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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잘 산다는 것은 '마음을 다해 대충' 사는 것이 생각한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27일)

어제 우리는 "덕"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 보았다. 왕필은 '덕'을 '득(得, 얻음)'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덕은 "개물(個物)이 도(道)로부터 얻어 자신의 몸속에 축적하는 것"(김용옥)이다. 그러나 덕 또한 도를 본받는 것이므로 도의 덕성을 다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도가 노니는 세계는 우주론적이고 인식론적이고 가치론적이라 한다면, 덕이 노니는 세계는 아무래도 개체의 삶의, 즉 인생관의 문제, 또는 치세(治世) 즉 정치론의 문제 또는 정치의 핵심인 전쟁의 문제 등등에 밀집되어 있다. 도올의 해석이다. 나도 그렇게 이해한다. <도경>은 도의 존재론적 면을, <덕경>은 도의 기능적인 면을 좀 더 많이 다루고 있는 거다.

따라서 <<도덕경>>의 제1장에 비해, 제38장은 도보다 한 단계 낮은 "상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에 전개되는 모든 것은 인륜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노자 <<도덕경>> 제38장을 정밀 독해한다.

上德不德(상덕부덕) 是以有德(시이유덕): 높은 덕은 베푼 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있다.
下德不失德(하덕부실덕) 是以無德(시이무덕): 낮은 덕은 베푼 덕을 잃지 않고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덕이 없다.
上德無爲而無以爲(상덕무위이무이위) 下德爲之而無以爲(하덕위지이유이위): 높은 덕은 강요하지 않으며, 베푸는 의도도 없다. 낮은 덕은 강요하고, 베푸는 의도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베푼 덕에 감사하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섭섭해 한다. 그러나 자신이 베푼 덕에 상대방이 감사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베푼 덕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덕을 베풀었으면 베푼 순간 잊어야 한다. 자신이 베푼 덕을 베풀었다는 의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러면 그 덕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 덕을 베풀고 자신의 덕을 드러내지 않는 덕이 위에서 말한 "상덕(上德)"이다. 자기가 하는 훌륭한 일이 덕인줄도 모르고, 덕이 쌓이는지 없어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구김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래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이다.

반면 자신의 베푼 덕을 강조하고 보답을 기대하는 것을 "하덕(下德)"이라 한다. 똑같은 덕이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기가 가진 조그만 덕을 의식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뭐나 되는 것처럼 거기에 매달리고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뭐나 되는 것처럼 거기에 매달리고 그것을 더 쌓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쌓는 대로 확대 선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실상 덕이 없는 사람이다. 박재희 교수는 노자 철학을 이해하려면 '반(反, 거꾸로)'가 중요하다고 했다. 섬기면 더 존경받고, 강요하지 않으면 저절로 되고, 비우면 채워지고, 남보다 우뚝 서려 하면 넘어진다는 거다. 덕을 베풀고 덕을 베풀었다고 하지 않으니 '거꾸로' 그 상덕은 오래간다. 반면 자신이 베푼 덕을 자랑하고, 드러내면 오히려 베푼 은덕이 사라진다는 거다.

노자의 문장에서 "무이위(無以爲)와 "유이위(無以爲)"가 대비되고 있다. "무이위"는 '무엇을 가지고 함이 없다'로, "유이위"는 '무엇을 가지고서 함이 있다'로 본다. 그러니까 "무이위"는 '무엇을 의도를 가지고서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본다. 훌륭한 덕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하지 않는다. 도에 입각하여 살아가므로 자기 행동마저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행동이 고침이 없고 구태여 억지로 일을 꾸며야 할 이유도 없다. 반면 훌륭하지 못한 덕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꾸미고 잔뜩 일을 벌여 놓는다. 자기의 행동을 의식하고 뭔가 해 놓아야 될 것처럼 조바심이고 늘 초조해 한다. 그러나 멀리 보면 하나도 되는 일이 없다. 한 마디로 상덕(上德)의 사람은 무위(無爲)의 사람이고, 하덕(下德)의 사람은 유위(有爲)의 사람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내일 아침으로 넘긴다. 잘 산다는 것은 '마음을 다해 대충' 사는 것이 생각한다. 힘들 때는 "힘 내!"라는 말보다 "힘 빼"라는 말이 더 좋을 수 있다. 힘 빼고, 우연을 한 번 기다려보자, 꼬이고 꼬였을 때는 그냥 놔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물에 빠졌을 때 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거리면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된다. 그럴 땐 힘을 빼야 비로소 물 위에 둥둥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열심히 산다. 쥐어짜듯, 있는 '힘껏 모드'이다.  그러나 실제 살다 보면, 뭐든 힘주는 것보다 힘 빼는 게 더 힘든 일 같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대충 산다. 1-2년 사이 상권(商圈)의 지형이 바뀔 정도로 많은 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아님 말고~'의 유연함이 있어야 이 불확실한 시대에 헤엄치듯 살 수 있다. 그러니 지금 행복한 일에 최선을 다해 대충 산다.

그리고 무심하게 살고 싶다. 무심(無心)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은 이렇게 전하기도 한다. "물욕(物慾)에 팔리는 마음이 없고, 또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간섭(干涉)이 떨어진 경계(境界)". 무심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심한 하늘'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무심하게 있다. 그리고 청주에는 '무심천'이라 불리는 천(川)이 시내를 관통한다. 정륜 스님은 "뭣도 가지지 않아서 자유"로운 것을 "무심"이라 말한다. 무심하게 산다. 내 큰 형이 그렇다. 속은 모르겠지만, 무심하게 산다.

가쿠다 미쓰요라는 일본 여자가 쓴 <<무심하게 산다>>라는 책에는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급한 사람은 갈수록 더 급해지고, 불 같은 사람은 갈수록 더 불 같아지는 등 대부분 내면의 그릇이 작아지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참견, 잔소리 같은 뜨거운 단어를 건너뛰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느긋하게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 '무심함'이 아닐까?
-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그릇이 커져야 한다. 그래야 너그러워진다. 어떤 이는 그릇의 크기와 관계 없이 상관없어서, 즉 무관심해서 너그러워 보일 때가 있다.
- 경험은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가능성을 좁히는 경험도 있다.
- 운동을 한다는 것은 건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아프기 위해서이다.
- 돈이란 원하는 물건을 사는 데 쓸 때보다 불행을 예방하는 데 쓰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아침 사진은 맨발 걷기를 하고 산을 내려오다가 무심히 바라 본 하늘이다. 구름 문장이 말한다. "'나는 너로써 나다.'"

구름의 문장/복효근

울지 않는 전화기를 몇 번이나 들춰보고
기척 없는 앞마당을 자꾸만 흘깃거리다가
소주병을 꺼내려다 만다
법구경 몇 페이지를 펼쳐보다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에 잠깐 멈칫거리다가
겨우 한 줄 써본다
'나는 나로써 나다'
애써 다독이는데
문득 댓돌 틈에 핀 괭이밥풀꽃 한 송이에
울컥
꽃은 너였다가 또 너였다가 또 너였다가
수많은 너였다가
한 줄 다시 써본다
'나는 너로써 나다'
서쪽 하늘엔 구름 한 무더기 모였다 흩어지고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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