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0월 18일)
지난 수요일에 인문학 강의를 위해 대구에 가면서 기차로 갔다. 정작 대전-대구의 KTX는 40분밖에 걸리지 안 했지만,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는 갈아타기가 많아 힘들었다. 그러나 깊어 가는 가을에 여행이라고 간주하면서 즐거웠다. 여행을 생각하니,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난 다.
여행/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 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 뿐이다
시인은 사람의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은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의 존재이기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을 찾아 여행을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른다. 내 마음이든지, 다른 사람의 마음이든지. 그래서 필요한 학문이 인문학이다. 인문학 공부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의 틀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이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발로까지 이어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길이 머리에서 발까지 이다. 내가 내 마음으로 가는 여행이 힘든데, 다른 이의 마음으로 가는 여행은 시인의 말처럼, 설산이고 오지이다. 그래도 사랑으로 출발하면 가능하다고 시인은 강조하였다.
여행 이야기를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어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글을 읽어 본다. 여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출발지도 있고, 목적지도 있는 ‘가짜’ 여행과 출발지와 목적지에 집착하지 않는 여행인 ‘진짜’ 여행. ‘진짜’ 여행은 여행 도중에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노예가 아니라, 매번 목적지와 출발지를 만드는 주인공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가짜’ 여행에서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 라기보다는 출발지와 도착지이다. 인간의 삶을 여행과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삶 자체가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제대로 살려면, 우리는 과거와 미래, 출발지와 목적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우리가 내딛는 걸음걸이마다 자연스럽고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참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만나는 것마다 따뜻한 시선으로 모두를 품어줄 수 있게 된다.
프랑스 피에르 신부의 말을 소환한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 실제로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그러니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워야 한다. 스스로 익힌 사랑으로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한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말했다는 "진정한 성공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고 싶은 존재에게 사랑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가까운 가족으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부려먹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이 좀 어렵다면 이 문장을 곱씹어 보기 바란다. "내가 가치를 빛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나의 존재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서로 이용하려고만 한다. 상대로부터 무엇인가 얻을 생각을 하기 전에 주려고 하는 마음이 사랑이고, 나로 인해 상대가 더 빛나도록 물러나고 비우고 하는 사람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왜 사는 가' 묻는 것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어떻게 사는가 묻는 거다. 왜 사는가? 그냥 사는 거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사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사는 거다. 풀도 그렇고, 토끼도 그냥 산다. 그런데 그 삶이 즐거운지 아니면 괴로운지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쓰느냐 못 쓰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왜 사느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이다. 괴롭게 살지 말고 즐겁게 사는 거다. 힘들다고 다 괴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 힘들지만 즐겁다.
삶을 멋지게 살겠다 느니, 거룩하게 살겠다 느니 그런 생각을 버리고, 그냥 그저 길 옆에 핀 한 포기 잡초처럼 사는 거다. 별 거 아니다. 잘난 척해보야, 누구나 100일만 굶으면 죽고, 코 막고 10분만 놔두면 죽는다.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있지만, 내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하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옳은 지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는 사실이지 다 꿈 속에서 사는 거다.
우리가 자기라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마음 속으로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I'm nothing'라 되 뇌이는 거다. 자기를 내려놓고 가볍게 생활하면 결과적으로 삶이 거룩 해진다.
거룩이 무엇인가? '거룩'이란 신의 현존 앞에 서는 이들이 느끼는 경외심과 분리될 수 없다. 신의 현존 앞에서의 삶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사랑이다. 거룩함을 종교인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한 오용되기 쉽다. 거룩함은 속된 것과의 구별됨을 의미하지만 그 구별됨이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데 활용된다면 악마의 간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을 가르는 분리의 담들이 무너진 자리, 적대감이 스러지고 환대의 정신이 배어드는 장소, 사람들이 만나 축제의 함성을 외칠 수 있는 곳이야 말로 신성한 땅이다. 그 땅이 넓어질 때 사회는 건강 해진다.
문제는 이 거다. 우리는 자신들의 욕망을 신의 뜻이라는 포장지에 감싸곤 한다. 지배의 욕망, 소유의 욕망을 신의 뜻과 결합시킬 때 의로운 전쟁이라는 프레임이 생성되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자기들을 신의 군대로 인식하는 순간 마주 선 이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자기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착각이 시작된다.
”상투스, 상투스“('거룩하시다'로 시작하는 성가): 입만 열면 거룩한 소리로 남 한테 부담을 줄 때 하는 말이다. 맛있게 먹고, 남을 비난하거나 그러지 않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더 겸손하다. 남을 비난하지 말자, 타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치신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수녀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기준은 하나였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나요"였다.
"판단 보류의 영성"이란 말이 좋다. ”인간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는 거다. "판단보류라는 말은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이다.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 비슷비슷하다. "참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잘 안되지"라며 연민의 정을 갖는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낫 냐"며 당당해 한다.
"십자가에 박혀 나타나는 그런 하느님 말고, 내 존재 안에 달빛처럼 스며들어서[달빛처럼 스며드는 빛의 느낌], 내 마음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친척처럼 열린 것을 나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암에 걸려서 고통스럽지만 원망하지 않고 이 아픔을 통해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씩씩하게 견디는 이 힘이 은총이다."
수도의 길은 일상에서의 수도가 중요하다. 깨우침도 대나무처럼 매듭이 있다. 안 풀리면 그렇게 있다가 또다시 맺는, 그런 게 수도이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그러므로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삶이 가볍다. 그냥 사는 거다. 그러나 즐겁게 사는 거다. 삶이 원래 고통이지만, 그것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고통이란 '고(苦)'와 '통(痛)'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고'란 마음으로 겪는 괴로움이며, '통'은 육신으로 겪는 괴로움이다. 우리는 어느 괴로움이 더 큰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 본다.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고통'은 어떤 경험이고, 괴로움은 어떤 경험들, 특히 고통에 의해 촉발되는 정신적 반작용이다. 예컨대 괴로움은 고통보다는 즐거운 느낌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괴로움의 본질은 실체의 거부이다. 다시 말하면 실체의 부정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이다, 예컨대, 고통을 경험 할 때는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쾌락을 경험할 때는 그 쾌락이 강해지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데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괴로워 하지 않으려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계속해서 고통에서 달아나고, 더 많은 쾌락을 쫓아 달려가는 대신, 보다 균형 잡힌 정신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 인생은 균형잡기(밸런싱)라고 나는 믿는다. 고통과 쾌락에 대해 불필요한 괴로움을 일으키지 않고 둘 다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움켜쥐고 있던 자기를 내려놓고 그냥 가볍게 살면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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