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0월 1일)
1
벌써 10월이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어서 좋다. 그래서 가을의 여유와 넉넉함이 더 느껴진다. 또 그런 달이 또 있다. '6월'을 '유월'이라 한다. 그리고 시월은 맺음의 시간인 동시에 버림의 시간이다. 버림은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희망이다. 그래 난 시월이 좋다.
10월은/박현지
시월은
내 고향이다
문을 열면
황토 빛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시는
어머니
하늘엔
국화꽃 같은 구름
국화 향 가득한 바람이 불고
시월은
내 그리움이다
시린 햇살 닮은 모습으로
먼 곳의 기차를 탄 얼굴
마음 밭을 서성이다
생각의 갈피마다 안주하는
시월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는
내 고향이다.
2
가을에 대부분의 풀들은 열매를 맺고, 푸르던 잎은 단풍으로 물들다 떨어져 한 해의 삶을 정리한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이때, 단일식물들은 꽃을 피운다. 단일식물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화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서리를 맞으면서도 피어 있는 국화의 모습에서 예부터 매란국죽(梅蘭菊竹), 즉 네 군자 중 하나로 여겨왔다.
국화꽃의 가운데는 통모양의 작은 통꽃이, 가장자리에는 혀 모양의 긴 혀 꽃이 각각 수백 개씩 꽃대 끝에 모여 머리처럼 보이는 꽃차례를 하고 있다. 난 들국화를 좋아한다. 들국화가 피어야 가을이고, 들국화가 지면 겨울이다. 그런데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식물도감에 없다. 들과 산에 저절로 피어 있는 국화 무리를 통틀어 우리는 흔히 들국화라 부른다. 대표적인 것으로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감국, 벌개미취, 참취 등이 있다. 여기 저기서 만나는 들국화들을 구별해 본다.
구절초(九節草)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이는 풀', 또는 '약효가 좋은 음력 9월 9일 즈음에 꺾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부인병에 좋다고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했다. 9~10월에 줄기 끝에 꽃이 한 송이씩 핀다. 꽃잎은 처음 꽃대가 올라올 때는 붉은 기운이 도는데 차차 맑은 흰색으로 변한다. 꽃잎 끝의 가운데 부분이 좀 들어간 모양이다
들에서 더 흔하게 눈에 띠는 것은 쑥부쟁이다(7월~10월). 옛날에 동생들의 끼니를 때우기 위해 쑥을 캐러 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났다고 하여 '쑥부쟁이'라는 슬픈 전설이 있는 꽃이기도 하다. 봄에 어린 순을 뜯어 나물로 먹는다. 쑥부쟁이 꽃은 연한 보라색이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줄기 끝마다 꽃이 피어서 무리 지어 보이는 점이 구절초와 다르다. 초보자가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꽃송이만 보면 잘 구별이 안 된다. 이때 잎 모양을 보자. 다른 점이 보일 것이다.
여름(6월~10월)부터 꽃 피는 벌개미취. 관상용으로 길가에 심어진 걸 자주 보곤 한다. 벌개미취의 학명은 'Aster koraiensis'인데, 'koraiensis'는 '한국'이라는 뜻이다. 벌개미취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것이다. 영어 이름도 'Korean Daisy'이다.
산국은 '산에 피는 국화'란 뜻이다. 꽃이 작고 다닥다닥 피어 있는 느낌이다. 꽃 크기가 10원짜리 동전 만하다. 잎을 씹어보면 쓴맛이다. 감국(甘菊)은 잎을 씹어보면 단맛(甘)이 살짝 돈다. 국화차는 이 감국으로 담근다. 꽃 크기는 500원짜리 동전만 하여 산국보다 약간 크다.
3
‘영포티’는 젊게 사는 중년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최근 2030세대에게는 겉으론 젊고 트렌디하려고 하지만 자기 과시적이고 허세만 있는 중년, 나이 듦을 인정하지 않는 세대로 냉소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 “열심히 일해서 몇 년 전 운 좋게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순조롭게 승진을 했고, 연봉도 만족스럽습니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가고, 패션이나 음식 기호도 확고해서 섬세한 취향이라는 평을 들어요. 교육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지만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도 거르지 않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뛸 정도로 운동도 제대로 합니다.”
