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18일)
오늘 아침도 어제에 이어,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일곱 번째 rule(규칙)인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은 동네에서 말 그대로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한 리빙랩(living lab)'을 시도하기 위해 새벽에 나가야 한다. 그래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너무 일찍 일어났다. 몇일 전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노동하는' 희생을 실천해 볼 생각이다.
어제는 그리스도가 사막에서 사탄을 만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책임을 개인적으로 떠안기로 결심한 존재로 그려진다. 어제 살펴 본 첫 번째 유혹에 실패하자 사탄은 "예수를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를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사탄의 말처럼, 하느님이 모습을 드러내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악의 손아귀에서 구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사람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문학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니(Deus ex machina)'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기계 장치에서 나온 신'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고대 문학 혹은 연국에서 주인공이 곤경에 빠졌을 때 복선 없이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 요소를 말한다. 이 '기계 장치에서 나온 신'은 자주성과 용기, 운명과 자유 의지, 책임 의식을 조롱하는 장치일 뿐이다. 하느님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무조건 지켜주는 구조대원도 아니고, 경솔하게 요망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도 아니다. 하느님은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라는 대답으로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을 물리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에게 존재를 입증해 보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하느님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고, 육체의 나약함을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다. 그런 개인적인 요청으로는 인간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얻고 생존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을 거부한 것이다.
사탄의 세 번째 유혹은 더 강력하다. "사탄은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며, '당신이 네 앞에서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 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 만을 섬기라' 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마침내 악마는 물러 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세상의 모든 나라를 눈 앞에 펼쳐 보이며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인간을 지배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다. 가장 높은 자리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약속한다. 인간에게는 대단한 약속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좋은 땅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힘이 있으면 욕망을 무제한으로 채울 수 잇고 모두에게 존중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가진 편안한 자리를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신분이 상승할수록 내면의 어둠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커진다. 피와 약탈, 파괴에 대한 욕망은 권력욕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인간이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권력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 궁핍과 죽음, 질병을 극복하려고 권력을 탐하는 것도 아니다. 권력은 복수를 가능하게 하고, 복종을 강요하고, 적을 부숴 버릴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그래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사랑/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하지만 계급 구조의 최 정점 위에는 또 다른 자리가 있다. 그 곳은 지도에는 없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그곳은 어떤 분란도 일으키지 않고 자유롭게 비행하려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초월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자유를 우리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초연한 마음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적절한 때와 장소를 기다리고 행동하는 사람 말이다. 장자가 말하는 진인(眞人, 인간의 참모습)이다. 진인의 경지는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이 목표이다. 장자에 따르면, 진인은 자연의 덕과 합치된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 무엇에도 제약 받지 않고 만물과 하나 되어 자유로운 삶을 사는 존재로 영적인 인간이다. 다시 말하면, 무위(無爲)를 실천함으로써 세속적 굴레를 벗어버린 인간이다. 진인은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아서 사소한 것을 대하더라도 거절하지 않고, 공적을 쌓아도 자랑하지 않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꾸미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진인의 삶이다. 보통 사람은 현실 세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외물(外物)에 집착하고 구애 받는다. 이에 반해 진인은 모든 분별을 벗어났기에 어떠한 얽매임도 없이 정신적인 자유를 누린다.
노자는 제64장에서 그 경지를 이렇게 말한다. "의도를 가지고 유의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자는 결국 그것을 망치게 되고, 꽉 잡고 집착하는 자는 결국 그것을 잃게 된다. 그래서 성인은 무위(無爲)를 행하기 때문에 망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 노자는 그런 경지에 있는 자를 성인(聖人)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사람은 무리하게 만들어 더하지 않는다.
세 번째 유혹에 담긴 의미는 올바를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다. 최고의 보상을 받으려면 즉각적인 만족과 본능적인 욕망을 거부해야 한다. 사탄이 달콤하고 매력적인 제안으로 유혹하더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 삶은 원래 비극이다, 그러나 삶의 비극을 극복하는 데는 최고의 선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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