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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무엇보다도 우선 어린 아이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30일)

아침이나 오후에 맨발 걷기를 할 때, 유튜브를 듣는다. 거기서 만난 책이다. 우승희의 <<어른들의 새벽>>이란 책이다. 부제가 <나를 깨우는 하루 한 문장 50일 고전 읽기>이다. 그래 나도 이 책을 따라가며 50일 동안 저자가 제시하는 문장을 나의 <인문 일지>에서 공유하기로 했다. 오늘의 한 마디는 <<관자>>의 글부터 시작한다. "겉모습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덕이 오지 않고, 마음 속에 정성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마음에 정성을 가지려면 일상을 지배하는 습관으로 꾸준함을 유지하며, 성실성을 잃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우승희 저자는 새벽 시간을 자기 것으로 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녀는 새벽 시간을 땅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소나무로 비유를 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본다. "새벽이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는 소나무라면, 낮 시간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부평초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낮은 순식간에 내 시간을 빼앗아 가지만, 새벽은 계절의 변화에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소나무처럼 의지만 있으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새벽 시간을 적극 활용한다. 새벽은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고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 우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다. 내가 정한 일을 새벽에 모두 끝내지 않으면 오늘 다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논어>>의 한 구절을 또 소개했다. "꾸밈이 바로 바탕이고, 바탕이 바로 꾸밈이다. 호랑이와 표범의 털 없는 가죽은, 개와 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다." 호랑이처럼 힘이 세도 호랑이의 무늬를 가지지 않으면 호랑이가 아니고, 표범처럼 사나워도 표범의 무늬가 없으면 표범이라고 할 수 없다. 호랑이는 호랑이의 무늬로 호랑이라는 것을 알리지, 스스로 호랑이라고 말해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도 꾸밈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꾸밈을 '배치'로 이해하였다. 내 삶을 꾸미는 '일상의 배치'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새벽에 일어나, 내 시간을 갖는 배치는 나를 꾸미는 좋은 바탕이 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부지런한 사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며, 마음에 근육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부지런함과 꾸준함을 꾸미는 일은 언제나 스스로를 흡족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마음은 같지 않다. 하루가 바로 서고, 마음이 바로서는 느낌이 들면 하고 싶지 않았던 일, 미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받아들이기 더 쉬워진다.

그리고 <<여씨춘추>>의 "치밀하고 투철하게 익히면 귀신이 장차 일러준다"는 말을 소개했다. 이는 노력하면 진짜로 귀신이 알려준다는 뜻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새벽은 "삶에 들이는 정성"이였다고 한다. 그 정성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었고, 하고자 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거다. 새벽은 저자에게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그 시간의 바탕 위에서 정성 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흘려 보내는 삶 속에서 오롯이 나 만을 위한 시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새벽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나 만을 위한 미세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50일간, 나는 그녀의 성찰을 공유할 생각이다.

요즈음은 정말이지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이 무게로 느껴진다. 어제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할로윈을 앞두고 최소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형 압사 참사가 났다. 이날 벌어진 사고로 거의 150여 명의 10~20대 젊은이들이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라 한참 넋이 나갔다. 뉴-노멀 시대에 정부가 방향을 못 잡고, '알량한' 권력 지키기에 급급하다 보니, 연일 사건 사고가 줄을 잇는다.


무엇보다도 우선 어린 아이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아침에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의학, 금융, 정보통신, 자동차 등 많은 분야에서 발생하기 힘든 ‘만약'의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그것을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방법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확인하는 과정이 부족하면 반대로 해당 제품의 사용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치가 희망을 주기보다, 스트레스이다.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다. 권력의 창출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아무나 정치를 하기 때문에, 뉴-노멀 시대에 사회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나라 자체가 휘청거린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만이 앞선다. 한 노교수가 했다는 말, '탄핵보다는 퇴진 권고"가 바람직하지만, 그게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그것도 성찰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가능하다. 퇴진하기 싫으면 남의 말을 들어야 한다. 큰 그림의 철학 없는 깨알 같은 지식으로 정치의 정자도 모르면 공부해야 한다.

“헌정사 관행이 무너졌다.”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외면한 야당에 책임 묻기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정치를 실종 시킨 그 자신이다. 정치 불신으로 정치에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정치 없는 통치’, 곧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와 검찰 통치가 나라를 어지럽힌다. "정치는 상호 공감과 인정이다. 통치는 일방적 관찰과 감독이다."(박구용) 무엇이 먼저일까?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주체다. 서로 갈등하는 주체와 주체가 만나서 교통하고 소통하며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이 정치다.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에 선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제1의 정치 덕목은 공감이다.

통치자의 덕목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다. 예컨대, 사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은 통치하고 싶어 하는 리더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 때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면 안 된다. 나아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정의감을 가져야한다. 여기까지가 통치자, 혹은 관리자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통치 덕목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위험하다. 통치자는 그가 품은 뜻이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야당을 포함한 국민 전체를 통치의 대상으로 치부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화 시키는 거다. 대상화는 대체로 부정적인 말이다. 옛 철학자 칸트는 다른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것을 대상화로 규정했다.

우리의 헌정질서는 모든 국민을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한다. 주권자의 인격은 어떤 경우에도 대상화될 수 없다. ‘정치 없는 통치’가 헌정질서와 충돌하는 이유다. 더구나 대상화는 타인만 사물화하는 것이 아니다. 미학자 루카치에 따르면, 사물화는 처음에는 사물을 돈으로만 보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조차 진열된 상품으로 만든다. "대상화의 종점에서 팔리지도 않는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지금 돌아서야 한다. 통치에서 정치로."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박구용 교수의 통찰이다. 아침에 그로부터 중요한 답을 찾았다. 퇴진하기 싫으면, 통치에서 정치로 돌아서라.

깊어 가는 가을에 가을 시를 공유하며 위로를 삼는다. 오늘 아침 사진의 가을 엽서는 맨발 걷기를 하다가 만난 거다. 그래도 우리 끼리는 낮은 곳에서 사랑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가을 엽서/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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