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진실과 믿음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3일)

진실과 믿음은 다르다. 진실은 단지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진실을 말한다. 중요한 것이 진실과 믿음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진실과 믿음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 구별하지 않는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이 진실로 통한다. 이런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아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인가? 가짜가 아닌가?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때, 우리는 오히려 더 강한 믿음을 필요로 한다. 반면 우리는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신성시 해야 한다. 이처럼 진실에 헌신하는 태도야 말로 근대 과학의 기저를 이룬다. 그러니까 데카르트가 말하는 '방법적 회의", 즉 자신의 생각 의심하면서, 우리는 진리에 다가가려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어떤 것을 믿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자유를 위해서이다. 자유는 일체의 모든 권위로부터 저항하고 비판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 믿음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이젠 각자의 몸에 박힌 돌멩이를 빼낼 시간이다.

죄와 벌/박화남

맞아야 할 돌이라면 내가 대신 맞겠다
얼어 있는 호수가 안고 있는 돌멩이
더 깊이 몸에 박힐수록
아픈 곳이 녹는다

누구나가 깊디깊은 곳에
저마다의 돌멩이가 박혀 있습니다.
소리 없이 깊이 박혀 있다가 삶의 어느 순간
생채기를 내고 아픈 통증을 안겨주곤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 돌멩이를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 안아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박힌 돌멩이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원래는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이야기 하려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반지성주의'하면 트럼프 전대통령이 소환된다. 지금 현 정부도 비슷하다. 지성주의 무엇인지도 모르고 굥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세계는 코로나19 대유행, 기후변화, 교역질서와 공급망의 재편, 식량‧에너지 부족, 무력분쟁 등 글로벌 난제에 직면했다. 개별 국가는 초저성장, 실업, 양극화로 인해 공동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민주주의 위기 때문에 잘 작동하지 않는다.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는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는 집단적 갈등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각자 믿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며 다수의 힘으로 이견을 억압한다. 국내외의 위기와 난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보편적 가치인 ‘자유’를 정확하게 인식 공유해야 한다.” 굥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라 한다. 믿기지 않다. 그는 말과 글이 큰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언젠가 중앙일보의 윤석만 기자가 한 말이다. "트럼프 식 가짜 민주주의는 3A로 요약 된다. 반-자유주의(Anti-liberalism), 반-지성주의(Anti intellectualism),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가짜뉴스). 지난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러시아 댓글부대(IRA)의 가짜 뉴스 덕을 보았고, 당선 뒤에도 그는 비판을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대안적 사실'이라며 거짓말도 서슴치 않았다. 그의 반-자유주의는 다양성과 관용, 소수 배려가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세계의 동맹국보다 독재정권을 선호하고 헌법 같은 규범을 공개적으로 멸시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코로나-19 대응처럼 전문가 의견과 과학적 사고를 무시하는 반-지성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3A, 즉 반-자유주의, 반-지성주의 그리고  대안적 사실(가짜 뉴스)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곳에서는 패거리 정치가 일어난다.  증거에 기반한 이성적 논의, 이견을 받아들이는 다원성이 패거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규정할 뿐이다. 우리의 정치 풍토도 그런 모습이다. 패거리의 다른 말이 '팬덤'이다. 정치가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다양한 이익과 갈등을 대의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략적 이슈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팬덤'을 기초로 동원된  패거리들 사이엔 이성과 합리가 숨 쉬지 못한다. 합의와 토론보다는 '너 죽고 나 사는 목숨 건' 투쟁만 존재한다. 해결책은 서로를 적으로 가르지 말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 긋기와 몰아내기는 배제의 논리다. 이제까지 국가는 통치자와 귀족, 평민, 노예로 금을 그었고 종교는 불신자와 이교도, 이단으로 찢어져 전쟁을 일으키고 파문하며 제거했다. 경제적 인간은 자본가와 노동자로 갈라 착취와 저항으로 대결 시켰고 독재권력은 그 비판자들을 반동과 역적으로 잡아들이고 자유로운 현대 학문조차 찰스 퍼시 스노의 <<두 문화>>에서 보듯 과학과 인문학의 상호 무지로 배척한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아름다운’ 인간적 삶’은 금기와 무지, 몽매와 편협이 빚는 ‘배제의 논리’로부터 이해와 관용, 연대와 제휴의 ‘포용의 논리’로 살 만한 세상을 향해 진화한 모습일 것이다. 이게 우리 인간의 영혼일 것이다.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인문운동가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문화공간뱅샾62 #죄와_벌 #박화남 #무지성주의 #진실과_믿음 #포용의_논리