오늘 아침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말했다. "30%의 국민 마음만 얻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크다. 다수의 국민들은 등진 채 지지층 표심만 얻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극한 대결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그의 말처럼, "3치"가 사라졌다. 지금 한국 정치는 "협치와 자치,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는 '21대 국회'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21대 국회는 '3치'가 고장 난 시간이었다. 대화하고 타협하는 '협치', 삼권분립이 바로 서는 '자치', 민생 우선의 '가치'. 진정한 정치가 실종된 국회로 평가받을 거라는 걱정이 크다." 또한 "30%의 정치가 문제다. 현실에서 국민 중 40%가 투표를 안 한다 치면, 전체 국민 중 30%의 마음만 얻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결국 70%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셈법정치'가 한국 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50% 이상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선은 물론 정치문화나 여야관계 개선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없다.
"3치"의 실종은 '어리숙한데, 아집만 가득한' 굥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네 생각도 그렇다. "왜 대통령이 원내 1당 대표를 안 만나나. 백 번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어차피 정부를 안 도와 준다'는 게 일국의 최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생각인가. 대통령 참모들이 이를 설득해야 한다. 집권여당도 실력과 포용성을 갖고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전 정권 지우기, 야당 때려잡기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그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누적되어 가고 있다. 시급하다.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급하다.
-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 초 저출생,
- 심해지는 사회의 양극화,
- 지방소멸 문제
대전환기이다. 이젠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게 아니다.
겨울 나무/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되어 어지럽다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 특히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건을 보면, 우리 사회를 '소위' 이끈다는 리더들이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고 본다. 김월회 교수는 그걸 “존이불론(存而不論)”이라는 말로 잘 설명을 했다.
'존이불론'이란 '멀쩡히 존재함에도 그에 대하여 거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엄연히 존재하는 그것이 현실 속에선 없는 것이 된다. ‘사회적 유령’ 만들기라고나 할까? 가상 세계에 있는 것과 같다. 이 '존이불론'은 아Q의 ‘정신승리법’과 끈이 연결되어 있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문호 루쉰은 대표작 <<아Q정전>>에서 주인공 아Q의 '위대한' 정신승리법을 펼쳐냈다.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아Q는 노인인 자신에게 돌팔매질을 해대는 동네 아이들을 정신승리법으로 인간 아닌 것들로 삭제해버린다. 인간이라면 노인에게 돌을 던지며 유쾌해할 리 없으니 자신에게 돌 던진 아이들이 인간일 리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고는 인간도 아닌 것들에게 돌 맞았다고 화내는 건 온당치 않다며 툴툴 털고 일어난다. 루쉰은 근대에 들어서도 쌩쌩하게 살아남은 '존이불론'을 아Q의 정신승리법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과거의 '존이불론'은 이런 식이었다. 국가에 커다란 환란이 있어도 조정의 신하들은 이를 임금 앞에서 일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사회 속 현실에선 한창 벌어지고 있는 환란이 군주의 현실 속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누군가 입바른 소리를 하면 아예 그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살아 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치부한다.
때로는 이를 뒤집어 현실 호도의 쏠쏠한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존이불론'을 뒤집으면, 그러니까 없는 사실도 작정하고 거론하면 있는 사실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만 그러했음도 아니다. 정치인 등 공인의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만 봐도 그러하다. 연일 대서특필하며 몰아가면 없는 죄도 있게 되고 작은 죄는 큰 죄가 된다. 반면 큰 죄라도 작심하고 다루지 않으면 작은 죄로 치부되거나 없던 죄로 둔갑한다.
사실 개인 차원에서는 '존이불론의 태도'가, '아Q의 정신승리법'이 요긴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국가 간 이해득실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국제무대에선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이는 돌팔매질한 아이들조차 익히 알 수 있다.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님은 궁궐에선 멋지게 차려 입었다고 여겨질 수 있어도 그 바깥에선 그저 천둥벌거숭이일 따름이다. 이는 돌 맞은 아Q라도 익히 알 수준이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김월회 교수의 글에서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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