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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12일)

오늘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여섯 번째인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규칙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넘겨주는 거래를 한다. 거래 대가로 파우스트는 지상에 사는 동안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이 작품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존재의 영원한 적이다. 그는 자신의 신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항상 부정하는 영혼입니다! 부정하는 것은 지당합니다. 왜냐하면 생겨나는 모든 것은 반드시 멸망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죄악이니 파괴이니 부르는 것, 쉽게 말해서 악이라고 하는 모든 것이 내 본래의 영역입니다."

괴테는 이런 증오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증오가 복수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파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현실에서 든 상상에서 든 불의를 경험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약삭빠른 술책에 당할 때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에게 닥친 고통을 겪을 때마다, 인생에 의문을 제기하고 저주를 퍼붓고 싶은 유혹이 샘솟는다.

삶은 고단하다. 모두 삶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여만 한다. 죽음도 피할 수 없다. 때로는 의도적인 맹시(盲視, 사물을 보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 잘못된 판단 같은 나의 잘못 때문에 고통이 찾아오기도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그러나 인간의 통제력은 제한되어 있다. 절망과 질병, 노화와 죽음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비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 엄청나게 노력해 몇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1) 그런 문제를 아예 생각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무지함으로 회귀하는 것 (2)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 없이 무작정 쾌락을 추구하는 것  (3)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사악하고 무의미한 삶을 계속 유지하는 것
(4) 삶이 사악하고 무의미한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삶을 파괴하는 것. 그러나 톨스토이는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는 길은 정말 없을까?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카인은 자신이 바친 제물을 하느님이 거부하자 고통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는 하느님에게 간절히 호소하지만 하느님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자초했다고 호통만 듣는다. 분을 참지 못한 카인은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에 상처를 내기로 결심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벨을 죽여 버린다. 아벨은 카인의 우상이었다. 카인은 성공한 동생 아벨을 질투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하느님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복수대신 끔찍한 과거를 딛고 일어나 선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모든 고통이 반드시 허무주의(가치와 의미와 희망에 대한 완전한 거부)를 낳는 것은 아니다."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악을 경험한 사람은 악을 퍼뜨림으로써 악을 존속시키려는 경향이 있으나, 악을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선을 학습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고통을 통해 그런 학대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를 한 편 공유한 다음 계속한다. 만물의 일년 생성(生成)은 생겨나고, 자라고, 거두어, 깊이 들어가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에 따른다. 이를 예쁘게 표현하면, "쥐리락, 펴리락"이다. 봄에 만물이 새싹을 잘 틔우고, 건강하게 생겨나려면, 그 전년 가을부터 열매를 잘 거두어 깊이 수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장(收藏)이 잘 되어야 생장(生長)이 좋고, 생장이 좋으면 수장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먼저 쥐고 펴야 한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호흡을 잘 쥐고 장악해야, 소리가 잘 펼쳐진다. 판소리 명창 배일동 선생의 페북에서 만난 이야기이다. 올해 지금의 열매가 내 년 봄의 씨앗이 된다. 그래 만물은 저리도 서둘러 양분을 알뜰살뜰 쥐어서 겨울을 향해서 깊이 숨어들어간다. 나도 이젠 차분하게 수장을 준비하며, 오늘의 시처럼, "마음의 서랍"을 정리하리라.

마음의 서랍/강연호

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절박하다
나야, 외출했나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나는 마냥 낯설기만 한
마음의 서랍 끝내 열어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외부인 출입금지의 팻말 걸린 문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는
대낮에도 붉은 등 켜고 앉아 화투패 돌리며
쉬어가라고 가끔 고개 돌려 유혹하는 여자들의 거리에
와 있는 것만 같아 안절부절이다 순정만화처럼
고만고만한 일에 울고 웃던 날들은 이미 강 건너
어디 먼 대양에라도 떠다니는지
오늘 풍랑 심하게 일어 마음의 서랍 기우뚱거리면
멀미 어지러워 나도 쓸쓸해진다 언젠가
뭘 그렇게 감춘 것 많냐고 속 시원히 털어놓으라고
나조차 열어보지 못한 마음의 서랍
우격다짐으로 열어본 사람들 기겁하여 도망치며 혀차던

마음의 서랍은 서럽다

우리는 현실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다. 그는 악명 높은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복수심과 파괴적 욕망에 매몰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는 과거의 삶을 세세한 부분까지 되짚어 가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관찰하고 경청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정직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정직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솔제니친은 또한 자신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뜯어보고 불필요하고 해로운 부분을 지워 내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 1973년 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를 고발한 <<수용소 군도>>라는 작품을 냈다. 한남자가 운명을 탓하지 않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병적인 시스템의 폭정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공산주의가 완전히 붕괴한다. 솔제니친의 용기가 큰 역할을 했다. 이런 기적의 주인공이, 공산주의 치하에서 박해 받은 작가였지만, 비폭력 혁명으로 공산주의 체코 정권을 무너뜨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후에는 다시 한번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이다.

위대한 정신은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삶을 혐오하지도 않고,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삶이란 것이 그렇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체계를 세운다.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국가를 만든다. 이런 체제의 밑바탕이 되는 원칙을 정하고 믿음의 체계를 만든다. 그러면서 상공이 계속되면 무사안일에 빠져 마땅히 해야 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어렵고 귀찮고 안 좋은 일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세상이 변하고 타락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그 전에 우리는 우리의 주변 환경을 작은 것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질문해 본다. ‘질문하는 연구소’의 설립자 마릴리 애덤스는 <<질문의 기술>>에서 질문을 ‘심판자의 질문’과 ‘학습자의 질문’으로 나눈다. “누구 탓이지?” “어쩌다 패배했지?” 라는 ‘심판자의 질문’은 사람을 불안과 패배감에 젖어 들게 하는 반면, “이 상황에서 배울 점은 뭘 까?”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은?” 같은 ‘학습자의 질문’은 긍정적으로 심리적 안정감과 새로운 도전 의식을 준다는 게 책의 논지다. 소설가 백영옥의 글에서 읽었다. "공원을 걷다가 “나이 들어 좋은 것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한 선배가 “이젠 내 한계를 알아!”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제 못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이 질문과 대답은 이후 일에 대한 내 태도를 크게 바꿨다. 이때 질문의 또 다른 이름은 ‘지혜’이다."

(1)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100% 활용해 왔는가?
(2) 혹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맥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3) 건강과 행복을 파괴하는 나쁜 습관은 없는가?
(4)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가?
(5) 주변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여야 한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것들을 중단한다.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 그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냥 중단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의 판단이 행동의 기준이다. 세상에 정한 행동 기준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속한 문화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 게 좋다. 크게 자본주의나 정치권을 탓하지 않는다. 체제를 손봐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경험을 먼저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 부분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러면 자신의 삶은 점점 단순해 진다. 단순해지면, 판단력이 향상된다. 그러면 뒤틀린 과거 물제들도 정리된다.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나약한 존재이지만, 맑아진 정신은 삶의 좋은 면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그 긍정의 힘이 누구보다 자신에게 평화와 세상의 모든 힘을 지키는 강력한 힘 될 것이다. 피터슨이 말하는 <삶을 위한 12 가지 규칙들> 중 여섯 번째인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말은 자신의 삶을 우선 깨끗하게 정돈하라는 말이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사악한 곳이 아니다. 그 후에도 자신부터 달라지고 계속 노력한다면 인간의 삶에 비극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진실만을 말하고 높은 곳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바로 이 타락한 지구에 영원한 천국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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