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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천택 리(天澤 履)> 괘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0월 14일)

이번 주일에 읽은 괘는 제10번 째인 <천택 리(天澤 履)> 괘이다. 외괘는 건천(乾天, ☰), 내괘는 태택(兌澤, ☱)으로 이루어진 괘로 우리는 이것을 ‘이(履)’괘라 한다. 밟아가는 것, 밟아 온 이력(履歷)을 말한다. 첫 번 째인 <중천 건(重天 乾)> 괘로부터 시작해 열 번 째인 <천택 리>괘에 이르기 까지가 거대한 대하드라마이다.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고 만물이 처음 생하면서 어렵고 몽매하고, 기다리고 다투고 전쟁하고 만국을 세워 도와 나가고 문명을 쌓아가는 것이 인류 역사의 큰 줄거리가 된다. 그 밟아 온 이력을 <천택 리> 괘에서 돌아보는 것이다. 천간(天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이 갑(甲)에서 시작하여 열 번째 계(癸)에서 끝나는 것과 같다. 인생사, 사회사, 인류사가 다 이러한 과정으로 역사(歷史)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후천 팔괘 방위로 볼 때 <건 ☰>은 서북방이고, <태 ☱>는 서방이니 가을에 추수를 거두어 결실을 맺고 겨울의 휴식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봄부터 씨를 뿌리며 일해 온 이력(履歷)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하늘은 위에 있고 연못은 아래에 있으니, 하늘을 우러러 나의 심연(心淵)에 부끄럼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대상전>은 "象曰(상알) 上天下澤(상천하택)이 履(리)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辯上下(변상하)하야 定民志(정민지)하나니라.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이 리(履)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위아래를 분별하여 백성의 뜻을 정한다”가 된다. TMI: 辯:분별할 변, 定:정할 정, 志:뜻 지. <천택 리> 괘는 외괘가 <하늘, ☰>, 내괘가 <연못 ☱>으로 되어 있고, 내호괘가 <이화(離火, ☲)이고, 외호괘가 <손풍(巽風, ☴)이니, 하늘에 있는 태양이 연못 위에 비추는데 바람에 물결이 일면서 빛이 반짝이는 상이다. 태양은 하나이고 진실은 저기에 있건만, 세간(世間)에 떠도는 풍문(風聞)이 진실처럼 느껴지고 온갖 착각의 환영(幻影)이 진실을 왜곡(歪曲)하고 있다. 연못에 비치는 하늘이 진짜 하늘과 같이 보이니,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위와 아래를 잘 분별하여 백성의 올바른 뜻을 정해야 한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자기의 뜻하는 바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사회를 안정시킨다.

<괘의>가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辯定民志, 변정민지)"이다. "리"의 군자는 위와 아래, 지식인과 민중, 부자와 가난한 이들을 변호하여 민중의 뜻과 마음이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는 거다. 민중과 함께 살아가는 자식인의 삶을 말하는 것 같다.

군자는 하늘을 품되 자신의 그릇에 담긴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하늘은 결코 사람의 틀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역사에는 자기에게 유리한 점에 대해서만 하늘의 뜻이라고 호도하면서 백성들을 착취한 권력자들이 많았다. 그런 자들의 언행이야 말로 하늘이라는 호랑이의 꼬리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 도가 지나친 권력자들을 향해 어느 순간 하늘은 인간이 두려워 하는 호랑이의 얼굴이 되어 입을 버리는 법이다. 백성을 하늘로 보면 권력자들이 바르게 정치를 하는 한 가끔 꼬리를 밟는 정도는 백성들이 너그럽게 이해해 준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는 순간 거대한 한 마리 호랑이가 되어 세상을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인생의 길에는 수많은 함정이 감춰져 있다. 위태로움을 감지하려면 절제의 감수성이 필요하다. 질주의 쾌감에 사로잡히다 가는 추락의 쓴맛을 보기 십상이다. 지켜야 할 것은 어기지 않고, 해야 할 것은 망설이지 않는 분별과 실천의 자세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세상이라는 호랑이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거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댈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알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천택 리> 괘는 <중천 건> 괘에 체(體)를 두고 있다. <중천 건> 괘 구삼효가 동하여 <천택 리괘>가 되니 <중천 건> 괘 '구삼' 효사를 다시 음미해 본다. "九三(구삼)은 君子(군자) 終日乾乾(종일건건)하야 夕惕若(석척약)하면 厲(려)하나 无咎(무구)리라"이다.  이 말은 '구삼은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어서 저녁에 두려운 듯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을 것이다'란 뜻이다.

<중천 건> 괘 세 번째 양인 '구삼'은 양자리에 양으로 거하여 강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삼효'는 내괘인 선천에서 외괘인 후천으로 넘어가는 자리이기에 위태로운 상황이다. '삼효'와 '사효'는 천지인(天地人) 삼재 가운데 사람(人)의 자리인데, 내괘(선천)에 있는 '구삼'의 군자는 외괘(후천)로 넘어가야 하니 날을 마치도록 굳세게 정진하여야 한다. 그래서 저녁에 두려운 듯 반성을 하면, 비록 위태로움이 있을지라도 군자로서 허물은 없다. '구삼' 효의 양이 변하면 음으로 바뀌어 내괘가 <태택(兌澤, ☱)>이 되는데, 후천 팔괘 방위로 보면 <태(兌)>는 1년중 가을을 의미하고 하루로는 저녁을 의미하니, 하루(선천)를 마치고 다음날(후천)을 준비하며 반성하는 상황이 나온다.

