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지는 해를 즐기는 법 (2)
(2022년 11월 11일)
어제 만난 인생의 현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노인과 노화에 대한 관념, 70대 이후의 사람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었다. 어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 한다. 수많은 노인들로부터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만한 두 가지 지혜를 얻었다 했다.
1. 인생의 현자들 중 대다수가 노년의 삶에 대해 '평온함', 존재의 가벼움',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 등 긍정적인 말로 표현했다. 저자가 만난 92세의 할머니는 노인이 된 후 상실의 아픔은 있었지만 완전한 포용, 소소한 것들에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그냥 단순히 어른이 아니라, 노인이 되고 보니 모든 것들이 더욱 명확해지더군. 내 딸한테 말했어. 내 삶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이야. 나도 내가 왜 지금이 더 행복한지를 줄곧 생각했지.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우선, 젊어서는 그토록 중요했던 일들이 이젠 그리 대단치 않아졌어. 그리고 늘 지고 살아온 책임감도 더 이상 느낄 필요가 없고, 난 책임감이 꽤 강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책임질 일이 별로 없지. 애들이 이제 자기 삶을 알아서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 애들이 무얼 하든지 다 자신들의 삶을 잘 이끌어 나갈 거라는 뜻이지. (…) 나이를 먹으니 누군가를 잘 대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자유롭더라고. 오히려 방문객들이 나늘 챙겨주지. 아주 홀가분해.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만족감이랄까. 내 나이 또래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말하더라고."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삶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기회와 만족을 주는 시기라는 거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라 했다.
2. 두 번째 지혜는 나이 드는 것을 하나의 탐험으로 여긴다는 거다. 그들에게 나이 먹는 것은 미지의 영역이며, 출세와 양육, 책임이라고 하는 분명한 삶의 지도가 있던 중년과는 달리 지도조차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거다. 인생의 현자들에게 나이 듦은 쇠락의 시간이 아니라 모험이었다고 했다. 몇몇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 보자.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에 이런 구절이 있지. '가자, 친구여, 새 세계를 찾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네.' 이 구절은 내 삶의 주문이야. 이 말은 100세가 된 사람한테도 해당하는 말이야."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살아보니, 나이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이전에는 없던 기회들이 생기더라고. 그리고 각 고개마다 다른 기쁨이 있어. 사람들은 나이 드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 해. 걱정하지 마. 나이 드는 건 모험과 같으니까." "젊었을 때보다 은퇴 후 훨씬 다양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것도 아주 즐겁게 말이야. 무엇이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먄 정말 즐겁지 않겠나. 그런 면에서는 경험이나 지적 호기심도 충분치 않고 아직 배운 것도 많지 않은 20대보다는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훨씬 유리하지. 살면서 얻은 지혜의 조각들을 한 데 모아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내놓는 것도 지금 내 삶의 일부라네. 역사협회나 다른 기관들과 함께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지. 이렇게 신나게 산 것이 한 10년쯤 됐나. 20년 전에는 이용하지 못했던 구슬들도 이 나이가 되면 뀅서 보배로 만들 수 있다네."
"[나이] 고개마다 다른 기쁨이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젊어서 나이 드는 걱정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거다. 나이 드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일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올 초 3월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부산일보>의 김효정 기자로 부터 '중위 연령'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한 나라의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을 말한다. 인구학에서 인구 전체의 평균연령보다 중위연령을 더 의미 있게 따지는 것은, 실제 연령의 대표 값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대한민국의 중위연령은 남자 43.6세, 여자 46.5세로 평균 45세이다. 다른 말로, 대한민국의 실제 평균 나이가 45세인 셈이다.

위 도표에는 나오지 않지만,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의 중위연령은 31.8세로 인구 구조학에서는 황금기로 불렸다. 노동 가능 인구가 71.7%로 높았고 그에 비해 부양인구 비율은 낮아 한 세기에 한 번 오기 힘든 성장기회라는 말도 들었다. 32세의 젊은 대한민국은 변화와 혁신에 빠르게 적응했고,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 발전을 만들어 냈다는 거다. 그러나 2030년이면 대한민국의 중위연령은 49.8세 즉 50세에 접어들 예정이라 한다. 태어나서 50년은 살아야 어느 정도 사회에서 중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리부터 팍팍한 삶의 여정이 예약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중위연령이 높아지면 혁신과 유연성, 생산성의 하락이 따라온다는 건 여러 연구를 통해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그리 밝지만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들이 늙어 가는 대한민국에 맞는 청사진과 전략을 서둘러 고민하고 제시해야 한다. 고령화 위기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다. 새로운 정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참고로 일본은 이미 1992년 중위연령이 38.5세에 접어들었고, 현재 일본은 중위연령이 50세에 육박한다. 그런 이유로 일본은 아무래도 변화에 대한 적응과 탄력이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다른 통계를 본다. 대한민국 생명표를 살펴보면, 1960년 52.4세이던 평균 수명이 2000년엔 75.9세로, 40년 사이에 무려 23.5세가 늘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평균 수명이 1년에 반 살 정도 씩 늘어난다. 이를 토대로 ‘21세기 삶의 공식: 30+30+30’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부모 보호 아래 30년 살다가, 부모 노릇 하며 30년을 살고, 환갑 이후는 자투리 인생, 즉 여생(餘生)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환갑 후 30년을 더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년 이 지난 현재는 21세기 삶의 공식을 ‘30+30+40’으로 바꿔야한다고 하는 이가 많다. 정말 장수 시대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미리미리 노후 준비를 해 두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오종남 교수가 다음과 같이 4 가지로 정리해 답을 주었다. 그걸 오늘 아침 공유한다. 나도 잘 준비할 생각이다.
(1) 기대수명 못지않게 건강수명이 중요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식, 돈, 명예, 권력도 건강이 뒷받침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근력을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암이나 고혈압 등으로 인한 고통도 크지만, 근육 감소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함 또한 문제다. 음주와 흡연 등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 잡아 성인병을 예방할 일이다. 습정양졸((習靜養拙, 고요함을 익히고 고졸함을 기른다)의 삶과 명상을 통한 하루하루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2)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말했듯이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나면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행복이란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따라 그 수준이 정해진다. 그러므로 바라는 바를 낮추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남과 나누고 배려하는 삶이 진정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3) 배우는 기쁨 또한 중요하다. 급변하는 세상에 배우지 않고 서는 쫓아가기도 힘들거나 와 설사 생활에 꼭 도움이 안 된다 해도 배움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4)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정도는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돈 버는 일과 불리는 일 양쪽 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식 보험이 유효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식에게 ‘올인'할 것이 아니라 절반 정도는 노후를 위해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진정한 자식 사랑은 노후에 자식에게 부담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른 만큼 각자 처한 상황에 맞추어 준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삶의 나이/박노해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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