이 말을 듣고, 2030 세대는 '영포티'를 미워한다. 약간의 부러움이 섞여 있지 않을까? '영포티'는 부동산 폭등기가 오기 전에 운좋게 아파트 구매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서울 ‘마용성’ 지역의 신규 매수자에 '영포티'가 많다. 반면 2030세대는 집값이 뛰어 버린 탓에 꿈도 꾸지 못한다. 소득이 한창 최고조에 오르고, 와인이나 음악 같은 취향을 즐기면서 주거도 안정된 '영포티'를 보면 부러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몇 년 차이로 저 멀리 서 있는 걸 보니 얄밉지 않을까? 그러니 갈등과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영포티'는 억울해하기보다, 미안함과 인정의 태도가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라 내 현재를 말했을 뿐이라 해도 자랑이나 잘난 척으로만 들리기 쉽다. 같은 편이라 여기고 불평을 하는 것도 배부른 소리로 비칠 뿐이다.
2030 세대와 친해지려 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젠 인생 후반전으로 넘어가야 한다. 중년은 ‘인생의 정오'라 하는데, 성취한 것이 많다면 오후를 맞는 마음이 가뿐할 거다.
▪ ‘친하게 가까이’ 말고 거리를 유지하는 거다. 2030은 사회적 미소로 웃으며 응대하는 것이지 개인적 호감이 있는 게 아니다. 알아차려야 한다.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내 직급이 높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눈꼬리를 올려줄 뿐이다. 잘못 해석해서 '착각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친근하고 격의 없이 대하지만 권위가 살지 않아 휘둘리는 선배가 되기보다 적당히 무섭기도 하고, 분명한 선을 지키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해주는 사람이 되는 거다. 권위적인 것과 권위가 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무섭지만 배울 게 많은 사람"이란 인상이 되는 쪽을 선택하자.
▪ 후배들 앞에서 살짝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거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다. 저기압일 때 짜증 낸 건 쉽게 잊지만, 후배들은 그걸 더 오래 기억한다.
젊게 보이려 애를 쓰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나를 보는 시선이 이미 저 멀리 가 있다.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뒷자리로 물러나고, 후배에게 공을 돌리며, 기세보다 요령으로 일하는 거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글에서 얻은 생각이다.
4
오늘 아침 만남 화두는 '세상일은 붙잡으면 붙잡히고, 놓으면 비로소 놓여 난다'는 거다. 화순 불암사 주지이신 법인 스님의 글에서 얻은 생각이다. 스님에 의하면, 최근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공통점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라 했다.
▪ 자신을 메시아라 내세우며 믿음과 구원을 약속한다.
▪ 과도한 헌금을 강요하며, 신도의 노동력을 착취해 재산을 불린다.
▪ 또한 여성 신도를 세뇌해 성적 도구로 삼고, 신도와 자녀들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다.
▪ 나아가 정의롭지 못한 정치 세력과 결탁해 이권을 추구한다.
▪ 교단을 떠나 실상을 고발하는 용기 있는 이들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안타깝게도 많은 청년이 이들의 정신적 족쇄에 묶여 있다. 이는 정치와 종교가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왜 신도들은 도덕적 타락과 인권 유린을 목격하고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왜 상식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가? 알 수 없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사이비나 극단적 정치 집단에 빠지는 이유가 특히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는 거다. 모든 인간에게 외로움과 불안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그래 어딘 가에 소속되어 존중 받고 싶은 욕구가 잘못된 길로 흐를 때, 인간은 쉽게 극단에 매몰된다는 거다.
무엇이 두려운가? 두려움을 벗어나려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감사로 스스로의 행운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내가 이룬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거기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심지어 타인의 배려를 종종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 듯 여길까? 데일 카네기는 <<자기 관리론>>에서 “감사는 교양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자기 수행의 결실"이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를 기대하지 않을 때 선물처럼 감사가 찾아오는 역설을 강조한다. 애타게 바라면 오히려 멀어지는 행복의 역설처럼, 감사함 역시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기억할 때 라야 찾아온다. “나는 신발이 없어 우울했다. 거리에서 발이 없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비범해지는 유일한 길은 매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중국 송나라 시대 야부 스님의 선시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水丈夫兒)”가 떠오른다. 벼랑 끝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일이 대단한 것이 아니니, 손을 과감히 놓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뜻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 소속을 잃은 외로움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 솔로몬 아시의 사회심리학 실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피험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의 길이를 비교하는 단순한 상황을 설정했다. 실험에서 아시가 사전에 지정한 다수의 공모자가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하면, 피험자도 정답을 보면서도 집단의 시선에 눌려 틀린 답에 동조했다. 집단의 압력이 개인의 판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옳다고 말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알면서도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약함이 용기 있는 결단을 가로막는다.