<서괘전>은 <풍천 소축>괘 다음에 <천택 리> 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物畜然後(물축연후)에 有禮(유례)라 故(고)로 受之以履(수지이리)하다." 번역하면, '물건을 쌓은 연후에 예가 있다. 그러므로 이괘(履卦)로써 받고 있다." 문명이 점차 쌓여 나가고, 또한 물건이 쌓이게 되면 질서가 필요하고 예절(禮節)이 필요하다. 예절 아니 예의라는 것도 생계를 유지할 최소한의 물적 기반이 갖춰져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경쟁과 전쟁을 겪고 천하를 쟁패하려고 하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공존공영(共存共榮)하는 사회적 징표는 예(禮)이다. 그래서 소축괘 다음에 예(禮)를 의미하는 이괘(履卦)를 두었다. "리"와 "예"를 연결하는 것이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리(履)"는 '이력(履歷)'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실천적 개념이 강한 글자이다. 그 실천의 형식이 '예(禮)'가 되기에 <천택 리> 괘는 '예절, 분별'을 이야기 하는 괘가 된 것이 아닐까? 대산 김석진 선생님은 <건괘>와 <태괘>가 짝을 이룬 것은 제일 높이 있는 하늘과 제일 낮게 있는 연못으로 상하의 질서를 밝게 분별해서 행동에 옮기므로 예절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외괘 <건괘>는 아버지(부), 내괘 <태괘>는 소녀(소녀) 상이다. 어린 딸이 예의 바르게 아버지를 따라가는 모습과 같다. 고리타분한 예절보다도 예의 바르게 실천하고, 분별하라는 것이 <천택 리> 괘가 아닐까? 사실 <리괘>는 <소축괘>의 종괘(반대괘)이기 때문에 상수학적 관계이다. 그러나 정이천은 "리는 예이요, 예는 사람이 밟아 행하는 것이다. 괘의 형상을 보자 하면, 위에 하늘이 있고, 알래에 연못이 있다. 하늘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겸손하게 처하는 모습은 바로 상하지분(상하지분)과 존비지의(존비지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요. 예의 근본이요. 항상 우리가 밟고 살아가야 할 도이다 그래서 리괘가 된 것"이라 풀이했다.

<괘사>는 "履虎尾(이호미)라도 不咥人(부질인)이라 亨(형)하니라"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하다'는 거다. TMI: 履:밟을 리, 虎:범 호, 尾:꼬리 미, 咥:물을 질. 인간의 삶은 아슬아슬하다. 평범한 인간의 삶이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며, 그러한 존재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사회 역시 하루하루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마치 호랑이 꼬리를 밟고 있는 듯 조심조심 살아가야 한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내괘 <태택(兌澤, ☱>은 후천 팔괘 방위로 서방(西方)으로 백호(白虎)를 상징하니 호랑이를 의미한다.

'이력(履歷)'에서 보듯, "리(履)"에는 '경험', '실천'의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다. 신발을 신고 발자국을 내며 걸었으니 몸소 행하고 겪으면서 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앞서 걸은 자의 흔적을 더듬어 따라가는 것 역시 "리(履)"이다. 그래서 "이호미"를 '호랑이의 꼬리를 따른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단전>의 단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彖曰履(단왈리)는 柔履剛也(유리강야)니 說而應乎乾(열이응호건)이라. 是以履虎尾不咥人亨(시이이호미부질인형)이라. 剛中正(강중정)으로 履帝位(리제위)하야 而不疚(이불구)면 光明也(광명야)라." 번역하면, '단전에 말하였다. 리(履)는 유(柔)가 강(剛)에 밟힘 이니, 기쁨으로 하늘에 응한다. 이로써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 강건하고 중정함으로 황제의 자리를 밟아 병폐가 없으면 광명하다'가 된다. TMI: 說:기쁠 열(말씀 설․ 벗길 탈), 應:응할 응, 帝:임금 제, 疚:오랜 병 구.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것은 '육삼'의 음(陰)이 외괘의 강한 하늘에 밟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내괘의 <태 ☱>가 기쁨으로 외괘의 <하늘 ☰>에 응하고 있기 때문에,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지 않아 형통하다. 특히 <리괘(履卦)>에서 '구오'는 외괘의 중정한 자리에 있는데, '구오' 강이 중정함으로 천제(天帝)의 자리를 밟아서 왕으로서의 병폐가 없으면 광명하다.

<천택 리> 괘의 괘상을 연못에 하늘이 비친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연못은 하늘의 발자취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연못은 하늘이 지나간 여정을 따라 진정한 하늘의 이치를 깨우치고자 한다.  내괘 <태괘>가 외괘 <건괘>를 따르는 상황이 된다. "영이응호건"은 내괘 <태괘>가 외괘 <건괘>와 응한다는 뜻이고, "강중정"은 '중정'을 얻은 '구오'를 상징한다. "이제위"는  '구오' 임금의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중정한 '구오'가 내호괘 <리괘>의 밝은 빛으로 천하를 비추는 듯한 모습이 되어 공자가 "광명"을이야기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택 리> 괘의 효사는 내일로 넘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천택 리>를 읽다가 소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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