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9일)
어제는 복합문화공간 <뱅샾62>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연수를 하였다. 연수 제목은 "와인과 함께하는 향기 있는 삶의 여정 : 아는 만큼 즐거운 와인의 세계"였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먼저 하늘 나라로 간 아내가 많이 생각났다. 아내의 대학교 후배들이었 거다. 강의를 시작하며,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야기 된 불행은 아니라"는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이젠 슬프지 않다.
어제 강의에서는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와인은 문화이다. 서양 식탁에서의 가장 큰 적은 말하지 않고 밥만 먹는 즉, 침묵으로 간주한다. 식사를 초대한 안주인은 음식을 맛있게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탁에서 대화가 활기차게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대화의 주제를 공급하는 재치를 또한 발휘하여야 한다. 서양에서는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먹는 일에만 열중한다면 식탁에서의 매너가 좋지 못한 행위로 간주한다. 요즈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옛날에 어른들은 식탁에서 아이들이 말하거나 떠들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밥상에서 말을 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하면서 조용히 밥을 먹도록 교육받았다.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하던 시절의 어른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자문해 본다.
식탁은 음식을 먹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의 대화는 가볍고 재미있는 주제이어야 한다.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모든 참석자가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좋은 주제가 될 것이다. 물론 식탁에서도 반드시 피해야 할 주제가 있다. 정치, 종교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정치와 종교는 각자 신념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계속하면 식탁의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다. 그 외도 돈 문제나 자신만의 이야기, 남을 공격하는 이야기 등 의식적으로 피해야 할 식탁에서의 대화주제들이 있을 수 있다. 식탁에서 바람직한 대화 주제는 날씨. 여행, 스포츠, 시사, 문화, 취미 등과 같은 가볍고 누구에게나 관련되는 공통의 주제가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런 본격적인 대화를 도입하기 전에 가장 좋은 식탁에서의 대화 주제로 와인이야기는 식탁의 분위기를 쉽게 잡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서양 사람들은 ‘와인 없는 식탁은 태양 없는 세상과 같다.’, ‘와인 없는 세상은 애꾸눈의 미녀와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와인은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은 매우 중요한 식중주이다. 즉, 식사와 함께하는 술이다. 그러므로 식탁에서의 와인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화제이고, 유럽 사람 대부분은 와인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와인은 자연 그대로의 포도로 만든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플라톤)이다. ‘와인을 마시고 있는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다'는 이스라엘 속담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료인 와인은 서양의 식탁에서는 필수적인 테이블 매너의 내용이고, 술이기 전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식탁의 분위기를 매우 부드럽게 해 주는 훌륭한 매개체이다. 독한 다른 술보다도 와인은 자연스럽게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마음과 마음을 열고 서로에 대해보다 많이 알게 해줌으로써 좀 더 가까운 관계를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와인을 단지 서양 문화에 ‘맹목적으로 미친’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로 냉소를 보내기 전에, 와인이 서양 사회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특히 비즈니스가 국경 없이 이루어지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와인은 국제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제매너 컨설턴트인 박준형은 와인이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과정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술에 취함'을 향해 돌진하며 술에 취한 결과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신 다음 마신 만큼 또는 그 이상의 취한 결과가 있어야 만족하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와인에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무엇을 마시는 가보다 술 마시는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술은 음식을 더욱 맛있게 먹고,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윤활유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먹는 음주문화로부터 식사를 즐기기 위한 술'로 인식을 바꾸어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셋째, “자기의 취향에 맞출 수 있는 와인 구입과 선택의 어려움 때문에 와인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와인은 공부를 많이 하여야 잘 즐길 수 있고 또한 기다릴 줄 알아야 와인을 제대로 마실 수 있다. 와인은 훌쩍 마셔버리면 그만인 소주와는 달리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야 한다. 와인은 사오자 마자 마시기보다는 잘 보관해 두었다가 마셔야 한다. 와인은 소주와는 달리 일단 병을 따면 다 마셔야 한다는 이런 점들이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자만이 와인을 잘 마실 수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원 샷'과 ‘폭탄주'가 술자리의 화끈함으로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맛을 음미하며 마셔야 한다는 와인은 어쩐지 어색하지만, 이제는 폭력에 가까운 술자리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이 요즈음 분위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시대에 와인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값진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오늘은 가을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그래도 우산을 쓰고 산책을 했다. 오랜 만에 내가 좋아 하는 시를 생각했다.
가을의 문턱에서/김보일
무엇에 지칠 만큼 지쳐보고서 입맛을 바꾸어야지.
무엇을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이거저거 집적대는 것은
자연이 젓가락을 움직이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초록이 지쳐 단풍든다는 말이 자연의 이치를 여실하게 드러내 주는 말은 아닐지.
영과후진盈科後進, 물은 웅덩이를 다 채우고 흘러간다던가.
지칠 만큼 여름이었고, 벌레들은 제 목청을 다해 울었으니
이제 가을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가을일 것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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