▪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대세에 편승하려는 성향: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그랜펄룬(granfalloon)"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크다(grand), 허위(fallacy), 풍선(balloon)의 합성어다. 실질적 의미 없는 집단 속에서 허위의 소속감에 집착해 자부심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풍자한 개념이다.
▪ 배신자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
실제로 주변에 극단과 편향의 집단에서 용감하게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하고 체념하거나 속앓이를 하는 이들이 많다. 그 해법은
▪ 먼저 자신이 자유롭고 평안한지 성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면 깊숙이 결핍 감, 열등감 그리고 소외감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 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도덕과 상식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 또한 집단과의 동일시, 대세 추종, 배신자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결단을 주저하고 있지 않은지도 살펴야 한다.
석가모니는 지혜로운 삶을 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견, 편견, 욕심 그리고 집착을 지적했다. 그리고 머뭇거림을 경계했다. ‘지혜의 검’이라는 말은 실상을 직시하고 과감히 결단하는 행위가 곧 지혜임을 뜻한다. 지혜의 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결코 배신도, 후퇴도 아니다. 그것은 더 깊은 차원의 전환이다. 천 길 벼랑 끝에서 헛된 믿음의 나뭇가지를 놓아야 한다. 붙잡으면 붙잡히고, 놓으면 비로소 놓여 난다.
5
오늘의 말씀을 대면한다. <루카 복음> 9,57-62 (예수님을 따르려면) 이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당신 한 걸음 뒤/상지종 신부님
오롯이
길을 가도록
당신 한 걸음 뒤
길을
잃지 않도록
당신 한 걸음 뒤
외길을
갈 수 있도록
당신 한 걸음 뒤
곁길로
새지 않도록
당신 한 걸음 뒤
바로
곁에 있도록
당신 한 걸음 뒤
홀로
가지 않도록
당신 한 걸음 뒤
힘껏
나갈 수 있도록
당신 한 걸음 뒤
지쳐
멈추지 않도록
당신 한 걸음 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것이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인간성의 반대는 야수성이라면서 “야수성이란 이웃 사람의 인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의 요구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다른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기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와 사랑은 느림이 주는 선물이다. 그에 반해 성급함과 우쭐거림, 자기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오해와 불신을 만들어내는 부엌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통념을 잠시 내려놓지 않고는 참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다가 이런저런 장애물을 만나 시르죽은 이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느낀다. 좋은 사람으로 자기를 이미지 화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이미지가 영혼의 덫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침은 언제나 자기 파괴의 씨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욕이나 충격을 완화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생길 때까지 사부작사부작 조금씩 걸어가면 된다. 일어서서 한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려면, 버리고 따라야 한다. 여기서 노자가 소환되었다. 노자는 '도'를 '일도일손'이라고 했다. 여기서 도는 하느님의 나라에 있는 길이다. 그 길은 매일 쌓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이를 위해, 노자의 <도덕경> 제80장에서 말하는 노자의 꿈처럼, "내가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달고 생각하고, 내가 입은 옷이 가장 아름다우며,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안하고,
내가 누리는 문화를 가장 즐거운 곳(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基俗)"이었으면 한다. 좀 쉽게 말하면,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맛있어 하고, 네가 입고 있는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내가 살고 있는 그곳을 편안하게 생각하며, 네가 누리고 있는 그 문화에 즐거워하라는 말 같다. 이는 외부에서 오는 더 좋은 것을 꿈꾸기보다는 내 뿌리를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말 같다.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매일 비우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48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 말을 번역하면, 배움이라 함은 나날이 더하는 것이고, 도라 함은 날마다 던다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無爲)에 이르게 된다. '무위'란 '하지 못하는 것(불위, 不爲)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 한다면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없다. 그러니까 '도'를 닦는 것은 나날이 지식 또는 분별을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비움이 지극해지면, 평화로워 지고 무위하여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지식은 밖에서 오고, 도는 안에서 온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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